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호]호가호위(狐假虎威)

요즈음 러시아 유전개발사업 의혹으로 곤욕을 치르는 고위 공무원이 많다. 그 중 한 사람이 “국장 전결사항이라 나는 무관하다”는 애초 주장을 뒤집으면서 위아래 관련 인사들이 굴비 엮듯 조사를 받았다.
전결(專決)이란 무엇인가. 최고 관리자가 모든 건을 일일이 확인할 수 없으니 사안의 중요도에 따라 해당 직급의 중간 관리자들에게 결정권한을 위임하는 것. 최고 관리자가 결재한 것과 같은 효력을 발휘한다.
지난 16일 과학기술부 연구조정총괄담당관(과장)의 전결 공문이 전자신문 편집국으로 배달됐다. 공문은 전결 양식에 따라 ‘과학기술부장관 직인’이 뚜렷하게 찍혀있었다. 그 내용인즉, 전자신문 5월 12일자 1면에 게재된 ‘나노반도체장비 자기부상열차 등 국가R&D 역량 결집’ 제하 기사에서 ‘3∼5년 내 실용화 타당성이 높은 8개 대형 국가연구개발실용화사업 과제를 우선 추진키로 확정’했다는 문구에 대한 정정보도 요청이었다. 과기부의 주장은 “현재 관련 추진대상과제나 세부계획이 확정되지 않았다. 추가 보완작업과 관계 부처 협의를 거쳐 향후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에서 추진 과제를 최종 확정할 계획이기에 정정보도를 요청한다”는 것.
이에 전자신문 편집진은 ‘국민의 알 권리’를 기준으로 과기부 정정보도 요청의 타당성을 심사숙고하는 중이다. 검토결과에 따라 언론중재위원회의 판단에 맡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해당 기사를 쓴 기자로서 몇 가지 의문이 생겨났다. 우선 12개 정부 부·처가 수조원을 투입하는 ‘대형 국가연구개발 실용화사업’에 얽힌 문제를 ‘과장 전결사항’으로 풀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것. 과장과 과학기술부장관의 판단이 서로 같은 것인지에 대한 지극히 원초적인 의문이다. 또 하나, 해당 정정보도 요청공문이 과기부 대변조직인 정책홍보관리관실이 아닌 연구조정총괄담당관실로부터 배달된 점이 이상하다. ‘과기부 대변 창구가 여러 개’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어 다른 짐승을 놀라게 할 때(호가호위·狐假虎威)가 있다. 기자도 ‘과학기술부장관 직인’에 깜짝 놀랐다. 이번 전결 공문이 호가호위가 아니길 바라는 만큼 성실하게 대응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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