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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Moby Dick)

eunyongyi 2016. 2. 9. 16:53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작가정신 펴냄. 2011년 5월.

 

 

“실례지만 총감이 대체 누굽니까?”

“공작님이시다.”

“하지만 공작님은 이 고래를 잡은 것과 아무 관계도 없었는데요.”

“고래는 공작님의 것이다.”

“우리는 죽을 고생과 위험을 무릅쓰고 돈도 꽤 썼는데, 공작님만 이득을 보시는 건가요? 우리는 고생만 죽도록 하고, 얻는 건 손에 생긴 물집뿐인가요?”

“고래는 공작님의 것이다.”

“공작님은 이렇게 악착같이 굴지 않으면 생계를 꾸려갈 수 없을 만큼 가난한가요?”

“고래는 공작님의 것이다.”

“저는 이 고래에서 제 몫을 받으면 몸져누워 계시는 노모의 고통을 좀 덜어드릴 생각이었는데요.”

“고래는 공작님의 것이다.”

“공작님은 반의 반, 아니면 반으로 만족하시지 않을까요?”

“고래는 공작님의 것이다.”

요컨대 고래는 몰수되어 팔렸고, 웰링턴 공작이 그 돈을 받았다(484 ~ 485쪽).

 

 

공작은 참 나쁜 놈이다. 나는 그리 느껴, 내 맘에 새기고픈 것 꺼내며 고래를 삼켰다. 그리 읽다 보니 맵고 신 삶에 흰 고래를 비춰 보려 했더라고 해 두자. 에이 해브와 이슈마엘에게서 허먼 멜빌이 보였다. 듣기도 했고.

공작 같은 놈들. 재벌과 어설피 재벌 흉내 내는 놈, 왕 노릇 하려는 것과 정치 더럽게 하는 놈 따위. 그것들 때문에 나와 내 주변 삶이 힘들고 고생스러웠다. 지금도 어렵고 고되기에 제대로 갚아 주는 걸, 나는 맡은 바로 여긴다.

“나는 폭풍 속에서 돛대가 부러진 군함을 끄는 밧줄처럼 팽팽히 긴장되어 있고, 반쯤은 궁지에 빠진 느낌이다. 남들에게도 그렇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끊어지기 전에 우지끈 소리를 낼 것이다. 그 소리가 들릴 때까지는 에이해브의 밧줄이 아직 자신의 목표를 악착같이 끌어당기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667쪽).”

끊어지기 전에 우지끈이라도 하려고 나는 매우 모질고 끈덕지게 목표를 겨누련다. 내가 늘 겨냥하고 있음을 네놈은 마음에 깊이 새겨 두라. 내 꼭 네놈 가슴에 서늘히 박혀 주마.

“아아! 그들은 자신을 파멸시킬지도 모르는 고래를 찾아 끝없이 넓고 푸른 바다를 어디까지 헤치고 가려는 것일까(661쪽)!”

끝 간 데 없기에 두렵게 마련이지만 끝을 보려 땀 흘리리라. “그저 느끼고 느끼고 또 느낄 뿐. 그것만으로도 인간에게는 충분히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야(669쪽).” 끝을 느끼고 또 느끼며 네놈 겨눈 내 눈길에 설렘 북받친다.

“스타벅, 이리 가까이 오게. 내 옆에 서게. 내가 인간의 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 주게. 바다나 하늘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그게 낫겠어. 신을 우러러보는 것보다 그게 낫겠어(644쪽).”

뜻밖에 네놈이 절로 쓰러지는 것 따위는 바라지 않아. 네놈 쓰러뜨리려 뭐든 할 테야. 우러를 신 없다는 것 아니까. “보라. 신들은 모두 선하고 인간은 모두 악하다고 믿는 자들이여! 고통 받는 인간을 망각해버린 전지전능한 신을 보라. 그런데 백치에다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인간은 신에 대한 사랑과 감사로 가득 차 있구나. 오라! 나는 황제의 손을 잡은 적도 있지만, 그보다는 너의 검은 손을 잡고 가는 편이 더 자랑스럽구나(620쪽)!” 맞잡아야 할 손이 누구의 것이어야 할지 잘 아니까.

“(에이해브) 당신은 바로 그들의 무덤 위를 달리고 있는 거요(640쪽).”

나도, 내 주변 착한 사람들도 네놈에게 버티다 돌아간 이들의 무덤 위를 달린다. 그게 곧 내 힘. “배는 물을 헤치고 돌진하면서 바다에 깊은 고랑을 남겼다. 그것은 빗나간 포탄이 밭을 가는 보습이 되어 평평한 밭을 갈아엎는 것처럼 보였다(659쪽).” 쉬 잊히고 말지라도 밭을 갈아엎고 바다에 깊은 고랑 남길 터. 네놈 두렵게. 그 고랑, 그 배 밑 무덤 “여기에는 수백만의 그늘과 그림자가 뒤섞여 있고, 꿈과 몽유병과 몽상이 가라앉아 있으며, 우리가 생명과 영혼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이 누워서 여전히 꿈을 꾸고, 침대에서 자고 있는 사람들처럼 몸을 뒤척인다. 파도가 계속 일렁이는 것은 그것들이 밑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이다(575쪽).”

“열대지방에선 소나기가 갑자기 닥쳐오지. 갈라파고스 제도의 알베마를레 섬은 한가운데를 적도가 지나고 있다는군. 저 늙은이도 한가운데를 일종의 적도가 지나고 있는 것 같아. 항상 적도 밑에 있는 것처럼 뜨거우니까 말이야(626쪽).”

나도 ‘저 늙은이(에이해브)’처럼 뜨거워. 내 주변 착한 이 여럿도 늘 적도 밑에 있는 듯 뜨거운 걸 느껴. 네놈이 더욱 두려움에 떨어야 할 까닭이겠지.

“그대는 누구도 가차 없이 죽인다. 두려움을 모르는 바보도 이제는 절대로 그대에게 반항하지 않는다. 나는 그대의 불가사의한 위력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 힘이 무조건 나를 지배하려 들면, 나는 지진 같은 내 생명이 끝날 때까지 저항하겠다(602쪽).”

네놈은 힘세 보일 때가, 센 척할 때가 많았지. 네놈이 힘 좀 세더라도 ‘무조건 지배하려 들면’ 나는 ‘끝날 때까지’ 굽히지 않겠다. 그러니 나를 죽여라. 뒷날 내 무덤 위를 달릴 착한 이를 위해.

“고래잡이라는 직업에는 한가한 직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위엄과 위험은 손을 맞잡고 간다. 선장이 되기까지는, 지위가 올라갈수록 더 고생스럽게 힘써 일한다(569쪽).”

에이해브는 한가할 틈 없는 고래잡이 노동자였고 위엄과 위험을 맞잡고 살았으며 선장이 되기까지 더 고생스럽게 힘써 일했다. 모든 노동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했으나 자본을 가진 몹쓸 네놈은 ‘한가한 적 없이 위엄과 위험을 맞잡은 이’를 꺼렸지. 제 놈이 노동자의 위엄과 위험이 거북하다 보니 매우 이상한 놈들을 부러 부리지 않았던가. 개처럼 기는 놈들 말이야. 단 한 번도 고래를 잡아 본 적 없는 놈이 작살을 제대로 던질 줄 모르는 놈들을 부러 부린 거. 부러. 실없이 거짓으로. 그것들 모두 그냥 개 같은 거에 지나지 않았지.

네놈들 모두 쓰레기. 음. “내 방향을 바꾼다고? 너는 내 방향을 바꿀 수 없다. 그렇다면 네가 너 자신의 방향을 바꿔라(222쪽).”

“모든 인간은 목에 밧줄을 두른 채 태어났다. 하지만 인간들이 조용하고 포착하기 힘들지만 늘 존재하는 삶의 위험들을 깨닫는 것은 삶이 갑자기 죽음으로 급선회할 때뿐이다. 여러분이 철학자라면, 포경 보트에 앉아 있어도 작살이 아니라 부지깽이를 옆에 놓고 난롯가에 앉아 있을 때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공포를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354쪽).” 공포는. 죽음은. 사실 언제나 삶과 죽음 위를 걷는 거. “그의 성한 다리는 갑판 위에 활기찬 메아리를 만들어내고 있었지만, 죽은 다리는 갑판을 디딜 때마다 관을 탕탕 두드리는 듯한 소리를 냈다. 이 노인은 삶과 죽음 위를 걷고 있었(298쪽)”던 것처럼.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이 지상의 공기는 육지든 바다든 간에 공기를 내쉬면서 죽은 수많은 사람들의 형언할 수 없는 비참함으로 심하게 오염되어 있(164쪽)”다. 누구나 알고 있듯. “인간 세상은 주식회사나 국가처럼 혐오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악당도 있고 바보도 있고 살인자도 있을 것이다(161쪽).” 하여 “세계는 자오선과 관계없이 어디나 사악하다(95쪽).”

“태풍은 졸린 듯 멍하고 나른한 마을에서 폭탄이 폭발하듯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느닷없이 시작된다(596쪽).” “폭풍에서 폭풍으로! 그것도 좋다고 해 두자. 진통 속에서 태어난 인간은 고뇌 속에서 살고 고통 속에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도 좋다고 하자. 여기에 재난이 닥쳐오는 것을 꿋꿋이 견뎌내는 사나이가 있노라! 그것도 좋다고 하자(519쪽).” “이런 인생에는 죽음만이 바람직한 결말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죽음은 미지의 낯선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일 뿐이고, 무한히 멀고 황량한 곳, 육지로 둘러싸이지 않은 바다로 들어갈 가능성에 보내는 첫 인사일 뿐이다(579쪽).” 가벼운 첫 인사를 위해 바로잡을 것 말끔히 잡고 가자. “이들이 나타나면 선원들은 기뻐서 환호성을 지른다. 언제나 원기왕성하고,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서 상쾌한 파도와 함께 온다(193쪽).” 자, 가자. 큰 놈(a moby dick) 잡으러.

…….

“늦은 오후였다. 창을 던지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도 끝나고, 태양과 고래는 해질녘의 아름다운 바다와 하늘에 떠서 함께 조용히 죽어갔다(589쪽).” “눈을 감지 않으면 아무도 자신의 정체성을 올바로 느낄 수 없다(92쪽).” “꼬박 한 시간이 지났다. 그 한 시간은 두들겨 편 금박처럼 연장돼 몇 세기처럼 느껴졌다. 이제 시간 자체가 강렬한 긴장감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671쪽).”

…….

“에이해브는 깊이 눌러 쓴 모자 밑에서 바다로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드넓은 태평양도 그 작은 눈물 한 방울 같은 보물을 갖고 있지 않았다(6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