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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eunyongyi 2019. 7. 20. 18:28

최승범 지음. 생각의힘 펴냄. 2018년 4월 13일 1판 1쇄. 2018년 5월 21일 1판 3쇄.


제국 남성에게 훼손된 자존심을 여성 착취로 회복하는 식민지 남성성을 공부하고 나니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아재’들이 이해됐다(7쪽).


교육부가 2년 동안 6억 원을 쏟아부어 만들고 2015년 3월에 배포한 <국가 수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는 “데이트 비용을 많이 사용하게 되는 남성 입장에서는 여성에게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원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원치 않는 데이트 성폭력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망언이 담겨 있다(9쪽).


미국의 온라인 사전을 출판하는 메리엄-웹스터는 2017년의 단어로 페미니즘을 선정했다(11쪽).


열두 살 아이의 눈에도 어머니는 힘겨워 보였다. 고통을 덜어드리고 싶어 가사노동을 시작했다.······중략······어머니는 나 혼자 끓여 먹은 라면 그릇을 씻어도 고맙다고 했다. 이상했다. 함께 먹고 같이 입고 모두가 더럽히는데, 씻고 빨고 청소하는 건 오롯이 어머니의 역할인 게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페미니즘 사고’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나는 설거지가 적성에 맞았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릇을 닦다 보면 마음이 평온해졌다. 깨끗하게 씻긴 그릇을 문지르면 기분 좋은 뽀드득 소리가 났다. 하지만 아버지는 고3이 되어서도 설거지를 하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집안일을 제때 안 하니 네가 공부할 시간이 없구나(27쪽).”


나쁜 아빠 되는 건 정말 어렵다. 애가 울거나 말거나 귀 막고 잠을 자도, 젖병 소독이나 목욕 한 번 안 시켜도, 유모차 끌고 동네 한 바퀴만 돌면 금세 자상한 아빠로 소문난다. 백 가지 중 하나만 잘못해도 나쁜 엄마가 되는데, 백 가지 중 하나만 잘해도 좋은 아빠가 되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33쪽).


반성폭력 자치규약.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술을 권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술을 따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신체 접촉을 하지 않는다. 성적인 농담을 하지 않는다. 개인 신상과 관련된 질문을 하지 않는다. 외모를 칭찬하거나 비하하지 않는다. ‘왕게임’을 하지 않는다. 새내기에게 반말하지 않는다. 잠자는 방은 성별로 분리한다(41쪽).


이런 지난한 과정조차 피해자가 용기를 내야 가능한 일이다(47쪽).


페미니즘은 현실을 객관화하는 도구다. 이곳을 벗어난 시점에서, 이전과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한다. 부조리를 인식하게 유도하고 불합리를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인내와 희생 없이, 양보와 포기 없이 누리는 삶을 꿈꾸게 한다. 무조건 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잘못된 쪽은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한다. 그래서 페미니즘은 남성에게도 유용하다(52쪽).


개인인 나는 떳떳하더라도 구조적으로 남성인 나는 가해자일 수 있으니까(61쪽).


(강남역 살인 김성민) 그는 남자가 무시하는 건 참을 수 있었지만 여자가 무시하는 건 견딜 수 없었다(71쪽).


텔레비전 드라마에는 반말하는 남편, 존대하는 아내가 자주 등장한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재현이다. 요즘 그런 부부가 몇이나 있을까. 외국 영화를 우리말로 더빙한 것을 보면 같은 동료인데도 남자는 반말, 여자는 존댓말로 처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만들었을까. 부지불식간에 쌓인 차별의식은 은연중에 남성과 여성을 상하 관계로, 고정된 역할 속으로 밀어 넣는다(123쪽).


<독서와 문법>에서는 한국어에 나타나는 합성어 형성 과정의 특징으로 더 중요한 것, 더 긍정적인 것이 앞에 놓임을 설명하며 선악, 강약, 대소를 예로 들었다. 그래서일까. 남성과 여성이 합성어를 이루는 경우에는 남성이 앞에 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모, 자녀,······중략······욕하거나, 낮추거나, 천하거나, 인간이 아니거나, 성적인 의미가 있을 때는 여성이 앞에 온다. 년놈, 에미애비, 비복, 암수, 자웅, 처녀총각이 그렇다(133쪽).


세상이 바뀌려면 내가 변해야 한다. 평등하려면 더 가진 쪽이 불편해야 한다(140쪽).


‘김치녀’를 향한 태도는 양가적이다. 갈망하는 동시에 혐오한다. 분열된 심리의 기저에는 경쟁 사회에서 도태될 것에 대한 공포가 있다.······중략······’남자 등골 빼먹는 년’이라 손가락질하면서도 예쁜 여자 만나는 남자는 무척이나 부럽다. 이룰 수 없는 욕망이라면 하찮게 만드는 편이 이롭다. 내가 딸 수 없는 포도의 맛이 신 것처럼, 내가 만날 수 없는 ‘김치녀’는 값이 헐하다(143쪽).


1만여 년 전 일어난 신석기혁명이 역사를 뒤집었다. 농경과 목축의 생산성은 신체 조건이 좌우했다. 남성은 육체 노동에 탁월한 소질을 보였고 그만큼 지위가 높아졌다. 공동 주거와 집단 생활은 해체됐고 공동체는 가족 단위로 재편성됐다(146쪽).


PC는 ‘Political Correctness’의 약자로, 우리말로는 ‘정치적 올바름’이나 ‘도적적 공정성’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차별과 편견을 바탕에 둔 언어 사용을 자제하고, 이를 중립적인 다른 표현으로 대체하자는 노력을 PC 운동이라고 부른다(151쪽).


페미니즘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이 변하는 걸 보면 희망이 생긴다. ‘결혼하면 집안일을 많이 돕겠다’는 친구 말에 ‘돕는 게 아니라 같이하는 거’라고 말하는 친구가 생겼다(168, 1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