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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ㅡ 부끄러움을 모르는 카리스마, 대한민국 남자 분석서

eunyongyi 2019. 7. 20. 18:36

오찬호 지음. 동양북스 펴냄. 2016년 7월 20일 1판 1쇄.


군대 가는 게 그렇게 억울하면 모병제를 하자고 하면 될 텐데, 그런 주장은 하지 않은 채 늘 ‘여자도 군대 가라’고 목 놓아 외칩니다. 군대를 여성이 보낸 것도 아니고, 여성은 병역 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법을 만든 것도 남성인데 말입니다(12쪽).


부당한 대우 속에서도 오랫동안 군소리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자가 기업의 인재상이 되면서 과거의 ‘군사 문화’는 죽지 않고 확대 재생산된다(23쪽).


‘동일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모두 같은 정서로 ‘규격화’되어 있을 거라는 놀라운 생각이야말로, ‘단편화된 남성 사고’의 전형 아니겠는가(41쪽).


김보통 작가의 만화 <D★P>에는 “군대는 일종의 침팬지 수용소”라는 말이 나온다. 많은 남자들이 군대를 ‘지랄 같았다’고 하니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제대를 하면서 남자들은 그 시절에 대해 ‘지랄’ 그 이상이 것이 있었다고들 말한다.······중략······확실한 건, 남자들은 군대를 증오하는 만큼 옹호한다는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국가가 이 증오의 원인을 해결해 주지 않으니 이것만이 유일한 심리적 치유 아니겠는가(70쪽).


윤종빈 감독의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2005)는······중략······돌직구를 날린다. 군대는 ‘너무 어린’ 사람들끼리 ‘너무 오래’ 함께 살고 있는 곳이라고(76쪽).


개 좋아하는 아저씨가 아닌, 개 같은 아저씨! ‘남자이자 나이 많다’는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하지만 한국에서는 효용성이 무척이나 큰 두 가지 변수만을 믿고 무례한 짓을 무례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개저씨다(91쪽).


자신이 잘못한 줄도 모르고 ‘떳떳하게’ 살다 죽은 사람이 불행한 것이다(96쪽).


나는 ‘남자답다’는 걸, 잘못한 일에 대해 한 치의 변명도 없이 순도 100퍼센트의 사과를 하는 것이라 배웠지만, 그것이 얼마나 거짓 이미지인지 이제 너무나도 잘 안다(103쪽).


시간이 흘러 등장한 ‘코피노’ 문제는 한국 남자의 못된 버릇이 얼마나 문화적인지를 짐작케 한다.······중략······천륜을 저버린 한국 남자들 때문에 힘들게 살아가는 코피노가 3만 명이 넘는다. 그런데 한국이 언제 필리핀에 군대를 파견한 적이라도 있었던가? 별다른 특수 상황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꼬드겨 상대가 임신을 하든 말든 섹스부터 하고 보는’ 개인‘들’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만행’이라 단정한다(2014. 5. 26. 107쪽).


코피노 발생 시기는 필리핀에 어학연수 붐이 일어나는 시기와 맞물려 있다(108쪽).


인간은 ‘잘못된 상황’에 처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동물보다 못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114쪽).


남자와 여자가 태초부터 구분되는 것은 생식기 차이, 그리고 남자가 여자에 비해 물리력이 강할 확률이 높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이 태초의 차이를 태초 이후의 차이로 확장해, 모름지기 남자라면 다 그런 것이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것은 한국에서 더 유별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115쪽).


여학생은 요리하는 남자의 몸에서 ‘보아라! 나는 요리도 하는 남자다’라는 외침이 들린다고 했다. 분위기상 “우와~ 선배 너무 자상해요~ 나중에 결혼하면 부인이 행복하겠어요”라는 말이 등장하면 요리하는 ‘척’은 더 과해진다. 요리를 ‘해서’ 자상하다는 ‘평’이 따르는 경우는 남자만이 가능하다(142쪽).


남자들은 ‘나는 그 정도는 아니라’라면서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저지르는 유·무형의 폭력을 계속 유지한다. 그래서 ‘괴물까지는 아닌’ 자신이 좋은 남자라고 착각한다. 이런 남자에게 집안일은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가 ‘도와주는’ 봉사의 영역이다(166쪽).


천주교 문화는 개신교보다도 더 남성 중심적이다. 여자 목사는 존재하지만 여자 사제는 없다(211쪽).


비록 성서의 뜻이 ‘거룩한 책’이지만 공룡 화석이 ‘발견되기 전’의 사회적 패러다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성서 집필자는 자신이 알 수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서, 게다가 신학에서 말하듯이 특별한 ‘성령이 임하신 상태’에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겠지만 ‘공룡’이란 존재를 알 턱이 없다(213쪽).


그녀의 성명은 ‘주논개’다(227쪽).


농경 사회의 등장과 함께 기울기 시작했던 남녀의 권력 지형은 수천 년간 (지금도 그렇듯이) 강자가 약자를 혐오하는 방식을 통해 더 심각해졌다(230쪽).


여자는 옷을 평범하게 입으면 ‘자기 관리 못한 사람’이 되고 신경 써서 옷을 입으면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서 사치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251쪽).


여자들은 여자들에게만 혹독하게 적용되는 ‘외모’에 대한 평가 때문에 힘들 수밖에 없다. 이것은 단지 ‘얼마나 예뻐져야 하는가’와 같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같은 사람’으로서 ‘다른 평가’를 받는 부당함에 관한 문제다(252쪽).


가족을 위한 남동생의 보상이 ‘나중에 있을 것’이니 지금은 누나가 그런 남동생을 ‘위해’ 미리 희생하자는 일종의 교환 논리다(271쪽).


여자가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주변 분위기가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은 실제 ‘예쁜’ 여자 때문이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주변’ 의식 수준 때문이다. 생물학적인 반응이 아니라 ‘그 사회에서’ 학습된 결과물이라는 거다(275쪽).


맞벌이 가정에서 남편의 가사 노동 시간은 40분인데, 이건 OECD 최하위입니다. 아내의 194분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시간이죠(289쪽).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하다. 남자가 생계를 책임지고 여자는 이를 지원, 전문용어로 ‘내조’한다. 맞벌이를 해도 이 큰 틀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 모델은 ‘힘’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던 농경 사회, 사회적 합의에 의해 힘에 대한 보상을 인정한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견고해졌다(291쪽).


교회는 평소 목사가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을 이성적 논리로 따져 보는 곳이 아니다. ‘그대로 될지어다’의 뜻을 지닌 ‘아멘’을 내뱉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29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