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2018년 8월 10일 초판 1쇄.
1996년 5월 29일 저녁 7시경 이화여자대학교 대동제 행사장에서 벌어진 몇 장면······중략······고려대학교 학생 400여 명이 집단으로 난입해 행사 참여자들을 짓밟고 다음 날 행사를 위해 설치된 무대 장치를 부순 이른바 ‘고대생 이대 대동제 집단 성폭력 사건’이다. 생명공학과 95학번 차 모 씨는 기차놀이 대형으로 지나간 미친놈들에 의해 팔뼈가 여러 조각으로 부서졌는데, 그녀의 티셔츠에는 수많은 발자국 흔적들이 찍혀 있었다(21쪽).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이 수배 중이던 2008년 말께 이 위원장의 도피를 도운 여성 전교조 조합원을 민주노총 간부 김 아무개 씨가 성폭행하려 했던 사건이다. 이를 문제 삼으려는 피해자를 지도부는 이렇게 달랬다. “전교조나 민주노총이 매우 어려운 시기다. 정부나 보수 언론이 이 사실을 알면 이를 빌미로 탄압하고 조직을 와해시키려고 할 것이다. 참아 달라(62쪽).”
남자라도 이론에만 머무르는 페미니스트가 되긴 쉽다. 문제는 몸이다. 실천이다. 가부장제의 독재 체제 하에서 성장한 남자들이 머리로는 페미니즘을 껴안을망정 ‘몸에 각인된 타성’은 삶의 현장에서 실천을 완강히 거부한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다. 무엇보다도 가사노동 분담을 늘 설거지하는 걸로만 때워 온 위선자다. 위선자가 되고 싶진 않아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말한다. 뻔뻔하다(66쪽).
그는 2014년 10월 터키로 떠나기 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지금은 남자가 차별받는 시대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다. 그래서 IS가 좋다”고 남겼다(99쪽).
메르스 공포가 한창이던 2015년 5월 29일 인기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는 메르스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메르스 갤러리(메갤)’를 만들었다. 이곳에 메르스 의심 증상을 보이던 두 여대생이 격리 조치를 거부해 메르스를 퍼뜨렸다는 루머에 관한 글이 올라왔다.······중략······해당 내용은 사실무근으로 드러났고, 이 소동은 그대로 묻히는 듯했지만, 곧 메갤에는 사실도 아닌 내용으로 ‘김치녀’라며 한국 여성을 싸잡아 비난한 한국 남성들의 여성 혐오적 행태를 비판하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들은······중략······스스로 ‘메갈리아의 딸들’로 부르다가 여성 혐오에 대한 저항이 생물학적 여성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기에 ‘메갈리안’으로 바꾸었다(112, 113쪽).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을 집행하는 주무 부서인 고용노동부가 “(면접관이 성희롱성 질문을 하면) 농담으로 받아칠 정도의 여유가 필요하다”는 면접 모범 답안을 내놓은 것이나(2014년 11월), 8월 12일 울산 물총축제 공식 홍보물의 메인 카피가 “누나 나랑 한 번 박자 살살 할게”였던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117쪽)?
김도훈. “일베가 무엇인지 정의하라고 한다면 제 가설은 그겁니다. 권위주의 산업화 시대 생존자의 아들이 아버지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돌아왔습니다(163쪽).”
<중앙일보> 정치부 차장 최민우 칼럼 ‘유아인을 보며 언론을 돌아본다’의 댓글. “정치부 차장이라서 그런가 이쪽 판 돌아가는 상황은 모르시는 것 같다. 이번 일로 여성들은 유아인에게서 페미니스트라고 입 털며 성희롱 가부장제에 연대하는 그냥 기존 ‘한국 남자’를 봤다. 남성 페미니스트의 가장 밑바닥이 유아인이다. 해외 셀럽들이 모두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니까 나도 할 건데 그게 뭔지 1도 모르는 상태(244쪽).”
영미권에서는 명예훼손을 형사 처벌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대부분 민사소송으로 해결하도록 한다. 한국과 같은 대륙법 체계인 독일도 내용이 허위일 때만 처벌한다.······중략······2016년 서울지방변호사회 설문조사에서도 응답한 변호사의 49.9퍼센트가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폐지에 찬성했고, 16.5퍼센트는 유지하더라도 징역형은 삭제하자고 했다(261쪽).
(2018년) 3월 13일······중략······최민희는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중략······그가 밝힌 (미투) 3가지 요소는 권력관계 하에서 발생했을 때, 직업적 가치가 훼손되거나 현재와 미래의 직업적 가치가 훼손됐을 때, 성범죄가 동반될 때 등이었다. 그는 “미투의 범위가 하염없이 넓어져서 결과적으로 독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미투 운동의 본질과 멀어지게 하는 부작용이 있다. 그리고 미투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선정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우리 사회에 수없이 많은 의제가 있는데 다른 의제들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285, 286쪽).
“나는 너를 화나게 만들 수 있어”라거나 “내게도 이런 능력쯤은 있어”라는 식의 잘못된 자기 효능감을 만끽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악플을 올리는 악플러들의 인정 투쟁은 처절하거니와 불쌍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천하의 몹쓸 짓으로 규탄받아 마땅하다. 미투 운동도 초기의 충격 효과가 약화되면서 바로 이런 악플러들의 비뚤어진 ‘자존감 회복 운동’의 먹잇감이 되어 가고 있었다(327쪽).
손희정은 “워마드는 스스로가 자신들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선언한 지 오래다. 누드모델을 몰래 촬영해 사진을 공유하고 성희롱하는 행위는 페미니즘이 아니다”라며 “페미니즘이라고 얘기하려면 윤리적인 태도가 필수다. 내가 남에게 어떤 폭력을 가했는지 스스로 돌아보지 않는 이들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3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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