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 정지. 1개월간. 지방노동위원회 공익 위원 최선애•조성혜•이진영의 공익적(?) 판정이 마이너 신문사와 같은 가락을 탔다. 2014년 십이월 24일 마이너 신문사가 내게 복직하라며 던진 “인사 발령(출판팀원에서 광고영업사원으로 전직)이 부당”했고, 이듬해 일월 14일 “정직(停職) 1개월로 징계한 것 역시 부당”했으며, “그 과정에 마이너 신문사의 부당노동행위가 스며들었다”며 낸 내 구제 신청을 기각했다. 어느 것 하나 인정하지 않았다. ‘정직 1개월쯤이 적절하다’고 본 거.
마이너 신문사의 ‘정직’은 일(직무)만 멈추는 게 아니었다. 아예 출근하지 못하게 했다. 임금도 지급하지 않았다. 공무원이 일정 기간 정직되면 국가공무원법 제80조(징계 효력) 3항에 따라 기존 신분을 유지하되 직무에 종사하지 못하고 임금 3분의 2가 줄어든다. 3분의 1을 남겨 두는 건 정직에 처한 이의 생계를 위한 배려이리라.
월급으로 살던 내게 ‘무급 정직 1개월’은 혹독했다. 2014년 팔월 24일 부당 해고된 뒤 그해 십이월 24일 복직할 때까지 4개월간 무급이었던 것에 덮친 터라 몹시 모질었다. 2014년 팔월 24일 강제로 퇴직 처리되면서 받은 근속 2년 치 ― 1995년 사월 1일부터 쌓은 근속 16년 치는 2011년 부장 대우로 승진할 때 그 마이너 신문사가 강제로 중간 정산했고, 이후 1년 치도 내 의사와 상관없이 지급해 2년 치만 남아 있었던 ― 퇴직금과 사우회 전별금 따위로는 4개월간 통째로 흔들린 삶을 온전히 다잡을 수 없었다. 하여 여기저기서 조금씩 빌려야 했고, 차곡차곡 짐이 됐다.
지방노동위원회 공익 위원 최선애•조성혜•이진영이 정직 1개월이 타당하다고 본 까닭은 내가 직속상관의 근태 보고 지시를 이행하지 않은 데다 마이너 신문사의 경위서 제출 명령을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것. 내 ‘근태 보고 지시 불이행’과 ‘경위서 제출 명령 거부•불이행’ 여부는 마이너 신문사의 2014년 팔월 부당 해고 때로부터 줄곧 다툰 문제. 근태 보고나 경위서 제출 따위 까닭을 들어 나를 내쫓은 건 터무니없던 터라 ‘해고가 부당했다’고 인정받아 내가 그해 십이월 24일 복직했으되 ‘정직 1개월쯤 징계하는 건 타당했다’는 게 지방노동위원회 세 공익 위원의 뜻인 거.
나는. 그러나 “출근 정지(정직) 1개월 징계가 상식에 비춰 마땅했는지 여전히 의문”이라고 곱씹었다. 내가 마이너 신문사 돈을 횡령했던가. 아니다. 내 이익을 위해 할 일을 저버려 마이너 신문사에 손해(배임)를 끼쳤던가. 아니다. 당장 일을 멈춰야 할 만큼 무거운 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한 달이나 출근하지 말라는 까닭을 나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하여 “2013년 칠월 어느 날을 포함해 한두 번 외근과 퇴근 보고를 누락한 것과 경위서 제출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한 달간 일하지 못하게 하고 임금조차 주지 않은 게 마땅한지를 중앙노동위원회에 다시 묻겠다”고 주변에 말했다. 그 마이너 신문사의 “노사 협약과 취업 규칙에 따른 ‘감봉’이나 ‘견책’을 제치고 ‘출근 정지(정직)’될 만큼 심각한 문제였을지”를 따져 묻겠다고 덧붙였고.
나는. 나를 “부당 해고한 뒤 복직시켜야 했을 때 직무를 바꿔 외딴섬(송도) 유배지로 발령하고, 다시 징계한 일련의 흐름에 마이너 신문사의 부당노동행위 의사가 내포된 것”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부당노동행위가 사건의 본질”이라고 목청 돋우었다. 실수로 한두 번 근태 보고를 빠뜨리고 경위서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하고, 복직시켰으되 전직 배치한 뒤 다시 징계한 마이너 신문사의 행위가 내 보기엔 사람 사는 이치에 맞지 않았기 때문. 특히 2013년 칠월 어느 날 내가 어디서 무슨 일을 했는지 이른바 직속상관이라는 자가 잘 알았음에도 — 내가 밖에 나가 어떤 일을 했는지 잘 알았음에도 — 9개월 뒤인 2014년 사월 인사 고과 재심을 위한 인사위원회에서 굳이 문제를 삼은 마이너 신문사의 저의. 다시 4개월 뒤인 2014년 팔월 같은 꼬투리를 잡아 해고한 게 부당노동행위였다고 나는, 주장했다.
2014년 팔월. 마이너 신문사가 심각하다며 내민 ‘근태 보고 지시 불이행’을… 나는, 사실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마이너 신문사가 내 ‘비위 행위’라고 거듭 주장하기에 ‘그게 2013년 칠월 어느 날이었나 보다’ 했을 뿐이다.
그 어느 날은 2일이었던 모양. 마이너 신문사가 2014년 시월 15일 지방노동위원회에 제출한 답변서에 ‘2013년 칠월 2일 오후 세 시경’으로 적혀 있었다.
그날 그 시간에 나는, 외근을 가려 했다. 마이너 신문사 교육출판팀장이었던 B가 정한 팀원 간 일정 알림 도구인 ‘구글 캘린더’에 외근 갈 내용을 적어 넣지 못했다. 외근 일정을 헤아리다 보니 시간에 쫓겨 깜박했다. B의 직속상관인 마이너 신문사 정보사업국장 A가 정한 국원 간 외근 일정 알림 체계인 사무실 내 칠판(화이트보드)엔 적어 넣었다.
나는. “외근 갑니다”라고 B는 물론이고 교육출판팀원 모두에게 말하고 사무실을 나갔다. 10분쯤 뒤 B로부터 전화가 왔다. “(구글) 캘린더에 일정을 올리지도 않고 나가시느냐”고 B가 내게 물었다.
나는. “화이트보드에 일정을 적었고, 구도로도 외근 간다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B는 ‘구글 캘린더’에 집착했다. 그곳에 일정을 올리라는 지침을 내렸으니 그대로 지켜 달라고 내게 요구했다. 나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날 한 번 깜박했지만 앞으론 잘 적어 넣겠다는 뜻이었고 이후로는 말한 대로 지켰다. 그날 이전에도 외근 일정을 적어 넣기로는 매한가지였다.
B가 마이너 신문사의 답변서를 통해 지방노동위원회에 진술한 건 달랐다. 내가 “사무실 화이트보드에만 일정을 기재한 후 보고도 없이 나가려” 해 “(구글) 캘린더에 일정을 올리지도 않고 나가시느냐고 물었음에도 무시하고 나가버렸다”고 했다. 거짓말. 내가 “외근 갑니다”라고 했을 때 B는 대꾸는커녕 눈길을 돌리지도 않았다. B는 10분쯤 뒤 전화 통화에서 ‘재차’ 구글 캘린더에 외근 일정을 써넣지 않고 외근을 나가느냐고 내게 물었더니 내가 “화이트보드에 일정을 적었고 구두로 이야기했으면 됐지. 왜 그런 것까지 지켜야 하느냐”고 큰소리로 항의했다고 진술했다. 음. 큰소리로. ‘왜 그런 것(구글 캘린더)까지 지켜야 하느냐’고 내가 항의했다는 건 B의 창작. 그 전화 통화에서 내가 ‘고교 후배라서 예쁘게 봐주려 했더니 네가 나를 이렇게 대하느냐’고 큰소리로 반말을 했다는 것도 B가 창작한 거짓말이다. B가 자신의 외근 일정 보고 방식(구글 캘린더)에 집착하며 내게 반말을 하기에 “인간적으로 완전히 실망했다”고 말한 것 같긴 했다.
내가 먼저 반말을 하기는 했다. 2013년 칠월 어느 날 ‘구글 캘린더’ 외근 일정 기입 여부를 두고 전화로 실랑이를 벌이기 1년 3개월여 전인 2012년 사월 1일. 내가 마이너 신문사의 교육출판센터로 갔을 때… 부당 전직 다툼을 벌이지 못했던 바로 그 무렵. 마이너 신문사 교육출판센터(교육출판팀으로 바뀌기 전엔 센터였다)의 첫 저녁 회식에서 B와 나는 같은 고등학교에 다닌 걸 우연히 알았다. B가 내 3년 후배였다. 자연스레 정보사업국장 A는 물론이고 국원 모두가 알게 됐다. 이후로 한두 달 사이에 서너 번 점심을 함께했을 즈음 내가 B에게 물었다. 조심스럽게. “공석에선 그럴 수 없겠고, 사적인 공간에선 내가 말을 편히 해도 좋겠느냐”고. B는 “당연하죠. 선배님이신데 편하게 말씀하세요”라고 양해했다. 2013년 칠월 어느 날 B가 내게 전화했을 때 “아, 박 팀장”이라고 내가 먼저 편히 말한 건 이런 양해에 따른 거였다고, 전화 통화였으니 사적 대화 공간이었다고, 나는, 여겼다. B는 그러나 내가 ‘고교 후배라서 예쁘게 봐주려 했더니 네가 나를 이렇게 대하느냐’고 큰소리로 반말을 해, 자신도 “동일하게 반말로 응대”했다고 지방노동위원회에 진술했다.
2013년 칠월 어느 날 B와 내가 전화로 주고받은 반말 몇 마디는 ‘상사에 대한 상습적인 불손한 언행’과 ‘하극상에 따른 위계질서 문란’ 행위로 포장됐다. B는 특히 내가 ‘계속 일보(일일 업무 보고)를 작성하지 않았고, 외근 뒤 퇴근 보고를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해 마이너 신문사가 내게 내민 ‘근태 보고 지시 불이행’ 주장의 씨앗이 됐다. 내 근태 보고가 불량해 “2013년 삼월 이후 수차례 업무 보고(일보)와 외근 뒤 현지 퇴근 보고를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는데 내가 “해고 시점까지 문자로 단 한 차례 보고한 외에는 이행하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나는. B와 마이너 신문의 주장과 달리 2013년 삼월 이후나 칠월 전후는 물론이고 2012년 사월부터 꾸준히 일보를 쓰고 외근 보고를 했다. 어처구니없는 건 꾸준했던 내 외근 알림, 특히 ‘구글 캘린더’에 성실히 일정을 써넣었던 사실이 ‘B와 마이너 신문사가 제시한 증거로 확인’됐다는 점. 내가 2013년 칠월 2일 오후 외근 일정을 써넣지 않았다는 걸 밝히려고, B가 그달의 팀 일정이 들어 있는 ‘구글 캘린더’ 화면을 갈무리해 증거라며 내밀었는데 내가 외근이 있을 때마다 성실히 일정을 써넣었다는 걸 되레 입증해 줬다. 그해 칠월의 정해진 노동일 23일 가운데 내가 열네 차례 외근한 날마다 어디로 가 무슨 일을 할 건지를 써넣은 게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마이너 신문과 B가 내 근태 보고 지시 불이행 증거랍시고 지방노동위원회에 내민 2013년 칠월 치 구글 캘린더. 내가 그달 2일을 빼고는 외근할 때마다 매우 성실히 일정을 써넣었다는 걸 잘 보여 줬다. 빨간 밑줄을 쳐 둔 게 내 외근 일정.
이런 흐름이었음에도 마이너 신문사는 기어이 ‘근태 보고 지시 불이행’을 밀어붙였다. 2014년 팔월 부당 해고 때뿐만 아니라 2015년 일월 ‘정직 1개월’ 징계의 첫 번째 재료로 썼다. 했다면 한두 번, 특히 마이너 신문사 전반의 업무 보고 관행에서 벗어나지 않은 실수를 두고 “불이행”이라고 거듭 강변했다.
듣고 싶은 것만 들은 뒤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는 마이너 신문사의 억지에 억장이 무너졌다. 억지였음에도 그리 한 번 통하면 마이너 신문사가 두세 번째 노동자를 부당 해고할 때 다시 나쁘게 쓰일 게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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