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통일.
어제. 17시 29분.<전자신문>앞에서 당산역으로 가는 마을버스 안. 같이 사는 벗이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이 친구가 오후 다섯 시 반 언저리에 아빠에게 전화를? 버스 안이었지만 무슨 일 있나 싶어 전화를 받았죠.
“아빠, ○○ 후엔 어떻게 해야 해?”
“응? 뭐라고?”
벗 말 가락이 무슨 일이 일어났거나 큰일 따위는 아닌 듯해 일단 안심. 말 가락 더듬다 보니 제가 ‘○○’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어요.
“아빠가 지금 버스 안이어서 통화하기가 좀 어렵겠다. 이따 전화할게.”
“아니, 아니, 아주 간단한 거야. 도덕 숙제 땜에 물어볼 게 있어.”
손으로 입 감싼 뒤 속삭이듯 제가 “그래? 뭔데?”
“통일된 뒤엔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애들하고 토론해야 하는데 어떻게 시작할지 잘 모르겠어.”
“통일?!!”
‘○○’은 ‘통일’이었습니다. 하! 뇌리에 ‘아이고 이 녀석아, 그게 어찌 간단한 거냐’가 떠올랐으되 입 밖으로 내진 않았습니다. 기꺼웠거든요. 제 입가에 미소도 흘렀고요.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남한과 북한이 갈려 산 게 오십 년쯤, 오륙십 년 정도밖에 안 됐어. 남한, 북한 사람들 한데 모여 ‘앞으로 어떻게 할까’를 토론해 결정해 가며 함께 살면 되지 않겠냐.”
“오십 년. 오십 년이나 갈렸었는데?”
“오십 년, 근데 생각보다 길지 않다. 함께 산 시간이 더 많아. 당장 남북으로 갈리기 전 ‘조선’만 해도 600년간 함께 살았잖아. 그 전에 ‘고려’도 있었고.”
“아~!”
이 녀석, ‘그렇다’거나 ‘그렇구나’라거나 ‘고맙다’도 없이 그냥 ‘아!’만 던지고는 전화를 툭. 쩝쩝. 서운. (^^;)
그러더니… 친구들과 함께 토론한 결과를 손팻말로 만들어 동네 슈퍼마켓과 지하철역 등을 돌며 여러 시민께 내보였답니다. ‘우리는 예전으로 가야 한다.’ 그게 숙제의 마무리였다는. 하하, 아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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