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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eunyongyi 2017. 3. 1. 14:06

이민경 지음. 봄알람 펴냄. 2017년 1월 6일 2판 8쇄.

 

입이 더 잘 트일 수 있게 쉬 읽히는 글이었으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주 작은 아쉬움. 있되 그리 크지 않은 건 뼈에 저린 알맹이 때문.

“여성이 어쩌다 지혜로워졌습니까? 가진 것 없는 인간이 맹수에게 죽기 싫어서 지능을 이용해서 살아남았습니다. 여성도 있는 그대로 살 수 있었다면 굳이 지혜롭지 않아도 괜찮았을 겁니다. 생존을 위해 지혜를 짜낸 쪽더러, 모자라도 충분히 살 수 있었던 팔자 좋은 본인들을 너그러이 품으라 종용하는 건 아무래도 얄밉습니다(32쪽).”

힘센 자가 엮은 세상 짜임새에 묻어 ‘팔자 좋은’ 쪽에 낀 채 오랫동안 생각 없이 말 함부로 하며 살았네. 하는 아주 큰 부끄러움. 있되 여태 삶을 제대로 바꾸지 못한 건 더 배우고 생각해 볼 게 많기 때문.

생각 없이 함부로 한 말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 “내 말을 가로막는 것과 나를 죽이는 것은 하나의 비탈 위에 놓여 있다(72쪽)”는 리베카 솔닛 말처럼. 그나마 “‘근데 왜 나한테 그래?’나 ‘모든 남자가 다 그런 건 아니잖아?’ 같은 말”로 여성에게 “‘다시 모른 채 살아도 된다고 말해 달라’는 뜻(137쪽)”을 내밀지는 않은 성싶다. 하는 마음 다독임. 있되 웃을 수 없는 건 “이 사회에서 여성혐오의 혐의에서 결백한 사람은 아무도 없(115쪽)”기 때문.

“이제 선택할 때입니다. 원래 평화로운 곳에서 살던 것은 한쪽뿐이었기에 그리로 돌아가는 선택지는 없습니다(60쪽).” “반드시 남성이 중심이 아니어도 세상이 돌아갈 수 있음을 보이는 게(127쪽)” 옳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