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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눈물 ― 오늘의 작가 총서 5 전상국

eunyongyi 2017. 1. 17. 22:10

전상국 지음. 민음사 펴냄. 3판 22쇄 2015년 사월.


“잔나비띤까? 그렇담 내가 사십오 년생이니까 나보다 한 살 위구먼그래. 암튼 우리 나이쯤 되면 잠이나 실컷 자구 싶다는 생각이 들 때두 됐지. 우린 수면 결핍 세대가 아닌가. 태어나면서 곧바루 해방이라 그 들뜬 판국에 잠이나 제대루 재웠겠나. 게다가 코 질질 흘릴 때 육이오 겪었으니 무섭구 배고파 잠 제대루 잤을 리 없지. 그뿐인가, 사일구에다 오일육이오, 군대밥 삼 년 그 지랄 같은 내무반 잠은 또 어떻구. 더구나 이놈의 세상이 발 뻗구 맘 편히 자빠져 자게 내버려뒀느냐 그거야. 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바뀐 게 어디 한두 번이어야지. 요금 세상 돼가는 꼬락서닌 또 어떻구……. 그러구 보니 현 교수, 자네 요금 학생애들 시위 때문에 신경 쓰느라구 잠 못 자는 거 아니야? 듣자니, 요즘 대학 선생들 처지가 말씀 아니라며? 연구해 논문 쓸 일루 가슴 무겁지, 탤런트처럼 인기 끌며 잘 가르치는 유명 교수 되고 싶지, 때가 때니만큼 실천하는 양심 아주 외면키두 뭣하구, 똑똑한 애들 비위 맞춰야지, 자칫하다간 진보적인 젊은 교수들한테 얕잡아 보일까 전전긍긍…… 괜히 어벌쩡하다간 기회주의자니 무능 교수니 어용 교수니 낙인찍히는 날엔 박사구 석사구 설사 될 판국이니 왜 안 그러겠어. 잠이 올 턱이 없지. 젠장 이런 시댄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돼야 돈을 버는 건데…….”

334쪽과 335쪽. <잃어버린 잠> 속 1944년생 원숭이띠 ‘현’과 1945년생 닭띠 ‘최’가 나눈 옛이야기가 ‘1987년 초여름 저녁(357쪽)’에 닿을 줄이야. ‘1988년 이월 이십육일(363쪽)’까지. 마흔세 살이었을 현 교수가 전두환 독재를 몰아내려는 세찬 시민 뜻을 보고도 멈칫거린 그해 — 1987년 ― 유월. 열아홉 살 대학 1학년이던 내 여린 때마저 뇌리에 되살아났다. ‘지랄탄’ 한두 방에 눈에 닿는 저 멀리로 꽁무니 뺀 나. 낯부끄럽다. 앞서 뛰었으되 빠르지 못해 넘어진 사람이 다치지 않게 공중제비 넘느라 내 살갗 좀 쓸렸다고 우쭐해서는 은근히 찢어진 바짓가랑이를 내보이던 그 어린 짓. 그걸, 뜻밖에도, 2017년 일월 박종철 기릴 즈음에 ‘전상국 총서’가 되살릴 줄이야.

“나는 내 살 타는 냄새를 맡았다. 칼침이 아니라 그들은 담뱃불로 내 허벅지 다섯 군데나 지짐질을 했던 것(8쪽)”이라던 <우상의 눈물> 속 학교 냄새. 1940년생 지은이가 고등학교를 다닌 1959년쯤이리라 나는 넘겨짚었다. ‘담뱃불에 살 타는’ 그 즈음 냄새가 내내 ‘이어지고 있는 걸’로 느꼈고. 한데 어느새 1987년에 닿다니. 그 사이 어디쯤에서 내가 태어났을까. 그 사이 어디쯤에서 나는 “그가 들어 있던 그 슬리핑 백 속에서 하나의 머저리를 찾아내었을 뿐(71쪽)”이었을까. 그 사이 어디쯤에서 내가 지은이와 같은 한국 하늘을 이고 있었을까.

‘모르던 소설가 알지 못한 소설 때문에 1987년을 다시 가슴에 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