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섭 지음. 은행나무 펴냄. 2018년 10월 29일 1판 1쇄. 2018년 11월 12일 1판 2쇄.
(손절과 외면) 가장 큰 이유는 과격한 트롤링을 통해 주목받기 경쟁을 벌이고자 하는 남성들의 대부분이 남성 사회의 중심으로부터 소외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성 사회의 주류는 이런 구도에 별 관심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이 모두 페미니스트여서가 아니라, 이미 유리하게 살고 있는데 굳이 이런 구질구질한 판에 끼어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12쪽).
제조업이 위기를 맞이하고 서비스업이 대두되는 산업구조의 변화는 특히 하층 계급의 남성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14쪽).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은 장자상속의 구도가 생긴 원인을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을 통해 발생하기 시작한 잉여 생산물에서 찾는다. 수렵과 채집에 의존하던 때와 다르게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을 생산하기 시작한 인류가, 이를 자신의 자손들에게 물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가 나의 자식인지가 명확해야 했고, 여자들보다 힘이 센 남자들이 기존의 난잡하고 평화로웠던 관계를 금지하고 여자들을 부자유스러운 생활로 몰아넣었다는 유명한 이야기다(21쪽).
1958년에는 결혼한 여자가 법률행위를 할 때 나이와 관계없이 남편의 허가를 받아야 했던 처의 무능력 제도와 아내의 재산도 남편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었던 관리 공동제를 폐지하고 각각의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부부별산제가 도입됐다(24쪽).
2009년 미국 언론을 장식한 신조어 ‘맨세션(mancession)’ 또는 ‘히세션(he-session)’은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금융 위기 이후의 경기 하강 국면에서 제조업과 건설업 등에 종사하던 남성들이 실직과 미취업 상태로 전락한 상황을 담고 있는 단어다(36쪽).
미국에서는 이제 가부장이 아니라 여성 생계 부양자가 새로이 발전하는 산업에서 일을 해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모장제가 나타나고 있고, 젊은 여성들은 성에 차지 않는 남성들과의 결혼을 꺼리며 차라리 혼자 살거나 ‘싱글 맘’이 되기를 택한다(37쪽).
남자의 이상형을 만들기 위해서는 장애인, 동성애자, 병자, 유색인종, 자신의 위치(어머니, 돌봄 노동, 양육자)를 벗어나려는 여자, 병역 거부자 등의 ‘아웃사이더’들이 비난과 차별을 받고, 심지어는 죽임을 당해야 했다(74쪽).
남성 지배의 이득은 모든 남성에게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는다.······중략······남자들은 전쟁이나 경제 성장을 위해 몸을 바쳐 희생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여성은 이런 남성들을 위해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고, 성적/정서적 위안을 주는 존재여야 한다. 이상적 남성성이 민족주의와 자본주의가 시작되던 그 시기에 나타났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전장과 공장을 채울 단련된 육체들에 대한 필요가 특정한 형태의 남성성을 주조해 낸 것이다(83쪽).
남성 지배란 소수의 권력을 가진 남성들을 위해 다수의 별 볼일 없는 남성들이 열과 성의를 다해 복무하는 불공정한 게임이다. 즉 지배의 비용은 남성으로 호명된 모두가 지고 있지만, 지배를 통해 얻어 낸 산물은 일부가 독식하는 구조다. 이 일부는 동료 지배자들을 위한 배당금도 자신의 주머니에서 꺼내지 않는다. 이들이 주는 배당금은 여성과 비-남성에게 행해지는 차별이다. 즉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들의 발밑에 자신보다 더 못한 이들이 있다는 것을 보며 얻는 위안과 약간의 반사이익을 위해 가부장제의 수호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84쪽).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보편적인 남자의 역할이자, 지배의 정당성으로 제시되는 ‘전사로서의 남자’는 조선에서는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나마 무인에 대한 부당한 대우가 화두가 된 것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겪은 고통이 아니었다면 어려웠을지 모른다(90쪽).
국문학자 이영아는 박노자의 책에 실은 발문에서 “황국 신민으로서 참전의 의무와 권리가 주어지는 1940년대 전까지 남성들에게 강한 육체, 군인다운 몸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남성들 역시 아름다운 몸이 되기 위해 여성들 못지 않게 화려한 패션을 추구했다. 오히려 폐결핵으로 요절하는 문인들이 이상화되는 등 병약한 남성의 몸을 동경하는 흐름까지 생겨났다”라고 지적한다(99쪽).
식민지의 남성은 이등 시민으로서 공적인 영역에서 온전한 권리를 가질 수 없다. 즉 식민지의 남자들은 일본 제국의 남자들과 똑같은 남자가 아니라 ‘여성화된’ 남자다(101쪽).
이범석은 일본의 황도주의, 즉 천황을 향한 충성의 이념을 민족으로 대체하는 변형된 황국 신민 사상을 새로운 국가의 이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103쪽).
우파는 새로운 국가에서 여성의 바람직한 역할은 현모양처로서, 국가를 이끌어 갈 자녀들을 출산하고 훌륭하게 키우는 것이 여성의 본분이라고 주장했다(104쪽).
이승만은 호주제로 대표되는 가부장제 질서를 구축해, 남자들에게 사회적 권위를 부여하고 여성을 이등 시민화했다. 그리고 이 가부장적 질서는 징병제를 시행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데, 군 복무는 사회적으로 권리가 주어지는 일등 시민의 조건이었으며, 동시에 ‘후방’에 있는 여성을 보호하는 자로서 ‘여성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주요한 정당성의 근원지가 되었기 때문이다(106쪽).
세상에 명예로운 전쟁 같은 것은 없고, 모든 전쟁은 지옥이다(108쪽).
1950년대의 국가는 무책임하고, 무체계적이었으며, 매우 많은 것들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미완의 국가였고, 이승만 정권이 내뱉었던 호기롭고 공격적인 구호들의 실현 가능성들도 높지 않았다. 불안한 국가와 마찬가지로 전쟁, 가난, 징집의 공포에 시달렸던 남자들의 남성성 역시 불안한 것이었다.
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1950년대의 한국 사회가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여성 혐오다(114쪽).
1972년 10월 유신 이후에는 병역 미필자에게 공직 취업 금지, 국·공영 기업 인허가 금지, 국외 여행 금지라는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병무 사범들을 “국민 총화와 사회 기강 저해 요인”, “비국민” 등으로 묘사하며 사회의 적으로 규정했다(117쪽).
한국군은 전체 32만 명 규모의 병력을 파병했고, 그중 5000여 명의 사망자와 1만1000여 명의 부상자, 15만9000여 명의 고엽제 피해자가 발생했다(118쪽).
많은 경우 공장의 권위 구조와 노사 관계는 가부장제적 가족 구조를 반영하고 재생산했다(121쪽).
유신을 감행한 이후, 1973년 박정희는 10년 안에 “100억 불 수출, 1000불 국민소득, ‘마이카’ 시대”를 달성하겠다는 약속을 제시했다(126쪽).
광주 항쟁을 다룬 미국의 기밀문서에는 계엄군이 광주시민을 베트남전에서 베트콩을 다루듯이 했다고 기록돼 있다(132쪽).
한국 사회는 단 한 번도 명령에 의문을 갖는 남자들을 바란 적이 없었다. 공장과 전장에서, 명령에 순응하고 몸이 부서질 때까지 헌신하는 강건한 육체들을 원했을 뿐이다(135쪽).
그들이 그토록 거부하고자 했던 체제의 폭력성을 뛰어넘는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은 분명한 한계 지점이었다(142쪽).
1990년대의 성적 자유주의자들의 버전이 가지고 있는 단순함은 자유의 평등한 확산을 불러오지는 못했다. 대신 그 자유를 잘못 집어먹은 남자들이 그 누구도 묻지 않은 자신의 성적 욕망을 자유라는 명목 하에 만천하에 전시하는 일이 반복됐다(157쪽).
이른바 ‘자기 계발하는 주체’의 등장······중략······아무런 사회적 부채감 없이 경제적 성공을 목표로 삼는 이들이 등장한 것······중략······이들은 스스로를 노동자가 아니라 창의적인 인재나 기업가로 여기며, 자본주의적 주체가 되고자 했다(161쪽).
결국 이들이 행한 일이라고는 자신들과 비슷하거나 더 열악한 사회적 약자들을 짓밟는 것이었다(163쪽).
위기 속에서 한국의 대기업들이 집중한 것은 오너 일가의 경영권 방어와 그들의 안위였고, 혼란 속에서 위기관리를 핑계로 전방위적 로비나 비자금 조성을 벌이기도 했다. 오직 노동에 대해서만 정리 해고나 외주화 등의 대대적인 ‘개혁’이 단행됐을 따름이다(179쪽).
몰락하는 것은 중하층 계급의 남성과 여성들이고, 티끌을 모아 자신의 태산에 더하는 것은 자유로워진 세계를 호령하는 상층 계급의 남성들과, 아주 적은 수의 여성들이다(181쪽).
메트로섹슈얼 담론······중략······하나는······중략······가부장제 ‘테라피’다. 가부장제는 여성을 억합하는 것뿐만 아니라 남성 역시 억압하고, 특히 남성은 자신이 가진 감정적인 측면들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배우며 자라난다. 이것은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남성을 황폐하게 만들고 행복하지 않게 만든다(185쪽).
도덕적 분노보다도 더 내밀한 사정은 병역 거부라는 예외를 인정하게 된다면 자신이 무기력하게 ‘끌려갔다 왔다’라는 사실이 더욱더 부각된다는 점이다. 군대를 개선하는 것을 가장 방해하는 세력은 여대생도, 여성 단체도 아니라 바로 예비역이다(193쪽).
합리적인 대안이나 토론의 가능성이 아예 닫혀 있는 군 복무 경험은 개인에게 국가에 대한 무기력함을 학습시킨다(199쪽).
많은 남자들이 이성 간의 관계를 돈을 넣으면 섹스가 나오는 자판기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된장녀는 일종의 고장 난 자판기인 셈이다(208쪽).
여성 BJ들이 노력에 비해 쉽게 별풍선을 얻는다고 생각한 남성 유저들이 ‘보슬아치’를 만들어 냈다(215쪽).
남성들의 이중 잣대를 비난하는 단어로 ‘이중 좃대’를 만들었으며 남자들이 욕을 먹어 분함에 몸을 떠는 모습을 ‘자들자들’이라는 의태어로 만들었다(225쪽).
최초에 가상공간에 대한 기대는 출신 성분, 계급, 성별, 인종, 국경을 넘어서 평등한 소통이 가능토록 할 가상의 공론장이었지만,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다. 익명성은 얼굴 없는 이들이 신원이 특정된 이들을 가혹하게 공격할 수 있는 조건이 됐고, 기존 사회에 존재하던 차별과 편견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더 강하게 증폭됐다(232쪽).
아예 섹스를 게임의 주제로 삼는 성인 게임이 아닌 경우에도, 게임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은 역할과 상관없이 노출이 심한 차림새의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묘사되는 것이 대부분이다(240쪽).
여성 혐오를 실천했던 확신범 그룹의 경우에는 사실에 대한 조작과 왜곡을 덧붙여서 메갈리아의 원본이 남초 커뮤니티들에 존재해 왔던 여성 혐오적 표현들이라는 사실을 은폐했다(245쪽).
현실 세계에서 아무런 중요성도 없었던 내가 갑자기 커뮤니티 내의 다수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게 되는 것은 그 자체로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248, 249쪽).
트롤들은 그야말로 성역 없이 조롱과 모욕을 일삼고 조작이나 왜곡도 불사하곤 한다. 자존감이 낮고 현실의 삶이 왜소할수록 이런 영향력의 유혹은 더 강력해진다(249쪽).
남자들은 진짜 남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의존해 줄 여자를 찾아야 한다는 이상한 성인식을 치러왔고, 스스로 하나의 독립된 주체로 서는 것을 배우지 못한 것은 여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남자들이다(268쪽).
나는 이 남자들을 지배하는 제일의 악덕은 비겁함이라고 생각한다. 잘못을 덮기 위해 더 큰 잘못을 저지르고, 사과를 피하기 위해 더 나쁜 짓을 하고, 자신을 직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타인을 괴롭히는 비겁함 말이다(269쪽).
나 혼자 착한 남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의 불편함과 한계를 끌어안되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끝없이 고민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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