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 ‘100억 과징금’ 딜레마··· 묘수 있을까
감사로 드러난 방통위 속살
형법 무색한 업무처리 횡행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2015년 SK텔레콤·KT·LG유플러스·SK브로드밴드 등에 물렸어야 할 100억 원대 과징금을 두고 뒤늦게 궁지에 빠졌다. 사업자들이 2014년 7월부터 2015년 3월까지 9개월 동안 여러 방송통신상품을 하나로 묶어 팔면서 경품을 지나치게 많이 곁들인 책임을 묻고자 2015년 3월부터 사실조사를 벌였음에도 과징금을 물리지 않은 채 덮었는데, 이를 3년 3개월이 흐른 2018년 6월에야 바로잡으려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처지가 됐다.
방통위의 ‘이용자정책국 특정감사 결과 보고서와 처분 요구서’를 보면 감사팀은 정책국으로 하여금 “2015년 3월 실시한 과다 경품 조사 건에 대한 처리 방안을 강구”하게 했다. 하지만 시장(사실)조사 자료가 사라진 게 문제. 2015년 3월 사실조사 때 확보한 방송통신상품 판매점의 경품 위법 행위 증거와 사업자 본사 과금 자료, 두 자료를 맞대어 분석한 자료가 모두 사라진 것으로 드러났다. 방통위 한 관계자는 시장 규제에 쓰일 핵심 자료가 사라진 터라 검찰(서울동부지방검찰청 형사6부) 수사에서 방통위 직원의 형법상 “공무집행방해나 증거 인멸 혐의”가 새롭게 불거질 수 있다고 봤다.
김재영 방통위 이용자정책국장은 이와 관련, “(감사 결과 처분 요구에 따라 2015년 3월 사실조사 사후) 처리 방안을 강구 중에 있다”고 말했으되 자료가 사라진 까닭을 두고는 “답변드릴 수 없어 노코멘트한다”며 피해갔다. 실무자인 고낙준 방통위 통신시장조사과장도 감사 결과 처리 방안을 두고 “대외적으로 공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어서 아무것도 말씀드릴 수 있는 사항이 없다"며 입을 다물었다.
김 국장과 고 과장의 함구와 달리 ‘이용자정책국 특정감사 조치 계획’이 운영지원과에 제출됐으되 과징금 부과 여부가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시장조사 관련 규정을 개정하고, 사실조사 중간에 누군가 개입하지 못하게 할 수단을 마련하며, 시장조사 사건 번호 규정에 따라 사건을 관리한다는 계획만 담긴 것. 이를 올해 말까지 마무리한다는 게 이용자정책국 조치 계획이다.
방통위의 또 다른 관계자는 “과징금 관련해서는 (뉴스타파 보도와 검찰 수사로) 이슈화했기 때문에 (이용자정책국장이) 임의로 처리할 순 없고, 위원회에 의결 안건으로 올라갈 것으로 생각된다"고 전했다.
▴2018년 3월 방통위의 ‘이용자정책국 특정감사 결과 처분 요구서’ 20쪽. 2015년 3월 경품 사실조사 ‘처리 방안을 강구’하라고 요구했다.
자료, 언제 어떻게 사라졌나
지난 4월 30일 이번 특정감사를 지휘한 김 아무개 방통위 운영지원과장은 “(관련 자료가) 언제 없어졌는지를 감사하기 전까지는 인지를 못했고, 감사하면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용자정책국 특정감사를 시작한 2017년 12월 12일 뒤에야 알았다는 것. 실제로 감사팀은 자료가 사라진 때를 짚지 못했다.
의문점은 운영지원과장에 앞서 2016년 2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이용자정책국 이용자정책총괄과장을 지낸 김 과장이 왜 관련 자료 존재 여부를 2017년 12월 12일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됐느냐는 것. 뉴스타파가 2016년 10월 12일 <방통위, 통신사업자 과징금 100억 원대 위법행위 알고도 덮었다>고 보도하면서 사건이 꾸준히 쟁점화한 데다 1년 뒤인 2017년 10월 13일 김경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의 관련 자료 제출 요구까지 있었음에도 내내 자료가 남아 있는지 “인지를 못했다”고 말해 의혹을 샀다. 자료가 사라진 것에 책임이 있을 개연성이 있는 공무원 가운데 하나인 김 과장이 운영지원과장으로서 이용자정책국 특정감사를 지휘한 체계도 문제로 지적됐다.
김 과장은 “저는 그게(자료) 언제 빠졌는지 알 수가 없어요. 관련자들한테 다 물어보세요. 백⭘⭘, 박⭘⭘, 정⭘⭘, (자료가 담겨 있던 피시를) 지금 쓰고 있는 윤⭘⭘이라든지, 혹시라도 제가 유사한 지시를 한 적이 있는지, 컴퓨터를 교체하면서 자료를 일부러 누락시켰는지 다 확인해 보세요”라며 자신이 “(방통위 안팎에서) 쓸데없는 오해를 받는데, 자료를 감추거나 은폐하거나 한 적 없다”고 말했다. 이는 ‘검찰 수사를 받는 김 아무개 전 이용자정책총괄과장의 후임임에도 관련 자료 존재를 1년 2개월 넘게 확인해 보지 않은 까닭’과 ‘2017년 10월 국회 국정감사 무렵에 자료가 담겨 있던 피시를 굳이 바꾼 이유’에 대한 물음에 돌아온 답변이다.
▴2018년 3월 방통위의 ‘이용자정책국 특정감사 결과 처분 요구서’ 19쪽과 각주. 자료가 사라져 사업자 ‘유착 의혹’이 일었고 방통위 조사 업무 신뢰성을 떨어뜨렸다고 짚었다.
검찰 수사에선 “피시가 없어졌다”는 진술과 “피시 내용연수(사용 가능 햇수)가 다 돼 없앴다”는 진술이 맞섰다. 김 아무개 방통위 운영지원과장이 이용자정책총괄과장(2016년 2월 ~ 2017년 12월)일 때 반 아무개 전임 운영지원과장의 내용연수 결재를 얻어 경품 사실조사 자료가 담겨 있던 피시를 새것으로 바꿨다는 것. 김 과장은 “(자료가) 그전(피시를 바꾸기 전)에 없어졌겠죠. 자료가 (담겨) 있을 걸로 추정하지, 담당들도 자기 컴퓨터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며 누군가 임의로 자료를 없앴을 개연성을 두고 “모함”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방통위 안에선 2015년 3월 사실조사 때 뽑아 둔 사업자별 경품 위반율을 바탕으로 삼아 이제라도 과징금을 물릴 수 있다는 시각과 원천 자료가 없어 가능하지 않다는 의견으로 갈린 상태. 규제하더라도 원천 자료가 없기 때문에 사업자가 불복할 수 있을 것으로 풀이됐다. 결국 방통위 이용자정책국이 내놓을 묘수에 따라 100억 원대 과징금을 국고에 새로 보태거나 한 푼도 거둬들이지 못하게 됐다.
▴2017년 10월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경진 과기방통위원과 김 아무개 과장이 주고받은 말. 김 과장은 이 대화 속 ‘자료’를 두고 “결과 보고서 형식으로 된 게 없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료: 국회 과기방통위 속기록)
과징금 덮은 책임 가를 진술 나와
“국장이 그만두라 했다.”
2015년 3월 경품 사실조사를 지휘한 김 아무개 전 이용자정책총괄과장이 시장조사관에게 했다는 말. 방통위 감사에서 나온 시장조사관 진술이다. 경품 관련 ‘전산 자료 분석을 중단하라는 지시’도 함께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직무유기 공동 범행’ 혐의로 검찰에 수사 요청된 김 아무개 전 이용자정책총괄과장과 박 아무개 전 이용자정책국장 사이 진위 다툼이 일어날 수 있을 대목으로 보였다.
박 국장이 실무자에게 2015년 3월 경품 위법행위를 “제재하지 말라”는 취지로 지시했고, 그해 9월에 따로 벌인 2차 사실조사를 두고도 2016년 1월께 자료 분석을 “중단”할 것과 “제재하지 말고 (경품 관련) 기준을 만드는 것으로 출구전략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는 진술까지 나왔다. 특히 박 국장이 2016년 3월께 “경품 조사 시의성이 없는데 왜 계속하느냐”며 “중단하라”고 시장조사관을 내리눌렀다는 진술이 더해져 형법상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샀다. 진위를 가를 검찰 수사에 방통위 안팎 눈길이 쏠렸다.
▴2018년 3월 방통위의 ‘이용자정책국 특정감사 결과 처분 요구서’ 12쪽과 각주. ‘⭘⭘⭘’은 박 아무개 전 이용자정책국장. 제재가 가능했던 경품 조사 결과를 제도 개선으로 돌리게 한 정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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