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벌 흑역사 (상) 삼성·현대> 이완배 지음. 민중의소리 펴냄. 2018년 3월 12일 개정증보판 1쇄. 2018년 3월 27일 개정증보판 5쇄.
1967년 대선을 앞두고 한국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 박정희는 반드시 비료공장이 필요했다. 즉 한국비료는 이병철 혼자의 작품이 아니라 박정희와 이병철의 합작품이었던 것이다(55쪽).······중략······이맹희에 따르면 이병철은 일본 미쓰이로부터 공장 건설에 필요한 차관 4200만 달러를 들여오면서 100만 달러를 리베이트로 받았다. 이병철은 즉각 이를 박정희에게 보고했다. 박정희는 “그 돈을 여러 가지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쓰자”고 말했다. 쉽게 말하면 자신에게 그 돈을 정치자금으로 제공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병철은 일본에서 받은 현찰 100만 달러를 들고 한국에 들어오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밀수였다. 건설자재를 들여오는 척하면서 사카린 등 다양한 밀수품을 국내에 반입해 이를 판 뒤 챙긴 이문을 박정희에게 바친다는 계획이었다(56쪽).
“세상에서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자식과 골프, 미원이다.” 살아 생전 이병철이 했다고 전해지는 말이다(72쪽).
2015년 9월 한 주간지가 국토교통부의 자료를 근거로 이건희의 자동차 보유 대수를 공개한 적이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이건희가 갖고 있는 1억 원 이상 수입차는 모두 124대였다. 124대의 가격 총합은 477억2428만 원이었고, 이 중 가장 비싼 부가티 베이론 9SA15의 가격은 26억6337만 원이었다(98쪽).
1997년에는 이른바 ‘신수종 보고서’라는 이름의 삼성의 내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삼성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이 보고서에는 ‘정부와의 긴밀한 협조를 바탕으로’ 삼성이 기아자동차를 인수하고 통신사업에 진출한다는 복안이 실려 있었다(102쪽).
혁명이 성공한 이후 당연히 서울에서 발포를 최종 명령한 사람이 누군지에 대한 검찰 조사가 시작됐다. 사망자만 약 100명에 부상자만 450여 명이었다.······중략······검찰 수사 결과 경찰의 발포 최종 명령자가 바로 홍진기로 밝혀졌다(129쪽).
이회성은 검찰 수사 및 법정진술을 통해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주차장에서만 총 60억 원을 삼성으로부터 대선자금 지원 명목으로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엄청난 사건은 검찰의 삼성 봐주기 수사로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이가 박근혜 정부의 세 번째 국무총리에 오른 황교안(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었다(136쪽).
1970년 개통한 경부고속도로는 개통 수개월 만에 1522군데에서 도로 파손이 발생해 누더기가 됐는데 이 중 가장 많은 파손이 일어난 곳이 서울 ~ 몽단이 구간(전체 파손의 무려 79%인 1180곳)이었다. 그리고 이 구간 공사를 담당한 곳이 현대건설, 건설 현장을 이끌었던 간부가 이명박이었다. 이명박(당시 상무)은 2년 뒤인 1972년 허가도 받지 않고 매머드 빌딩을 불법으로 짓다가 건축법 위반 혐의로 수배된 뒤 결국 붙잡혀 구속되고 만다(220쪽).
당시 울산조선소의 건설 구호는 “빨리, 더 빨리”였다. 정주영이 27개월 만에 26만 톤 유조선 완성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는 동안 노동자들이 치러야 했던 대가는 혹독했다. 1973년 한 해 동안에 조선소에서는 1894건의 산재 사고가 일어났는데 이 중 34명이 목숨을 잃었다. 1974년에도 7월까지만 무려 1566건의 산재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 가운데 25명이 숨졌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노동자는 “정말 미친 듯이 일했다. 용접을 했는데 최고 40시간까지 잠 한숨 못 자고 일한 적도 있다. 정신이 멍한 상태에서 이동하다 떨어져 죽은 사람도 수두룩했다. 죽은 사람이 손에 쥔 것은 몇 푼의 보상금이었다”고 치를 떨었다. 정주영이 자랑한 ‘26만 톤 유조선과 조선입국’은 사실 59명 노동자들의 소중한 목숨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239쪽).
현대아파트 특혜 분양 사건에서 드러난 또 다른 현상은 언론인이 무려 37명이나 연루됐다는 점이었다.······중략······<동아일보> 조용철, <서울경제> 엄병윤 등 두 명의 기자가 두 채 이상 분양을 받은 인물로 이름을 올렸다. <동아일보> 이상하, <서울경제> 이강희, <한국일보> 문은모 등은 분양권을 전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이들 중에는 <동아일보> 회장이었던 김상만 같은 거물도 있었다. <조선일보> 정치부장이었으며 나중에 국회로 진출한 최병렬, <KBS> 경제부장이었으며 역시 국회에 진출한 앵커 출신 박성범, <동아일보> 오너 김상만의 아들이자 당시 <동아일보>의 자금부장이었던 김병건, <경향신문> 편집국장이었으며 이후 <한국디지털위성방송> 사장을 지낸 서동구 등 내로라하는 인물들도 특혜 분양 혐의로 줄줄이 검찰에 불려 나갔다(264쪽).
현정은은 “여자는 경영에 나서지 않는다”는 엄격한 정 씨 집안의 불문율 탓에 30년 가까이 전형적인 재벌가 며느리로 살아야 했다(346쪽).
정치인 정몽준은 항상 “서민을 위한 정치인이 되겠다”는 말을 달고 다녔지만, 정작 그의 행동은 서민의 정서와 심하게 동떨어져 있었다.······중략······대표적인 예가 2008년 터져 나온 ‘버스비 70원 발언’이었다(363쪽).······중략······(당시 서울 기준 버스 요금은 현금 1000원, 카드 900원이었다.)······중략······그런데 더 황당한 일이 그다음에 벌어졌다. 정몽준이 전당대회 자리에서 교통카드를 꺼내들고 “앞으로는 대중교통을 더 많이 이용하겠다”며 이미지 쇄신을 시도했는데, 하필이면 꺼내든 교통카드가 청소년용이었던 것이다(364쪽).
그는 국회의원 시절이었던 2011년 9월 외교통상부 장관 김성환에게 “그게 상식에 맞는 이야기야?”, “그게 무슨 궤변이야!”, “초등학생이라도 이건 상식이 안 맞는 짓 아니겠어?” 등의 반말 세례를 날려 물의를 빚었다(367쪽).
업무 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속도로에서 “너, 내려!” 한마디로 비서관을 고속도로에 내려 두고 왔다는 ‘국회의원 정몽준’의 이야기가 아직도 여의도에서 전설처럼 전해지고(368쪽).
<한국 재벌 흑역사 (하) 롯데·SK> 이완배 지음. 민중의소리 펴냄. 2018년 3월 12일 1쇄. 2018년 3월 27일 5쇄.
신동학은 1968년생으로 현재 롯데그룹 실권을 장악한 신동빈과는 열세 살 차이가 났다. 신동학은 친박 핵심인 자유한국당 윤상현 의원의 처남이기도 하다. 신동학의 누나 신경아가 윤상현의 부인이다(46쪽).
2015년 롯데홈쇼핑은 미래부로부터 방송재승인 심사를 받게 됐다. 검찰이 밝힌 갑질 사건의 파장이 너무나 커서 당시 업계에서는 “롯데가 이번에는 진짜로 탈락할지도 모른다”는 시각이 우세했다. 하지만 롯데홈쇼핑은 예상을 뒤엎고 미래부의 재승인 심사를 통과했다. 그런데 이 사건에도 반전이 있었다. 롯데가 제출 서류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 따른 처벌은 당연히 방송 승인 취소가 마땅했다. 하지만 롯데는 무슨 마술을 부렸는지 승인 취소가 아니라 6개월 동안 ‘프라임타임(오전과 오후 각 8 ~ 11시) 6시간 방송 정지’라는 처분을 받고 극적으로 회생했다. 유구한 역사의 롯데 갑질 문화는 이렇게 그 역사를 이어 나갔다(83쪽).
신격호는 김종필의 오른팔이었던 김동환을 1973 ~ 1974년 호텔롯데 사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147쪽).
이승만 정권은 민족의 재산인 적산을 황당한 방식으로 불하했다. 일단 불하 가격이 문제였다. 이승만은 적산을 시장가격보다 훨씬 낮게, 거의 무상이라 할 만한 가격에 팔아넘겼다. 싼 가격에 팔아넘기는 것도 모자라 돈을 받는 상환기간도 5년에서 15년까지 분할상환이 가능하도록 넉넉하게 배려했다. 해방 이후 4년 동안 물가가 60배 가까이 올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15년 분할상환은 거의 공짜로 적산을 가져가도록 한 배려와 마찬가지였다. 또 한 가지, 이승만은 적산을 먼저 차지할 수 있는 우선순위를 일제 치하에서 해당 기업의 주주 및 경영인으로 있었던 자, 관리인으로 있었던 자, 채권자 순으로 매겼다(166쪽).
한국의 재벌들 중 자수성가했다고 주장하는 실로 많은 자들이 최종건과 비슷하게 적산을 불하받아 기반을 닦았다. 예를 들어 자수성가형 재벌의 대표 인물인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의 사업 기반도 미군정 때 불하받은 서울 중구 초동 땅 200여 평이었다(170쪽).
워커힐 인수에 대해······중략······최종건의 의지가 강햤고 결국 그 뜻은 이후락을 통해 박정희에게 전달됐다. 박정희는 “그럼 선경에 매각하시오”라고 한마디로 결정을 뒤집었다. 선경의 문어발식 다각화는 이렇게 시작됐다(178쪽).
대우그룹은 분식된 회계 장부를 바탕으로 물 먹는 하마처럼 돈을 빨아들였다. 이후 검찰 조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대우가 받은 불법 대출은 10조 원이었고 해외로 빼돌린 자금은 24조 원이었다. 대우가 꾸민 분식회계 규모는 무려 41조 원이었다(195쪽).
SK글로벌은 최종건이 일본인들의 도피를 도와 불하받았던 선경직물 바로 그 회사였다. 1998년 SK상사로 이름을 바꿨다가 2000년 7월부터 SK글로벌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3년 분식회계 사건이 터지자 사명을 그대로 쓰기 창피했는지 그해 10월 회사 이름을 SK네트웍스로 바꿨다(197쪽).
2003년 2월 22일 최태원이 SK글로벌을 이용해 SK증권을 부당 지원했고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다(198쪽).······중략······최태원의 구속 사유에는 분식회계 외에도 그룹 계열사끼리 주식을 사고팔도록 해 자기 호주머니에 959억 원을 챙긴 혐의가 추가됐다(199쪽).
영미권에서 최악의 분식회계를 저지른 기업으로 기억되는 엔론의 최고경영자 제프리 스킬링은 2006년 사법부로부터 24년 4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206쪽).
2012년······중략······최태원은 그해에 회삿돈 465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그런데 횡령한 이유가 엽기적이었다. 점쟁이 말만 믿고 재산 불리겠다며 회삿돈을 횡령했다가 덜미를 잡힌 것이다(211쪽).
박삼구는 매월 한 번씩 서울 강서구에 있는 금호아시아나항공 본사를 방문해 여승무원을 성추행한 전력이 있다(213쪽).
(최철원에게 맞은) 노동자를 기소한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 박철 검사였다. 그런데 박철은 이듬해 SK건설 전무로 당당히 영입됐다(245쪽).
이맹희가 “나라를 훌륭히 지키리라는 것을 믿었”다는 그 친구들이 누구였을까? 바로 노태우, 정호용, 김복동 등 신군부를 이끌었던 쿠데타 세력이었다. 이맹희와 이들은 경북고 동기동창(32회)이었고 실제로도 매우 친했다. 게다가 이맹희는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과도 친분이 있었다. 전경환은 이맹희의 장남 이재현이 어렸을 때 운전수 겸 보디가드를 지냈다(276쪽).
X파일 사건의 주인공으로 이회창 캠프에 현금을 날라다 바친 <중앙일보> 전 회장 홍석현은 폐질환으로 면제를 받았다. <동아일보> 3대 회장이었던 김병관과 그의 동생 김병건 형제는 병적 기록이 아예 없었다(281쪽).
LG그룹 회장 구본무의 장남인 구광모 상무와 큰딸 구연경도 자녀를 미국에서 출산했다. 구본무의 손자와 손녀 4명은 모두 미국인이다(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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