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코바치, 톰 로젠스틸 지음. 이재경 옮김. 한국언론진흥재단 펴냄. 초판 1쇄 2003년 11월 30일, 2판 1쇄 2009년 9월 30일, 3판 1쇄 2014년 12월 10일.
저널리즘의 목적은 기술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다. 또 기자들이나 그들이 활용하는 취재 보도 기법이 저널리즘의 목적을 정의하지도 않는다. 저널리즘의 원칙들과 목적은 좀 더 기본적인 무엇에 의해 정의된다. 그 기본적인 무엇은 바로 뉴스가 시민들의 생활 속에서 수행하는 기능이다(7쪽).
미국의 저널리즘 역사에는 민주주의 없는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신문 발행인의 사례가 없었다. 그러나 머독의 선언 이후로 저널리즘을 다른 상업적 이익에 예속시키는 소유권 사례는 자꾸 늘어간다(44쪽).
첫 번째 압력은 속도다. 뉴스를 취재하는 상황에서 속도는 언제나 정확성의 적이다(68쪽).
점점 더 많은 매체가 제한된 수준의 수용자 관심을 대상으로 경쟁했다(75쪽).
1990년대 언론에 대한 불신이 커 가고 있을 시기에, 지역 방송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슬로건은 “당신 편에서(on your side)”와 “당신을 위해 일함(working for you)”이었다(93쪽).
길모어는 기자들이 객관성이란 단어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완전성, 정확성, 공정성, 투명성 등의 단어들로 대체해야 한다고 제안한다(126쪽).
일어나지 않은 일을 추가하지 마라. 이것은 “지어내지 마라” 혹은 창작하지 마라를 넘어선다. 왜냐하면 이 말은 시간과 공간을 섞어서 사건을 재구성하는 일과 인물과 사건을 혼합하는 행위를 포괄하기 때문이다(142쪽).
기자들은 진실에 대해 의무감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첫 번째 원칙이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시민들에게 충성해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이 진실을 추구할 수 있다(173, 174쪽).
불편부당(impartial)하거나 중립적(neutral)인 것은 저널리즘의 핵심 원칙이 아니다(181쪽).
“기자들은 그들이 취재하는 대상으로부터 반드시 독립을 유지해야 한다(184쪽).”
원래적 의미의 탐사보도는······중략······발로 뛰기, 공공기록에 대한 조사, 제보자의 활용, 또 특별한 경우는 위장 취재와 잠복 감시 등의 기법이 사용된다(232쪽).
언론의 감시견 역할에 대한 지지는 무조건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대단히 높다(246쪽).
그리스 시장(아고라)의 출발점부터 식민지 시대 미국의 선술집에 이르기까지, 저널리즘은 항상 공공적 토론을 위한 포럼이었다(262쪽).
스토리텔링과 정보는 상충되는 개념이 아니다. 단지 커뮤니케이션이란 연속선 위에 상존하는 다른 두 개의 점일 뿐이다.······중략······기사 쓰기 코치로 일하는 로이 피터 클라크와 칩 스캔런은 효과적으로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시민적 명료성과 문학적인 품격, 그리고 시민으로 살아가려면 필요한 정보 등 세 가지 요소를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288쪽).
표현 방법이 무엇이든,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확실하게 끄는 것은 하나뿐이다. 진실한 기사가 그것이다(324쪽).
결국 대부분의 기자들은 시민들과의 대화가 자신이 몸담은 개별 언론사 차원을 뛰어넘는 임무라고 느낀다. 그것이 기자들의 ‘소명’이다. 또 편집국에서 일하는 모든 언론인들은 그 소명의 집행자다. 경영진은 기자들이 자신의 잠재 능력을 발휘해 소명을 수행해 갈 수 있도록 도울 책임이 있다(3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