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뜩퍼뜩. 예사롭지 않았다. 오랜만에 탄 기차였기 때문일까. 기차라기보다 ‘케이티엑스(KTX)’였기 때문일 듯. 창밖이 퍼뜩댔다. 부산 쪽일 때엔 눈길 오른쪽, 서울 녘일 때엔 눈길 왼쪽에 늘 63 빌딩을 두게 마련이었는데 그리 낯선 건 시간 탓일 성싶었다.
발바닥에 닿는 흔들림도 달랐다. 절거덩… 한숨 뒤 다시 절거덩대지 않고 그냥 쉭, 쉭. 덤덤히. 오른쪽 창밖 한강 철교 뼈대가 눈 뒤로 잇따라 넘어갔다. 남의눈 의식하며 멋들어지게 턱을 괴거나 처음 본 예쁜 사람과 그럴싸한 사랑을 꾸렸으면 하는 바람에 붙들리지도 않았고.
2013년 사월 9일. 봄이었는데. 나는. 왜 창밖 꽃이나 새싹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까. 그게 퍼뜩퍼뜩한 케이티엑스였기 때문일까.
그때 나는 어느 마이너 신문사 출판팀 부장. 세상에 ‘마이너’를 제호로 삼을 신문사가 어디 있을까마는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어느 ‘메이저’ 신문사 기자는 내가 그때까지 18년쯤 땀 흘린 곳을 그리 꾸몄다. 마이너… 라고. 기분이 조금 나쁘기도 했지만 그 메이저 신문사 기자가 내로라하며 어깨에 힘주는 한국 언론계 현실이 더욱 씁쓸했다. 메이저 아래 마이너를 두는 얕은 계층 의식을 품은 데다 그리 굳혀 둬야 메이저의 밥벌이(광고 따먹기)가 손쉬운 구조. 마이너라 여겨 둬야 공정히 보도하지 못하는 제 놈들 구린 속을 얼마간 덮을 수 있는 꼴.
줏대 없이 굽힐 건 아니었으되 나는 허허 하고 너털대지도 못했다. 그가 선배였기 때문. 메이저 신문사에서 일한 그와 선후배 사이로 지냈기에. 기자랍시고 내 어깨에도 얼마간 힘 추어올리며 살았기에. 부끄러운 줄 모르고 마구 설치기도 했던 터라 쉬 웃을 수 없었다. 특히 나의 그 마이너 신문사가 공정한 보도 체계를 갖추지 못했고, 올바르게 땀 흘릴 뜻이 엷었으니 어찌 웃을 수 있었으랴. 하여 나는 그 신문사를 ‘공정히 보도할 줄 모르고 그리할 생각조차 없기에 어쩔 수 없는 마이너’라 여겼다.
이쯤에서 더 밝혀 둘 건 나는 온전한 출판인이 아니었다는 거. 2012년 사월 1일에야 출판팀에 갔다. 기껏해야 한 해쯤 그 마이너 신문사의 출판 생태를 살핀 뒤 출장길 한강 철교를 케이티엑스로 건넜다. 책 좋아하고 서너 권 짓긴 했으되 출판 노동자로서 씩씩할 수 없던 까닭이다.
‘출판부장’이라 말할 수도 없었다. 보직 없는 ‘부장 대우’로 발령돼 출판부(팀)를 제대로 맡은 게 아니었고, 그럴 자격을 미리 쌓지도 않았다. 하여 거듭 말해 두는데 나는 그 마이너 신문사 출판팀, 아니, 명확하게는 ‘교육출판센터’의 부장 비슷한 그 무엇이었다. ‘부’가 아닌 데다 교육과 출판을 묶은, 그것도 ‘센터’라 하니 뭐 대단히 큰 조직으로 여겨질 수 있겠으나 후유. 그렇지 않았다. 이른바 ‘적자 조직’으로 내몰린 교육팀과 출판팀을 한데 모은 것에 지나지 않았고, 나는 출판 쪽 신입 사원과 다를 것 없이 내버려 두어졌다. 더할 것 뺄 것 없이 딱 그랬다.
나는 그나마 교육출판센터에 잘 딸려 지내기도 어려운 처지였다. 허울은 ‘교육출판센터 부장 대우’이되 교육이든 출판이든 뭘 결정하거나 일을 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 가슴 아프지만 더 말해 두자. 한마디로 ‘너, 회사에서 나가라. 그래야 내 속이 편할 것 같다’는 그 마이너 신문사 안 몇몇의 속마음이 ‘교육출판센터 부장 대우’ 발령에 고스란했다. 내게 출판 부장에 걸맞은 결재권 같은 게 아예 없었던 까닭이요, 내가 스스로를 “출판부장”이라 일컫지 않은 이유였다. 더할 것 뺄 것 없이 딱 그랬다.
그해 사월 6일. 그리 발령된 지 닷새 뒤. 마이너 신문사에서 교육출판센터와 사업팀을 함께 맡던 국장 A는 국 회의를 열어 “당분간 출판 쪽을 지원해”라고 내게 말했다. ‘교육출판센터 부장 대우’로부터 ‘교육’을 떼고, 국 동료에게 ‘얘는 출판 쪽을 지원하는 정도일 뿐’이라고 내보였던 것.
“나는 니(네)가 삼 개월 안에 (회사를) 그만둘 걸로 예상했다.”
1년쯤 뒤 국 회식 자리에서 A가 말했다. 내가 ‘교육출판센터 부장 대우’로 발령된 2012년 사월 1일로부터 3개월을 견디지 못하고 그 마이너 신문사를 떠날 걸로 보았다고. 맞다. 그랬다. 나는 매우 어려웠다. 적자 내는 조직으로 내몰려 고통 받는 구렁(출판팀) 한가운데에 던져졌기에.
A와 A 위 몇몇 때문에 나는 마르고 시들었다. 고통스레. A를 동아줄 삼아 지붕에 오르려는 또 다른 몇몇 때문에 우그러지고 쭈그러들었고.
나는. ‘돈 얼마간 태웠으니 둔(돈) 많이많이 벌어오라’는 구조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럴 수 없었다. 그리해 본 적 없었으니까. 왜? 글쟁이였으니까. “신문기자만 생각하며 살았다”고 얼마간 눙칠 만큼은 되는 쟁이.
출판팀에 내쳐지기 한 해쯤 전인 2011년 사월 26일. A 위 몇몇이 신문에서 내 기자(記者) 바이라인을 뗀 날. 나는. 그 마이너 신문사 인터넷 사이트에서 내 이름을 검색했다. 투덕투덕. 손가락 끝 자판이 아프겠다 싶을 정도로 세게 이름 마지막 받침을 두드렸더니 ‘11,818건’이 떴다. “일만… 천팔백, 십팔.” 꽉 채운 16년간 기사 쓰느라 자판을 투덕거린 결과가 그랬다. “만… 십팔, 십팔.” 마이너 신문사 인사 발령 소식 따위에 내 이름이 포함된 때가 있었고, 성심성의껏 쓰지 않거나 매우 짧게 쓴 기사도 많았지만, ‘만 천팔백십팔’은 내 자존과 땀의 상징으로 가슴에 깊이 내려앉았다.
그 뒤 1년은 ‘사설(社說)’에 묶여 쓰고 싶은 대로 쓰지 못한 부장 대우 논설위원. 마이너 신문사 주장과 뜻에 맞춰 써내는 고통스런 글쟁이로 살았다. 회사가 내 고통을 벗겨 줄 요량이었을까. 앞서 말한 2012년 사월 1일. 나는 아예 붓을 빼앗긴 채 어설픈 출판인의 길로 들어섰다. 귀띔 없이. 충격으로.
그때. 나는. 근로기준법 제23조(해고 등의 제한)를 그 마이너 신문사에 내밀었어야 했다. “정당하지 않은 전직(轉職)”이라고 목청 돋우었어야 했던 거. 16년간 기자로 살았고 1년간 논설위원이었으며, 신문사 안팎 모두가 나를 기자로 알았음에도 아무런 귀띔과 물음 없이 교육출판센터로 내몰렸으니까.
그때. 나는. 마음이 여리고 약해. 어금니 사리물고 뒤로 물러났다. 조용히.
그 마이너 신문사 노동조합 위원장(2005년 시월 ~ 2006년 구월)였던 나. 누구나 자유로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탈퇴할 수 있어야 함에도 이와 다른 옛 노조 운영 규정에 따라 ‘부장 대우 논설위원’이 된 2011년 사월 26일 조합원 자격을 ‘그냥’ 잃었다. 그리 홀로 서고 보니 1년쯤 뒤인 2012년 사월 1일 ‘교육출판센터 부장 대우’로 발령됐을 때 “전직 배치가 부당하다”고 외칠 힘에 부쳤다. 그해 칠월까지 3개월간 위산이 식도를 저몄고, 한밤에 조용히 눈꺼풀 드는 노여움으로 나는 뒤척였다. 그리 치 떨었음에도 나는 끝내 ‘그때!’ 맞서지 못했다.
결국. 맞서지 않았기에. 나는 1년 뒤 더 어려운 지경에 내몰렸다. 2013년 사월 1일. 마이너 신문사의 A와 A 위 몇몇이 ‘교육출판센터’를 ‘교육출판팀’으로 바꾸더니 내 고등학교 후배인 B를 팀장 자리에 앉혔다.
“이 부장님, 앞으로 정규직 사원으로서 처신을 잘하셔야 할 겁니다.”
교육출판센터에서 ‘차장 직무 대리(과장)’로서 교육 사업을 맡았던 B. 교육출판팀장이 된 첫날, 내게 팀원 처신을 요구했다.
학연이나 지연 따위를 싫어하고 미워한 내 삶에 대한 한국 사회와 B의 앙갚음이었을까. 나는 B에게 짓밟히기 시작했다. ‘너는 여태 버티고 있냐. 웬만하면 좀 나가라, 나가!’ 하는 A와 A 위 몇몇의 싸늘한 눈초리가 B를 거쳐 오롯이 내게 건너왔다.
음. 그쯤에서. 내 어설픈 출판인 차림새가 고스란히 세상에 드러났다. 독백도 시작됐다. 깊고 깊은 가슴 아래에서 낮은 파장으로 우러나는 웅얼웅얼. “나는… 일만… 십팔, 출판을… 제대로….” 끄응. 끙.
나는 어설픈 출판 노동자였고. 여리고 약해 지방노동위원회에 ‘그때!’ 부당한 전직 배치를 구제해 달라고 신청하지 못한 채 치만 떨었으며. 죄 짓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차꼬를 찬 꼴이었다. 차꼬는… 2014년 팔월 부당 해고와 2015년 일월 재징계로 이어진 그 마이너 신문사 횡포의 빌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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