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 박상윤 평전: 맑고 아름다운 노동운동을 위하여
박상윤추모사업회 지음. 한스컨텐츠 펴냄. 2014년 12월.
“제게 ‘하방’을 말씀하셨군요. 화두로 끌어안을 것 같습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나는 ‘하방’일 걸로 짐작해 내게 이 책을 건넨 이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 책 끝에 내게 도움이 될 게 있을 듯하다는 그의 예상을 어림쳐 헤아린 결과였다. 그는 “하방(下放)이란 중국에서 당 간부나 공무원의 관료화를 막기 위해 일정 기간 농촌이나 공장에 보내 노동에 종사하게 한 운동이죠. 물론 지금 그렇게 할(노동조합 상층 간부들의 하방) 수는 없겠죠(201쪽). 고통 받는 노동자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 같(202쪽)”다며 이 책을 매조지했다.
“꼭 그런 건 아니”라는 그의 답신처럼 ‘하방’은 아니었다. 그럼 뭘까. 하여 머릿속 잔상 따라 쪽 되짚다 보니 노동 운동가 박상윤이 현장의 노동조합 간부들에게 자주 했다는 말에 눈길이 닿았다. “노동조합은 때에 따라 물러서기도 하고 깨지기도 하는 거다. 책임 있는 일꾼의 건강이나 가족도 중요하니 노동조합의 흥망성쇠에 자기 건강과 삶을 희생하지 말라(199쪽)”는. 이걸까. 내게 이 책을 건넨 이의 나에 대한 염려. 부딪는 막걸리잔에, 부당한 해고·전직·징계로 말미암아 이리저리 흔들리는 내 마음이 묻어났던 걸까.
아니면… “비록 지금 하는 일이 영향력이 크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자기 역할을 하며 사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는 망상을 버려야 해요. 그것에 집착하면 권력지향이 되니까. 각자 본분을 지키며 운동하는 게 좋다고 생각(201쪽)”한다는 이남신 비정규직센터장의 말일까. 이도 아니면… 뭘까. 음. 내게 이 책을 건넨 이가 말한 ‘이 책의 끝’은 한두 문장이나 서너 문단이 아닌 ‘좌담: 박상윤 동지와 맑고 아름다운 노동운동’ 전체일 수도 있을 터. 이마저 아니면… 일독하며 느꼈듯 내가 되새김할 게 여전히 많다는 것일 테고.
그에게 다시 문자메시지를 보내진 않았다. 딩동댕 칭찬을 듣고자 했던 건 아니었으니까. 그가 내게 전하고 싶었을 뜻과 마음이 내 가슴속에서 어렴풋이 만져지니까. 처음부터 내 마음과 뜻 굳게 가다듬을 도구를 찾아 벼리고자 했으니까.
박상윤. 그의 삶은. 곳곳에서 나를 부끄럽게 했다. 염치가 없어 얼굴을 내보이지… 못할 부끄러움.
나. 박상윤처럼. 1987년 이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해 삼월이 오기 전, 대학 안내(오리엔테이션) 행사에서 선배 넷이 들쳐 멨던 새카만 관. 새까맣다 못해 새카맣던 그 관과 함께 내 머리가 깨지기 시작했고, 오뉴월쯤 내 손엔 깨뜨린 보도블록 조각이 들렸다.
“1987년 대학가에는 시위에 동참하지 않으면 역사의 반대편에 서는 것이라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형성됐다. 어쩌면 학생 중 상당수는 깊은 의식이나 고민 없이 분위기에 휩쓸려 시위 현장에 나왔을 수도 있다(50쪽).”
나. 분위기에 휩쓸려 나다니지 않았으되 성심껏 몸을 움직이진 않았다. 고민했으되 가슴 바닥에 닿지 못해 이것저것 두려운 게 많았다.
“1988년 여름에도 대학가는 시위로 뜨거웠다. 사실 올림픽 때문에 더 시위가 잦고 격렬해졌다. 학생들에게 88올림픽은 남북 분단을 영구화하는 음모로 받아들여졌다(51쪽).”
나. 불붙인 화염병을 든 손이 벌벌거린 나머지 그걸 그냥 바닥에 내려놓고 말았다. 여전히 두려웠으니까. 화염병 대신 든 보도블록 조각마저 전투경찰 방패에 닿지 못할 정도로 맥없을 때가 잦았다. 그때 유행한 소영웅주의에 걸맞을 만큼만, 딱 그만큼만 몸을 움직였던 거다.
박상윤과 이 책을 내게 건넨 이는 달랐다. 박상윤은 이 책을 내게 건넨 이에게 “평생 노동운동을 하고 싶으니 자신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고, 둘은 “의형제를 맺었으며 평생 함께 운동하자고 서로 약속했다(60쪽).”
박상윤과 이 책을 내게 건넨 이가 군에서 제대한 1991년. 둘은 약속대로 노동 현장을 향했다. 그해 8월 제대한 나는… 학교 도서관에 틀어박히기 시작했다. 박상윤은 한국빠이롯트에서 “잔업을 하는 날이 하지 않는 날보다 더 많았기 때문에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꼬박 일했고, 신학기가 시작되면 더욱 바빠져서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과로에 시달려야 했다(78쪽).” 내게 이 책을 건넨 이는 인쇄소에서 “일이 많을 때에는 월요일에 출근해서 토요일 저녁에 퇴근했다. 밤 12시까지 일하고, 새벽 6시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일하는 날이 계속됐다. 12시에 일이 끝나고 건물 옥상에 올라가 기숙사에서 눈을 붙였다(93쪽).” 나는… 학교 도서관에 틀어박힌 덕에 신문 기자(記者)가 됐고, 별것 아님에도 기자랍시고 제 어께에 힘주고 싸돌아다녔다.
나. 이기적이었던 것 같아 부끄럽다. 두 노동 운동가에게 빚을 진 것 같아 볼 낯이 없다. “1985년경부터 위장 취업해 노동자를 의식화하고 노동조합을 조직했던 학생 운동가들이 점차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무려 2만 명에 가까운 것으로 추산(65쪽)”됐을 만큼 많았던 그들에게 죄송하다.
그리고 김진억. 1991년 제대한 박상윤과 이 책을 내게 건넨 이가 서울 성수동에서 만난 이. 그들은 그곳에서 ‘모듬살이 운동’을 했다. “지역 노동자들이 서로의 삶을 나누고 도울 길은 작은 힘을 모아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지역 내에서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101쪽).”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공통체>(사월의책)처럼! 그들의 땀, 그들의 운동은 뜻깊었다. 컸다. 멀리 내다봤다.
“삶의 변화의 핵심은 더불어 사는 것이다. 그것은 내 지역에서 지역의 이웃들과 먹고 자고 마시고 하는 것을 나누고 공동체적 삶을 사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런 것에 대한 실천들을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는 겁니다(194쪽).”
공동체적 삶의 실천을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는 김진억 희망연대노조 연대사업국장을 나는 2014년 4월 25일 아침에 처음 봤다. 그는 충남 공주 학봉리에서 열린 전국언론노동조합 지·본부 집행 간부 숙박 교육의 마지막 강사였다. 자신의 새로운 노동조합운동, 희망연대노조가 품은 미래를 내보였다. 이남신 비정규직센터 소장이 진보 정치의 총체적 난국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있는 개별 현안 투쟁 속에서만 희망을” 보고 “무엇보다 지금 희망연대노조 투쟁에서 하나의 싹이 트고 있는 거고 비정규직 투쟁이 희망의 싹(189쪽)”이라고 보았듯 김진억은 “박상윤과 함께 ‘맑고 아름다운 노동운동’을 하자고 결의(157쪽)”했던 대로 땀 흘린다.
고맙다. 박상윤과 김진억의 결의. 땀. 내게 이 책을 건넨 이의 염려. 덕분에 내가 지금 살아 있다. “가장 열악한 환경에 있는 노동자들부터 먼저 살펴야겠다(96쪽)”고 마음 다졌던 박상윤. 꾸벅.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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