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이기자 — 해고 르포르타주

(4) 명예

eunyongyi 2016. 4. 9. 18:13

“개 같은 놈들, 뒈질 때까지 씹어 주리라.”

마이너 신문사의 몇몇은 내가 자신을 ‘개 같다’ 일컫고, 자신이 ‘뒈질 때까지 씹힐 것’으로 여겼다. 명예 훼손‘성’ 글이요, 폭언‘적’이라며 조금 주춤거렸으되 끝내 명예가 손상됐다고 주장했다.

‘가슴 저 밑으로부터 입으로 자꾸 욕이 솟는다. 입 안에 욕을 두고 씹는다. 우물우물. 되새김질. 개 같은 놈들, 뒈질 때까지 씹어 주리라.’

마이너 신문사의 몇몇이 문제 삼은 내 글 전체. 나는, 욕을 입 안에 두고 우물거렸으되 사실 그 몇몇을 떠올리진 않았다. 신문쟁이입네 하던 그 몇몇이 그만한 암시(暗示)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채 자신을 욕하는 것으로 알아듣다니 적이 놀라웠다.

‘반도체와 소재부품을 취재하며 사내 이달의 기자상을 밥 먹듯 수상하고 누구보다 취재력이 왕성했던 능력 있는 기자를 노조활동 열심히 했다고 갑자기 국제부 내근 기자로 배치한 지 두 달도 안 돼 다시 실체조차 없던 황무지인 ○○팀에 보내는 회사. 정말 MBC 사측에게 컨설팅이라도 받고 있는 겁니까?’

내 동지(同志) 김의 사회 관계망 사이트(SNS) 글. 2014년 십일월 28일. 그는 오 아무개 기자를 경기인천센터로 귀양 보내려는 마이너 신문사의 제멋대로 인사 발령에 분개했다. 두 달 만에 경기인천센터 유배라니. 내 보기에도, 맘에 들지 않는 기자와 프로듀서(PD)를 경기도 성남이나 일산 등지로 밀어낸 MBC의 행태와 닮아 있었다.

‘일상화된 개 같은 현실.’

또 다른 김의 댓글.

‘가슴이 터질 듯해 글을 올리면서도, 힘 빠지는 소식이 안 그래도 넘치는 세상인지라 이마저도 망설이게 되는 서글픈 현실.’

또 다른 김의 글을 잇는 내 동지 김의 답글.

나는. 내 눈엔 그 무엇보다 ‘(또 다른 김이 말한) 개 같고 (내 동지 김이 느끼는) 서글픈 현실’이 먼저 보였다. 그 마이너 신문사의 몇몇이 내보인 오 아무개 기자에 대한 질시는 물론이고 ‘MBC’가 높이 솟아올랐다. 공정히 보도하려는 기자와 피디(PD)의 뜻과 태도를 짓밟았으니. 나도. 분개했다. 당연히. 가슴 저 밑에서 입으로 솟는 욕을 입 안에 두고 씹었다. 질겅질겅. 되새김질하기까지 했다. 참으로 나쁜 ‘개 같고 서글픈 현실’이었다.

“신청인에겐 오히려 잘된 일 아닌가요? 내가 보기엔 (명예 훼손이) 심각한 것 같은데요.”

지방노동위원회 공익 위원 조성혜. 2015년 사월 28일. 마이너 신문사의 부당한 인사 발령과 징계, 부당노동행위로부터 구제해 달라며 심판정에 찾아간 내게 ‘오히려 잘된 일’이라는 건? 음. 2014년 팔월 부당 해고 사태 때 명예 훼손과 관련한 다툼이 없었던 게 다행이라는 뜻. 나는. 갑작스런 조성혜의 “잘된 일” 발언에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처음엔 그가 뭘 말하는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고. 음. 2014년 팔월에 명예 훼손 문제가 불거졌다면 해고될 만했을 거라는 뜻이런가. 명예 훼손 문제가 복직한 뒤 불거진 덕에 해고를 피해 ‘정직(출근정지) 1개월’ 정도로 마무리됐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않느냐는 얘기로 들렸다. 그러니까 ‘다행이라’ 여기고 이쯤에서 그냥 입 다물고 있으라는 거였을까. 조성혜가 내게 그리 말한 건가. 뭘까, 이건.

내 댓글이 ‘명예 훼손이었다’고 왜 조성혜가 단정하는가. 머릿속에 그리 그렸다손 치더라도 그걸 그대로 입 밖에 낼 자격이 그에게 있나. 지방노동위원회 공익 위원이? 지방노동위원회 심문 회의에서? 나는. 조성혜가 내 구제 신청 이유서를 성실히 읽었을지 의심스러웠다.

‘개 같은 놈들’은 내 동지 김과 사회 관계망 사이트에서 ‘친구’를 맺은 이만 볼 수 있는 게시물의 댓글이었다. MBC를 비롯한 몇몇 언론이 기자와 PD를 궁지로 내몬 현실이 분하고 못마땅해 한숨 쉬었을 뿐. 마이너 신문사의 몇몇을 직접 겨냥한 게 아니었다. 그 몇몇이 내 댓글을 보고 자신의 언행을 곰곰 되돌아보고 크게 반성했다면 좋을 일이었겠으나 이마저 바라지 않았다. 인터넷 사회 관계망 사이트에서 친구끼리 주고받은 한두 마디 탄식을 두고 “명예가 훼손됐다”거나 “내 보기엔 심각한 명예 훼손”이라고 단정한다면 세상 무서워 아무 말도 못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 세상엔 ‘개 같은 놈들을 죽을 때까지 씹어 줄 일’이 많다. 그럴 지경에 닿을 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이 많이 쌓였고. 사용자가 앞서 행한 폭력엔 눈감고 노동자의 분노엔 채찍을 드니 지방노동위원회는 물론이고 한국 사회가 가야할 길이 아직 먼 듯싶었다.

마이너 신문사의 몇몇은 ‘개 같은 놈들’ 댓글뿐만 아니라 더 많은 내 글을 들여다본 것으로 드러났다. 자신이 보기에 껄끄러운 글마다 명예 훼손 시비를 걸었다.

나는 2014년 구월 12일 시빗거리가 된 사회 관계망 서비스를 쓰기 시작하자마자 그해 팔월 24일 나를 부당 해고한 마이너 신문 사장과 몇몇의 내 페이지 접근을 막았다. 접근이 차단된 그 몇몇은 내가 쓴 게시물을 아예 볼 수 없던 것. 나를 자신이 속한 사회 관계망 그룹에 초대하거나 대화 물꼬를 트려는 시도조차 할 수 없었고.

그리 차단된 상태였음에도 마이너 신문사의 몇몇은 내 게시물을 일일이 짚어 내며 — 누가 마이너 신문 몇몇에게 내 게시물을 갈무리해 줬는지 참 궁금하지만 아무튼 — 명예 훼손일 수 있어 징계할 만했다고 주장했다. 마이너 신문사의 몇몇이 품은 검열과 사찰의 뜻. 내가 2015년 이월 12일 마이너 신문 노동조합원께 드린 근황 알림 이메일까지 명예 훼손 관련 징계의 근거로 내밀 정도로 그 몇몇의 눈에 돋은 핏발이 뚜렷했다.

“○ 사장은 말(사내 게시물)과 달리 노동자를 짝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단체 교섭에 성실히 임하지 않았고, 제 편의와 욕심에 따라 연봉제를 획책했죠. 특히 ‘비용, 비용’하더니 회사 상하수도료를 두고 ‘똥값도 내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똥값. ○ 사장은 어쩌면 노동자를 짝이라기보다 ‘똥값 들여야 할 존재’로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2014년 십이월 22일 자 내 게시물. 나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진실을 말했다. 2013년 십이월부터 2014년 팔월 해고되기 전까지 내가 참석한 단체교섭과 노사협의회에서 마이너 신문 사장이 말한 거, 그의 교섭 태도 따위를 그대로 전했을 뿐. 사장은 사회 공기(公器)인 신문사 대표로서 공적 책임을 져야 마땅했다. 그가 마이너 신문사 노동자의 이익에 반하는 언행을 삼가하고, 나 이후로 두세 번째 ‘부당 해고 사태’를 빚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게시물에 담았을 따름이다.

나는. 멈출 수 없었다. 2014년 십이월 19일. 바랐다. 사회 공기인 언론사를 운영하는 그 사장이 나를 부당히 해고했음에도 사과조차 하지 않는 건 ‘독자 신뢰’가 생명인 신문의 미래를 흔들 뿐만 아니라 구성원 전체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로 보이니 ‘공적 책임을 각인해 주실 것’을.

그해 십이월 23일. 그 사장이 구월 18일 자 사내 게시판을 통해 공연히 나와 같이 사는 친구를 언급하며 ‘내가 능력이 없음에도 사장이 배우자를 잘 안 덕에 19년 이상 고용될 수 있었다’고 해석될 여지를 만든 게 되레 내 명예를 훼손했을 것으로 나는 봤다. 사장은 나와 같이 사는 친구를 “잘 알”고 “같은 부서에서 함께 일도 했다”더니 “착하고 성실했”으며 내 “징계 — ‘해고’라 말하지 않는 꼼수 — 를 결정하는 막판까지 가장 아른거렸던 사람”이라고 사내 게시판에 썼다. 음. 나와 같이 사는 친구와 사장이 같은 부서에서 일한 건 ‘20년 전 1년여 동안’으로 나를 부당 해고한 사태에 끌어 쓸 일이 결코 아니었다. 사장의 이런 언행으로 말미암아 나는 물론이고 나와 같이 사는 친구에 대한 구구한 억측이 난무할 것으로 걱정됐다. 20여 년에 걸쳐 그 마이너 신문사에서 흘린 내 존엄한 땀을 사장이 욕보인 것이라고 나는 느꼈다. 신문사와 구성원 전체의 이익에 반한다고 보았고.

2014년 십일월 18일. 나는 “열한 시 이십사 분. 회사로 들어오는 사장 차를 봤습니다. 설마 그 시각에 출근한 것은 아니었겠죠”라고 쓰고 “부당 해고 사태의 책임을 어찌 질 것인지 매우 궁금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마이너 신문 사장이 두세 번째 부당 해고 사태를 빚지 말기를 바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 그날 11시 24분에 본 사장 차를 두고 출근 여부를 따져 물은 건, 그해 팔월 나를 부당 해고할 때 핵심 사유 가운데 하나로 내밀었던 ‘근태 불량’ 주장이 터무니없어서였다.

“○ 사장이 뭐라 말하고 어찌 책임을 지는지 끝까지 지켜보겠습니다.”

2014년 십이월 15일 자 내 게시물. 나는. 마이너 신문 사장이 ‘임직원 여러분께 드리는 글’에서 “회사 인사권 행사에 문제가 있다면 적법한 절차에 따라 권위 있는 기관의 판정을 받고 시정을 요구하면 된다”고 말한 것에 주목했다. 사장이 그리 말한 뒤 지방노동위원회의 부당 해고 판정이 있었으니 그가 뭐라 말하고 어찌 책임지려는지 지켜보려 한 것. 그해 십이월 17일. 나는 더 되새겼다. “부당 해고는 한 노동자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이니 2014년 팔월 부당 해고 사태의 1차 책임자 셋(인사위원)의 “책임을 무겁게 물어야 한다”고 썼다. 그리하는 게 “두 번째 뭇칼질(부당 해고)을 막을 첫걸음”이라고 외쳤고.

“지금도 정당한 해고였다고 생각한다.”

2014년 팔월 마이너 신문사에서 나를 부당히 해고할 때 인사위원으로 활약한 F는, 그랬다. 두 번씩이나. 나를 정당히 해고했다는 거. 나를 향해 눈을 부릅뜨고. 2015년 일월 14일. 마이너 신문 경기인천센터로 복직하게 했으되 징계할 만한 게 남아 있다며 나를 다시 인사위원회로 부른 날이었다. F의 이해하기 어려운 결기가 내 가슴 깊은 곳에 한기로 닿았다. 두려웠다. F의 고압적인 언행이 마이너 신문사에서 두세 번째 부당 해고 사태로 이어지지 않을까. 이튿날. F가 두 번씩이나 한 말을 그대로 내 사회 관계망 사이트에 옮겼다. 마이너 신문사의 몇몇과 F는 이를 ‘사실과 다른 내용의 비아냥거리는 글’로 폄훼했다. 사실이었는데 ‘사실과 다르다’고 하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노릇.

F는. 2014년 팔월 24일 내 부당 해고 사태의 장본인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 F가 2015년 일월 14일 열린 징계 인사위원회에 다시 나타나 앞선 부당 해고를 두고 “지금도 정당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는 F의 이상한 생각에 놀랐다. 그런 그가 나를 다시 징계한다니 황망했다. 갸우뚱. F가 2015년 일월 14일 징계 인사위원으로서 공정히 판단할 만한 자격을 갖췄던 것으로 — 그냥 그러려니 하고 — 내게 받아들이라는 얘긴가.

“인사권을 남용한 자를 비판하는 건 당연하고 정당한 행위다.”

민주노총 노동법률지원센터 이호준 노무사의 말. 상식. 마이너 신문의 몇몇도 “회사의 지나친 인사권 행사에 대한 당사자의 정당한 비판은 충분히 수용할 수 있으며 이를 문제 삼을 의도는 없다”고 진술했다. 아, 그 몇몇도 아주 잠깐 상식적일 수 있나 보다 싶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내 글을 두고 “본인의 근로 보건 향상과 관련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고, 악의적이고 모욕적인 내용이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피신청인(○ 사장)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제 논에 물을 댔다.

마이너 신문사의 몇몇은 제 논을 향해 ‘개 같은 놈들, 뒈질 때까지 씹어 주리라’로 물꼬를 튼 뒤 곧바로 “인사위원회 위원들의 실명과 직급을 직접 언급하면서 악의적인 비난을 퍼붓는 것은 물론, 대표이사의 발언을 고의적으로 왜곡, 과장해 허위 사실을 주장하는 등 피신청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모욕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의 글을 지속적으로 작성, 게시한 점을 보았을 때 인사권자에 대한 정당한 비판으로만 보기에는 그 정도가 지나치며, 이는 회사의 대표이사 및 임원, 간부에 대한 고의적인 명예 훼손 행위에 해당한다”고 덧댔다. 내 보기엔 “악의적인 비난을 퍼붓”거나 “대표이사의 발언을 고의적으로 왜곡•과장해 허위 사실을 주장”했다는 건 그 몇몇의 제멋대로 해석이다. “인사권자에 대한 정당한 비판으로만 보기엔 그 정도가 지나치다”거나 “고의적인 명예 훼손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도 마찬가지. 억지로 보일 뿐 “그래, 그게 맞다”고 나는 동의할 수 없다.

특히 마이너 신문사의 몇몇은 내가 사장을 ‘대표이사’라 부르지 않고 성씨로 꾸며 ‘○ 사장’이라 지칭한 걸 두고 “격하했다”고 주장했다. 참으로 억지도 가지가지. 마이너 신문 사장을 이름 전체로 수식한 ‘○○○ 사장’이나 성씨만으로 꾸민 ‘○ 사장’이라 가리킨 걸 두고 사장의 지위나 등급 따위의 격을 낮췄다고 말할 순 없다. ‘이건희 삼성 회장’을 ‘이 회장’이라 말하고,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을 ‘신 사장’이라 일컫는 걸 두고 “격하했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이치가 같다.

지방노동위원회 공익 위원 조성혜는 아마도 ‘개 같은 놈들’과 ‘뒈질 때까지 씹어 주리라’에 홀린 나머지 마이너 신문사의 몇몇이 덧댄 주장에 따라 “내가 보기엔 (명예 훼손이) 심각한 것 같다”고 말했을 개연성이 있다. 나는 그러나 ‘개 같은 놈들’과 ‘뒈질 때까지 씹어 줄’ 자로 마이너 신문사의 몇몇을 상정하지 않았다. 그 몇몇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했다고 곧바로 잇댈 게 아니었다. 음. 마이너 신문 몇몇의 억지가 조성혜의 판단을 흐렸을 수 있을 테니 기대한 목적을 이루긴 한 성싶었다.

그렇다고 억지 춘향이 잦으면 안 될 일. 내가 “미디어오늘, 미디어스, 기자협회보 등 각종 언론에 사실을 왜곡, 과장하고 회사명과 인사위원장의 이름을 실명으로 기재해 이를 보도하게 함으로써 피신청인(○ 사장)의 명예를 훼손했고, 이로 인해 언론중재위원회에서 해당 언론에게 정정보도 및 반론보도를 지시하는 판정을 내리는 등 사회통념상 피신청인과의 신뢰관계를 반복적으로 훼손하고 있다”는데 이건 무고(誣告). 나는. 각종 언론에 사실을 왜곡•과장하거나 마이너 신문과 사장, 그를 따르는 몇몇의 이름 따위를 보도하게 한 적이 없다. 사실이 아닌 일을 거짓으로 꾸며 고(告)하면 곤란하지. 지방노동위원회 공익 위원 조성혜처럼 헷갈린 나머지 누군가 명예 훼손을 두고 잘못 단정할 수 있기 때문. 공익적 판단 기준을 흐리면 약자가 아프다. 노동자가 괴로우면 공익 위원 조성혜와 마이너 신문 몇몇의 삶은 물론이고 한국 사회가 위태로워진다는 걸 각인해야 할 터.



▴2015년 삼월 20일 마이너 신문이 지방노동위원회에 명예 훼손 증거라며 내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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