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 노종면의 돌파
노종면 지음. 퍼플카우 펴냄. 2012년 11월.
해고. 종이봉투를 열기도 전에 회사의 ‘해고’ 통지가 밖으로 배어났다. 음. 설마에 당했다는 느낌에 앞서 회사가 이렇듯 막무가내일 수 있구나, 이렇게 황당할 수 있구나… 싶었다. 툭, 입 밖으로 튀어나가는 헛웃음을 붙들지 못했다.
2014년 8월 22일. 금요일. 오후 다섯 시 사십오 분쯤.<전자신문>이 내게 해고를 통보했다. 8월 24일, 일요일에 맞춰 해고하겠다고.
“사무실 출입을 자제해 주세요. 짐 정리할 시간은 드리겠습니다. 노동조합(전국언론노조 전자신문 지부) 사무실엔 계속 출입하실 수 있습니다.”
8월 25일. 월요일. 오전 아홉 시 반쯤. 회사는 내게 짐 정리할 시간만 주려 했다. 빨리 나가 달라는 얘기. 1995년 4월 1일부터 그날까지 19년 5개월여 동안 땀 흘린 내게<전자신문>은 그리 독하고 쌀쌀했다.
나. 횡령 같은 걸 해 본 적 없다. 무단결근 같은 걸 하지도 않았다. 누굴 때렸거나 성적으로 희롱하지도 않았다. 해고될 까닭이 없었기에<전자신문>의 결정은 부당한 ‘인격 살인’이요 뭇칼질이었다.
손팻말(피켓)을 들었다. 달리 해볼 게 없었기에. “부당 해고”라 부르짖었다. 억울했기에.
하루 이틀 손팻말 든 날이 쌓이면서 내 얼굴이 점점 딱딱해진다는 걸 나를 대하는 이들의 눈빛으로부터 느꼈다. 음. 얼굴 굳는 속도에 비례해 내가 지쳐 갔다.
10월 20일. 슥. 김유경 전국언론노조 전자신문 제12대 지부장이<노종면의 돌파>를 내 눈앞에 밀어 놓았다. ‘전자신문 지부 작은노동책방’의 32번 책.
나. 그의 마음을 ‘즐겁게… 웃으며 함께 싸워요’로 읽었다. 나. 책 안을 천천히 걸으며 나의 ‘돌파’ 도구를 탐색했다.
“‘복직을 막았더니 오히려 골치 아프더라.’ 이런 생각. 하게 해 주면 된다고 봤다(134쪽).”
‘용가리통뼈뉴스’를 우려낸 지은이의 생각. 음. 그래, 맞다. 그리 생각하게 해 주자. 그래, 특히 웃자 했다. 책을 무기 삼으려, 은근히 위로까지 얻고자 마음을 이입했다.
복직은 그러나… 있던 곳 있던 상태로 돌아가는 게 아니었다. 나는 이미 깊이 베였다. 하여 내 싸움의 목표가 복직이어야 할까, 깨뜨리어 뚫고 나아갈 진짜 목표는 과연 무엇인가를 고민할 무렵 뜻밖에도<전자신문>이 내게 복직하라 했다. 2014년 12월 24일. 부당 해고로 121일을 채운 뒤였다.
복직은 그러나… 있던 곳 있던 상태로 돌아가는 게 아니었다. 광고마케팅국으로. 특히 송도, 경인센터로. 부당한 전직 배치. 기자(16년)와 논설위원(1년)으로, 출판(2년 5개월)에서 19년 5개월간 땀 흘린 내게. 사전 협의도 없이. 특히 다시 징계할 테니 인사위원회에 출석하라는 요구까지. 나를 끝내 밀어 내치려는 회사의 뜻이 고스란했다. YTN처럼.
나. 새로운 싸움을… 아, 지루한 굴욕에 시달려야 했다. 나. 부당 해고 만행을 되갚으려 같은 깊이로 찔러야 할까. 더 깊게? 부당 해고 책임자에게 칼을 겨누고? 아니, 아니다. 더 넓게 베어야 한다. 자본의 야만스런 행동은<전자신문>에만 있는 게 아니니까. 더욱더 넓게 베자. 하여 지금은… 칼 벼릴 때이리라.
“사실 ‘돌발영상’은 아주 어릴 때부터 고비가 많았다. 툭하면 제작 내용을 사전에 보고하라 하고 툭하면 내용 수정하라 하고 심지어 힘센 놈이 빼달란다고 빼버린 적도 있었다(158쪽).” “(구자홍 사장이 사장실을 2차로 점거했을 때) 언론인으로서 비겁했을지언정 노조 눈치도 어느 정도 보던 간부들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게 변했다. 구원 투수로 투입된 배석규 전무를 시켜 간부 회의를 소집하자 60여 명이 몰려들었다(77쪽).” “‘선배가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러긴? 그는 원래 그런 인간이었던 게다. 예기치 않게 벌어진 몸싸움 과정에서 떨어진 그의 수첩에는 몇 달 동안의 노조 동향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180쪽).”
어쩜 그리 하나같은지. 권력과 자본의 입맛에 맞게 매체(미디어)가 휘둘렸다. “힘센 놈이 빼달란다고 빼는” 행위가 만연했던 거다. 힘센 놈이 빼달란다고 빼는 행위를 막으려 하면 선배랍시고 후배를 윽박지르고 노동조합을 괴롭혔다. 어디 YTN뿐이었으랴. 수많은 매체에서 영상이 빠지고 기사가 들려 노동자(기자)의 영혼을 좀먹었다. 공정히 보도하려는 기자? 일단 내쳤다. 부당히.
부당했다면, 사람 사는 도리에 어긋났다면 반성하고 사죄해야 마땅할 터. 허나 이미 사람 말이 오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박진수 YTN 기자는 “징계가 난 다음 날 인사위원들을 찾아갔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징계에 대해 선배라고 믿었던 간부들에게 우리의 분노와 억울함을 쏟아 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던 그 시간을 간부들은 ‘하극상’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간부들은 조직의 질서를 무너뜨렸다며 당시 후배들의 행동을 절대 잊지 못한다고 말하곤 한다. 심지어 복수해야 하고 버르장머리를 고쳐 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후배들의 항의에 분통을 터뜨릴 줄만 알았지 자신들의 행동과 결정이 옳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하지 않는다. 내게는 지금도 이들의 편리한 사고방식이 그저 신기하기만 할 뿐(197쪽)”이었다.
한국 대법원은 동전 던지기라도 한 양 YTN 해직 기자를 세 명씩 갈라 해고하고 복직하라 했다. 사법부에 권력 눈치 보기에 충실한 자가 많은 줄 진즉 알았지만 이처럼 눈먼 개 젖 탐하듯 할 줄은 내 미처 몰랐다. 심하지 않은가. 당신이 한국 언론에 재갈을 물렸다. 말길 새롭게, 제대로 트려면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을 불러야 할까. 낯부끄러운 줄은 아는가.
아… 더욱 기함할 건 복직한 이에 대한 YTN의 재징계다. 무려 6년을 싸우며 버텨야 했던 이들을 다시 징계하다니. 모질다. 참으로.
“우리 싸움에서 가장 힘들었던 고비를 하나만 꼽으라면?……중략……2008년 12월 YTN 방송사업권 재승인이 보류됐을 때였다. 언론사이기 이전에 800여 명의 일터인 한 회사가 권력에 밉보여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집단적인 공포. 그것은 우리의 의지를 바닥까지 시험하게 만들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등 MB 정권 실세들은 이미 9월부터 재승인 문제를 거론하며 YTN 노조를 압박했다(91쪽).”
내 마음에 부채로 남은 장면이다. 특히 “최시중의 방송통신위원회는 12월 11일 YTN 재승인을 보류해버렸다(92쪽)”는 것까지.
나. 그때 그 회의를 지켜보며 취재했음에도 충분히,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다. 지면의 한계를 핑계 삼았고,<전자신문>편집진의 보수성을 감안한 자기 검열이 마음속 부채를 키웠다. 나. 기껏 한 것이라곤 “200개가 넘는 방송사업자를 허가하거나 재허가하면서 노사문제를 세밀하게 들여다본 사례가 없었다. 방통위가 재허가를 YTN 압박용으로 쓰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이경자 당시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의 지적을 전했을 뿐. 나. 이경자 위원의 이런 발언이 나오기까지 상임위원 머릿수(3)를 앞세워 제멋대로 YTN을 괴롭힌 이명박 정권의 행태를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다.
YTN 노동조합의 싸움 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고비였다 하니 마음속 부채가 무거워졌다. 뒷날<미디어 카르텔>안에 ‘낙하산 사장 세워 놓고 공정성 심사라니’로 그날 상황을 전한 게 미약하나마 부끄러움을 면한 듯했으되 여전히 죄송하다.
“40줄에 들어선 세 아이의 아버지요, 싸움꾼도 아닌 네가 ‘공정 방송 쟁취 투쟁’의 선봉에 선 이유를 너는 이렇게 설명했다. 바로 내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민주주의를 지켜 내야 내 아이들이 살 미래에 희망이 있다고, 언론의 공정성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188쪽).”
송태엽 YTN 기자가 2009년 3월 서울구치소에 있던 지은이에게 보낸 편지. 닿았다. 내 가슴에. 나. 기자로, 기록하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다짐한 이래 가장 두려운 독자는 ‘시우’였다. 나와 아내의 유전자를 절반씩 품은 친구. 내가 죽은 뒤에도 그 친구가 읽을 내 글. 기사. 공정해야 했다. 부끄럽지 말아야 했다. 허나 쉽지 않았다. 권력과 자본의 앞잡이에게 끊임없이 시달렸다. 손가락이 자판을 제대로 짚어 내지 못했다. 쉬 흔들렸다. 나. 아, 언제쯤 이 부끄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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