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 피난

2015.01.28. 13:28 ㅡ 이명박 정권 "우측보행"

eunyongyi 2020. 6. 26. 14:01

낱말 또는 세상 ㅡ 우측보행

 

우측보행. 우측(右側). 오른쪽. 북쪽을 향했을 때 동쪽과 같은 쪽. 보행(步行). 걸어 다님. 즉 오른쪽으로 걸어 다닌다는 뜻. 2009년 이명박 정권이 난데없이 “우측보행”을 외쳤습니다. 오른쪽 궁둥이나 왼쪽 볼기나일 텐데 그게 뭐 그리 대수롭다고 도시 여기저기에 ‘오른쪽으로 걸어 다니라’는 표지를 내걸었죠. 지금도 지하철역 같은 곳에서 쉬 발견할 수 있어요. 음. 시민의 걷는 방향까지 알려 줬으니 이명박 정권은 참으로 친절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허나 이건 좀 지나친 것 아닐까요. 못내 찌뿌드드합니다.


■오른쪽으로 걸으라고? 왜 또 이래라저래라!

표준국어대사전엔 ‘우측보행’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우측’과 ‘보행’이 따로따로 올라 있죠. ‘우측통행’은 있습니다. ‘길을 갈 때에 오른쪽으로 감’이라 풀이했어요.
‘우측통행’이 표준국어대사전에 오른 건 ‘좌측통행’ 때문일 겁니다. ‘길을 갈 때에 왼쪽으로 감’이 먼저 사전에 자리 잡은 것의 반향으로 오른쪽 걷기를 정의한 낱말(우측통행)이 사전에 올랐을 거란 얘기죠. 앞뒤가 그랬으리라는 건 딱히 무슨 근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제 몸이 그리 체득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어릴 적, 1970년대와 80년대에 귀에 못 박히듯 ‘좌측통행’을 듣고 실천했잖아요. 사실은 훨씬 전부터였겠죠. 1924년 일제(日帝) 강점 시절에 조선총독부령 142호 ‘도로 취체 규칙’을 통해 “왼쪽으로 통행하라”고 했다지 않습니까. 귀뿐만 아니라 몸에 못 박히듯 한 게 꽤 오래전인 겁니다. ‘취체(取締)’라는 게 ‘법령이나 명령 따위를 지키게 통제한다’는 뜻이니 어쩌면 그 옛날 ‘일제 순사의 서슬’까지 품은 몹쓸 단속이었을 개연성이 있겠네요. 나는 이걸 한반도 시민 뼛속에 ‘2등 군사’를 새기려던 일제의 만행 가운데 하나로 읽고 싶습니다만 밑이나 끝이 없다는 말을 들을까 싶어 일단 접기로 했습니다.
이쯤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건 ‘통행(通行)’이 좀 더 포괄적이라는 점이죠. 걸어 다니는 것, 주로 사람의 행동을 일컫는 ‘보행’과 달리 인간과 자동차와 기차 따위를 모두 품습니다. ‘통행’이 ‘일정한 장소를 지나다니는 것’을 뜻하니까요. 일제가 사람은 물론이고 자동차와 기차의 통행을 왼쪽으로 통제했고, 한국 철도가 21세기에도 왼쪽으로 달리는 이유가 됐잖습니까. 음. 이유라기보다 그냥 그렇게 시작됐던 거죠, 뭐. 시간이 흐르면서 그대로 굳고 말았던 거고. 하여 불쌍합니다. 일제 치하 한반도 시민이 그렇고, 그걸 여태 끼고 사는 우리도 그렇고.
그냥 그리 끝난 것도 아니었죠. 미국 군대가 들어와서는 제 편할 대로, 제 하던 대로 자동차를 오른쪽으로 가게 했잖아요. 음. 입 밖으로 욕 튀어 나오려 하는데… 아무튼 우리는 지금 기차(국철)를 타면 왼쪽으로, 자동차를 타고는 오른쪽으로 달립니다. 왼쪽으로 달리는 지하철이 있나 하면, 오른쪽으로 가는 것도 있죠. 뭐, 격하게 욕할 것까진 없다 싶지만… 자꾸 일제와 미 군정의 찌꺼기인 듯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몹시 거북하고 괴롭네요.
음. 그렇다고 저의 이 불편한 느낌을 이명박 정권이 시민에게 갑자기 ‘우측보행’을 내밀며 이용했던 ‘좌측 보행은 일제 잔재’라는 꼼수와 같은 뜻으로 읽지는 말아 주십시오. 그자나 그자의 주변과 함께 엮이는 것 자체가 싫거든요. 치 떨리게.

 

■박정희의 좌측통행이나 이명박의 우측보행이나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걷는 방향을 따로 정해 뒀다 해서 시민 동선이 깔끔하던가요. 어지럽죠. 네, 여전히 어지럽습니다. 특히 왼쪽으로 걷던 걸 갑자기 오른쪽으로 바꾸라 하니 참으로 짜증나는 지경에 이른 지 오래잖습니까.
서울 지하철 5호선 영등포시장역엔 ‘우측보행’뿐만 아니라 개찰구를 지나 플랫폼을 향하는 바닥에 친절한(?) 표지가 하나 더 있습니다. ‘걸어가는 방향’인데요. 이 표지를 따라가면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자동계단(에스컬레이터)을 탈 수 있죠. 헌데 그게 왼쪽에 있습니다. 오른쪽이 아닌 왼쪽. ‘걸어가는 방향’ 표지도 열한 시 방향(왼쪽)을 가리킵니다. 우측보행이 아닌 거예요. 그 자동계단을 타고 반(0.5) 층을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꺾인 곳에서 ― 개찰구에서 아래를 향했을 때 — 두 갈래였던 계단이 하나로 모이고, 나란히 설치돼 위아래로 교차하는 자동계단이 나타납니다. 내려가는 이를 기준으로 오른쪽이 아래를, 왼쪽이 위를 향하는 자동계단이죠. 헌데 그 자동계단이 전체적으로 왼쪽 벽에 붙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등포시장역을 이용하는 시민은 개찰구에서 플랫폼으로 내려갈 때 부득이 좌측통행을 하게 되는 거죠.
왜 그럴까요. 역 곳곳에 ‘우측보행’ 표지를 붙여 뒀음에도 정작 자동계단은 왼편에 있어 시민의 걷는 자취가 자연스레 왼쪽에 형성되잖습니까. 그 까닭은 쉬 알 수 있습니다. 플랫폼에서 개찰구를 향해, 즉 아래에서 위를 향해 걸어 보면 되는데요. 자동계단이 모두 오른쪽에 치우쳤습니다. 걷다 보면, 그냥 자동계단을 향해 걸으면 우측보행이 되는 거죠.
음. 그러니까 영등포시장역은 플랫폼에서 개찰구를 향해 올라가는 시민의 편의를 위한 우측보행 안내를 선택한 겁니다. 자동계단 설치도 그리 선택한 거고요. 구조적으로 개찰구에서 플랫폼을 향해 내려가는 시민의 통행 편의까지 담아낼 수 없었던 거죠. 아마 모든 승객의 우측보행을 완벽하게 실현할 만한 공사비도 없었을 겁니다.
음. 그러니까 위아래 어디서든 시민의 왼쪽, 오른쪽 동선이 한두 번쯤 꼬일 수밖에 없어요. 하여 박정희의 ‘좌측통행’이나 이명박의 ‘우측보행’이나. 오른쪽 궁둥이나 왼쪽 볼기나. 뭐, 그런 거죠. 본디 제대로 대화할 줄 몰랐던, 시민과 소통하지 않던 자들이잖습니까. 제멋대로 시민을 윽박지르던 버릇대로 “좌측통행 해!”라거나 “오른쪽으로 걷자”고 한 겁니다. 시민은…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걸으라는 대로 착하게 걷다가 한두 번쯤 다른 이의 동선과 맞닥뜨려야 했고, 서로 부딪치지 않게 왼쪽과 오른쪽으로 주춤거려야 했죠.
음. 그러니까 왼쪽으로 걸으라거나 오른쪽으로 걷자 말자 할 일이 아닙니다. 시민 걷는 방향까지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세요. 기차나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이 걷는 건데 좀 편할 대로 걸어선 안 될 일이 뭐 있겠습니까. 걷다가 다른 시민과 맞닥뜨리면? 천천히 맞닥뜨린 이의 몸짓이나 눈빛을 통해 왼쪽과 오른쪽을 서로 견주어 짐작하고 옆으로 조금 비켜나면 그만인 거죠. 그리하면 될 걸 두고 ‘좌측통행’하라거나 ‘우측보행’으로 바꾸자고 정권이 나서 종용할 건 아닌 듯합니다. 설마 맞닥뜨린 두 시민이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비켜 지나가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청와대를 향해 “독재 타도”라고 외칠까 두려웠을까요. 에이, 아니겠죠. 네, 이건 오로지 나의 비약이자 비꼼일 뿐입니다.
시민이 걷다가 그리 잠깐 호흡 좀 가다듬는다고 경제 발전을 방해하거나 스스로 위험해지지도 않을 거예요.

 

■굳이 왼쪽으로 걷고 싶네
“최근 돌풍을 일으키는 영화에도 보니까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퍼지니까 국기배례를 하더라. 그렇게 해야 나라라는 소중한 공동체가 건전하게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냐.”
2014년 12월 29일. 박근혜가 대통령으로서 핵심국정과제 점검 회의를 주재하며 한 첫머리 발언에 포함된 말입니다. 돌풍을 일으켰다는 영화는 윤제균 감독의<국제시장>이었죠. 박근혜는 그날 그 회의에서 “애국가에도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이런 가사가 있지 않냐. 즐거우나 괴로우나 나라 사랑해야 한다”고도 말했어요.
아… 시대착오(時代錯誤). 낡고 뒤떨어진 생각. 네, 딱 그렇습니다. 박정희와 이명박이 ‘왼쪽으로 걸어. 아니, 오른쪽이 낫겠다’며 시민을 미혹하게 만들더니만 기어이, 그것도 2014년에 박근혜의 입에서까지 ‘애국’과 ‘국기배례’가 튀어나왔네요. 그자의 딸이기 때문? 어쩌면 그는 한국 대통령이라기보다 여전히 박정희의 딸로서 1970년대에 종종거리며 세상 모든 일을 인지하는 듯싶습니다. 헌데 사람이란 게 35년 전(1979년) 박정희가 살아 있을 무렵에 머물 순 없죠. 그럼 대체 뭘까요. 박근혜의 열악한 세상 인지 능력의 뿌리 말입니다. 독서량 부족? 생각이 짧아서?
애국가 울려 퍼질 때 하던 길바닥 국기배례는…. 음. 정말 1970년대에 있었습니다. 그가 박정희의 딸일 때였죠. 공공 기관에 내건 태극기 내리겠다고 애국가를 틀어 표시하고는 누구나 가던 길 멈추고 가슴에 손 얹게 했던 거. 심지어 노래는 들리는데 국기가 안 보이면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곳을 향해 예(禮)를 표하라고까지. 음. 부동자세로 서라 했습니다. 움직이지 말고 똑바로 서 있으라는 거.
아… 국기배례(國旗拜禮). 국기에 예의를 갖춰 존경하는 뜻을 나타내는 일. 21세기 한국 대통령의 입에서 오래전 그 국기배례가 다시 튀어나오다니. 무섭네요. 참으로. 어쩜 그리 유구히 ‘군사적 혹세무민(惑世誣民)’이 이어질까요. 대를 이어. 더구나 그의 아빠처럼 항공 점퍼에 검은 색안경 쓰기를 좋아했고, 일왕(日王)에게 성심껏 고개 숙여 인사한 자가 아빠의 바통을 딸에게 잇다니. 어쩜 그리 유구히.
“국기를 존중하는 일이 바로 애국이면 우리는 국기를 통해 올바른 국가관을 확립해야 한다.”
박정희가. 1972년 5월. 대통령으로서 그리 말한 뒤. 나는 나의 초등학교(1975년 ~ 1980년) 선생님 앞에 선 채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워야 했습니다. 애국가를 곁들인 길바닥 국기배례에도 “나는 자랑스런(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어쩌고저쩌고.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지긋지긋한 그 맹세가 귓전을 때렸죠.
처음엔 진짜 결연히 배례했습니다. 머리가 얇았으니까. 학교에서 배운 대로 태극기와 나라를 지키리라 다짐했죠. 헌데 점점 싫증이, 특히 겨울 해넘이 무렵에 길바닥 국기배례에 붙들려 길게 누운 내 그림자를 바라볼 때면 정말 짜증이 났어요. 음. 꼼지락거렸습니다. 자연스레. 혈기 왕성한 아이가, 그것도 마구 뛰놀던 어린이가 국기배례에 붙들렸는데 어찌 곰지락대다 못해 꼼지락거리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음. 머리가 좀 굵어지니 명확해지더군요. ‘제기랄, 대체 왜 만날 사람을 길바닥에 서 있게 하는 거야’ 싶었고. 누구나 얼굴에 짜증 가득했기에 ‘이건 정말 쓸데없는 짓이다’ 싶었죠. 음. 머리가 조금 더 굵어지니 역겨워지더군요. ‘제기랄, 대체 왜 만날 사람을 긴장하게 하는 거야’ 싶었고. 그따위 동원 준비 태세의 본디 목적이 따로 있음을 알았기에 ‘이건 정말 허망한 짓이다’ 싶었죠.
마찬가지입니다. 우측보행이든. 좌측통행이든. 거 쓸데없이 나서지 좀 마세요. 제발, 그냥 놔두세요. 왼쪽으로 걸을 건지, 오른쪽으로 치우칠 건지 정도는 시민이, 우리가 알아서 합니다. 우리, 걷고 싶은 방향으로 알아서 안전하게 잘 걸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거. 정권은 깔끔하게 함구(緘口)! 입 다무시고 어찌하면 혹세무민(惑世誣民)하지 않을지 진심 담아 고민하는 게 낫겠네요.
“자꾸 그리 몰아치면. 나. 굳이 왼쪽으로 걸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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