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권 지음. 천년의상상 펴냄. 202년 12월 4일 초판 1쇄.
노동력의 상품화를 가능케 한 사회적 배치는 역사적으로 출현했고 역사적으로 사라질 겁니다(23쪽).
그러나 ‘참을 만한' 예속이라고 해서 예속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49쪽).
마르크스는 말합니다. “자본주의적 생산 메커니즘은 자신이 일시적으로 만들어 낸 장애물을 스스로 제거한다.” 일종의 자동조절장치라고 할까요. 축적 메커니즘 자체가 축적의 방해물을 알아서 제거한다는 겁니다. 임금은 더 이상 오르지 않습니다. 자본가를 위한 ‘최선의 세팅'이라는 말이 다시 떠오르는 대목이지요(57쪽).
“자본이 한 사람의 수중에서 크게 팽창했다는 것은 그것이 많은 사람의 수중에서 그만큼 소멸했다"는 뜻(79쪽).
“대공업의 발전과 더불어 부르주아지가 생산하며 생산물을 전유하는 그 토대 자체가 부르주아지 발밑에서 무너져 간다(91쪽).”
마르크스는 재밌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 산업예비군은 마치 자본이 자기 비용을 들여 키워 내기라도 한 것처럼 자본에 절대적으로 매여 있다(120쪽).”
“노동자 계급 중 한 부분을 과로하게 함으로써 다른 한 부분에게 ‘강요된 태만'이라는 형벌을 내리고 그 반대로도 하는 것(한 부분에 강요된 태만의 형벌을 내림으로써 다른 한 부분을 과로하게 하는 것)은 개별 자본가의 치부 수단이자 산업 예비군의 생산을 촉진한다.” 한쪽은 일감이 없어 굶어 죽게 만들고 다른 한쪽은 일이 넘쳐 과로로 죽게 만듭니다. 지금 여기가 자본주의 사회라는 걸 잊는다면, 이건 틀림없이 미친 짓입니다. 그러니 그 ‘미친 짓'을 관두고 모두가 일을 나눠 실업과 과로를 함께 줄여야겠죠. 그런데 이 ‘미친 짓'이 자본가의 이윤을 위해서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입니다(123, 124쪽).
권리, 계약, 법(법칙)만 보는 경제학자들(‘아름다운 법치'의 신봉자들)은 노동자들이 상품으로서 사용되는 노동 과정에서는 물론이고 법적으로 대등한 주체로 간주되는 노동력 거래 과정에서도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걸 모릅니다. 강력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죠. 노동일이 늘어나고 노동 강도가 높아지고 임금 삭감이 이뤄져도(특히 불황기에), 또 부당한 업무 지시를 내려도 이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강하게 주장하기가 어렵습니다(134쪽).
만약 임금 노동자들이 잉여 노동자들(비정규직 노동자, 실업자, 미취업자)과 연대할 수 있다면, 다시 말해 자기 안에 있는 ‘그들일 수 있음'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악몽은 선몽이 될 수도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연대해서 잉여 노동자들 삶의 불안정성과 위태로움을 줄일 방법을 찾는다면 그것은 임금 노동자들의 일자리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는 방법이기도 할 겁니다. 더 나아가 임금 노동자들이 여물을 대가로 매번 노동을 착취당하는 역축 같은 자신들의 운명이, 굶주린 채로 공장 주변을 서성이는 잉여 노동자들의 운명과 동일한 말뚝에 매여 있음을 깨닫는다면, 둘은 함께 해방을 꿈꾸는 동지가 될 수도 있겠지요(139쪽).
공황이 닥치면 시장의 신성한 법칙에 맡겨 두지 않습니다. 정부가 공적 자금을 투입해서 채무도 탕감해 주고 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통화량 조절에 나서지요. 이때는 자본가도, 정치경제학자도 시장의 자율에 맡겨 두라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150쪽).
우리는 어떤 것을 규정하거나 정의할 때 중심 내지 내부에 주목하는데요. 실제로 규정이 선명한 곳은 중심이 아니라 경계, 한계, 주변입니다(220쪽).
나는 영국 노동자 계급이 아일랜드 해방을 자기 해방의 ‘첫 번째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말을 중심 노동자들이 주변 노동자들의 해방을 자기 해방의 ‘첫 번째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로 바꾸고 싶습니다.······중략······이들 주변 노동자들, 잉여 노동자들의 처지가 개선될 수 없는 한에서, 그리고 이들이 계속해서 자본 축적을 가속화하는 원천이 될 뿐 아니라 노동자 계급을 통제하는 효과적인 장치로 기능하는 한에서 중심 노동자 곧 정규직 노동자의 처지도 근본적으로 나아질 수 없습니다(221쪽).
자본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이 자본의 기능(function)이 아니라 기능 부전(malfunction)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로 나타날 때, 더 나아가 자본 관계를 해체할 수 있는 잠재성을 내비칠 때 우리는 이들을 프롤레타리아트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244쪽).
'나책좋아요 ILike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본론 제1권 자본의 생산과정(상)•(하) (0) | 2023.06.11 |
---|---|
북클럽 자본 12.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 (0) | 2023.05.21 |
언론게릴라 뉴스타파하다 (0) | 2023.05.07 |
북클럽 자본 10. 자본의 재생산 (0) | 2023.05.06 |
북클럽 자본 9 ━ 임금에 관한 온갖 헛소리 (0) | 2023.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