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위원회가 심판 일정이 많아 바쁩니다. 중요 쟁점들은 이유서와 답변서로 모두 확인했으니 위원들 질문에 간단히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방노동위원회 공익 위원 최선애. 조급해 보였다. 2015년 사월 28일. 마이너 신문사가 나를 부당히 인사 발령하고 징계했거나 부당노동행위를 했는지를 심판할 위원회의 위원장으로서 심문 회의를 시작하며 내놓은 첫마디. ‘오늘 바쁘니까 짧게 대답하는 게 좋겠어.’
그가 무뢰하진 않았다. 최선애의 미간이 신경질적으로 팩팩한 듯싶다고 얼핏 걱정한 건 온전히 내 느낌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라, 나는 여겼다. 그는 점잖게 말했을… 거였으니까. 실제로 그날 지방노동위원회 제2 심판정에선 오후 두 시 시작한 내 사건뿐만 아니라 다툼이 세 건이나 더 있었다. 세 시 신대방○○아파트관리사무소, 네 시 퍼○○코리아, 다섯 시 ○○엔지니어링으로 심문 회의가 잇따랐다. 최선애는 그러니까, 한 시간에 한 사건씩 매조지하면 좋겠다는 뜻이었으리라.
나는. 그러나 오후 세 시에 시작할 다른 사건을, 지방노동위원회의 바쁜 일정과 최선애의 조급한 마음을 헤아릴 겨를이 없었다. 절실, 했으니까. 그 마이너 신문사의 징계 행위가 부당노동행위로 밝혀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리 갈망했음에도 나는 주춤했다. 마이너 신문사의 부당노동행위를 밝혀 주리라 기대한 공익 위원 셋 가운데 하나, 특히 내 사건을 심판할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은 이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게 없었으니까. 음. 얌전히 짧게 대답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최선애는 못내 귀찮은 듯했다. 한 시간여 뒤 최후 진술도 “짧게 해 달라” 했다. 내 이유서와 마이너 신문사의 답변서로 사건을 이미 파악한 데다 심문도 했으니 ‘굳이 길게 말할 게 없지 않겠니.’
나는. 그의 그리 바쁜 일정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 “어릴 적 꿈인 신문기자가 되려고 내내 노력”했고, 그 마이너 신문사에서 “십육 년간 기자로 제일선에서 뛰었고, 일 년간 논설위원으로 땀 흘렸음에도 나를 부당히 내치려 한다”며 길게 구구절절 분노했다. 마이너 신문사의 몇몇이 “반성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역시 길게 구구절절 덧붙였다.
최선애는. 고맙게도(?) 내 최후 진술이 끝난 뒤 마이너 신문사의 몇몇에게 다시 요구했다. 짧게 말하라고. 제2 심판정이 바쁜 날이었으니까.
바빴기에. 지방노동위원회 공익 위원 조성혜는 내가 마이너 신문사의 몇몇을 향해 “심각한” 수준으로 명예 훼손 행위를 한 것 같다고 짧게 말했다. 자신이 맡은 심판위원회 전인 2014년 팔월, 해고될 때 명예 훼손 갈등이 불거지지 않았으니 되레 다행이지 않느냐고 역시 짧게 덧붙였다.
바빴기에. 지방노동위원회 공익 위원 이진영은 내 구제 신청 사건의 심문 회의 질문 거의 모두를 홀로 몰아 했다. 그가 주심(主審)이었고, 조성혜는 친절한 이진영의 세심한 질의 덕분에 매우 간단히 심문할 수 있겠다고 추어올리며 명예 훼손 건에 대해 예단했다. 최선애도 이진영의 질의에 만족했는지 내게 사건을 두고 이것저것 따로 따져 묻지 않았다.
최선애•조성혜•이진영은 공익(公益)적이었나. 내 심판위원회에서.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얼마나 깊이 고민했을까.
최선애. 지방노동위원회 상임 위원. 변호사다. 최선애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 김신&유 등을 거치며 노동 법률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듯했다. 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이 추천한 공익 위원이었다가 2012년 유월 한국경영자총협회 추천으로 다시 위촉됐다. 2014년 시월 지방노동위원회 상임 위원 공모에 응해 3년간 임용됐다. 상임 위원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의 추천(서류 심사와 구술 면접)을 받은 뒤 고용노동부 장관의 제청(면접 심사)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추천 공익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박근혜 정부의 상임 위원 임명장을 받았으니… 노동자보다 사용자 쪽에 기운 공익을 더 고민할 개연성이 있다고, 아마 그럴 것이라고 나는 봤다.
조성혜. 지방노동위원회 공익 위원. 대학교수다. 대전대학교를 거쳐 2006년 삼월 동국대 법학과 부교수가 됐다. 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이 추천한 공익 위원이다. 노무현 정부 때로부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사법개혁위원회전문위원, 행정심판위원, 한국법제연구원자문위원, 공무원후생복지심의위원, 적극적고용개선위원, 고용정책심의위원, 위한법령해석심의위원, 고용보험심사위원 따위를 맡았다. 조성혜는 이런 노력에 힘입어 2015년 이월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2014년에 건전한 노사 관계를 구축하는 데 공로가 있다고 박근혜 정부가 인정해 널리 알려 칭찬(표창)한 거다. 박근혜 정부의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으니… 노동자보다 사용자 쪽에 기운 공익을 더 고민할 개연성이 있다고, 아마 그럴 것이라고 나는 봤다.
이진영. 지방노동위원회 공익 위원. 변호사다. 법무법인 정세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기업•금융•노동•근로 전문 파트너 변호사로 소개됐다. ‘노동’과 ‘근로’를 굳이 따로 밝혀 적어 내민 까닭이 무엇인지 모를 일이나 그는 한국경영자총협회 추천을 받은 공익 위원이다. 이진영은 1987년, 내가 대학에 갔던 해, 6•10 민주 시민 항쟁이 뜨겁던 그해에 대학에 갔다. 1991년 대학을 졸업했고, 9년여 뒤인 2000년 이월 제42회 사법 시험에 합격했다. 나는, 1987년 이삼 월쯤 머리가 제대로 깨지기 시작한 데다 유월 민주 시민 항쟁의 열기를 주체하기 힘들어 괴로워하며 세상 보는 주관을 품었다. 갓 스물이던 이진영도 그때 그 열기 속에 있었던 터라 혹시 세상 보는 눈이 나와 얼마간 비슷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으되 그가 한국경영자총협회 추천을 받았으니… 노동자보다 사용자 쪽에 기운 공익을 더 고민할 개연성이 있다고, 아마 그럴 것이라고 나는 봤다.
공익. 사회 전체의 이익. 한국 사회엔 노동자가 많다. 367만 개쯤 되는 사업체에서 1917만 명쯤 땀 흘린다. 사람, 노동자 있기에 기업이 숨 이을 수 있다. 노동자, 사람이 웃어야 사회 전체가 밝다. 사람, 노동자가 웃어야 기업도 즐거울 수 있다. 하여 공익은 노동자, 사람을 통해 구현될 개연성이 크다. 하여 노동위원회는 노동자를 위해 더 고민해야 옳다. 이름을 ‘사용자위원회’라 짓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리라. 나는, 그리 봤다. 하니 노동자보다 사용자 쪽에 기운 공익을 더 고민할 개연성이 있는 이로만 심판위원회를 짜면 곤란하지 않나. 하니 최소한 노동자 추천 공익 위원이 한 사람이라도 포함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묻자. 최선애•조성혜•이진영은 내 사건을 두고 얼마나 공익적이었을까. 노동자를 위해 심문하고 판정했을까. 지방노동위원회 공익 위원 가운데 노동자를 진심으로 보호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가장 적게 잡아도. 심판위원회가 사용자 쪽에 기울 개연성이 있다면 한두 위원쯤 바꿔 달라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하리라.
▴2015년 사월 28일 ○○지방노동위원회 심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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