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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사표

eunyongyi 2020. 10. 9. 11:11

영주 지음. 사이행성 펴냄. 2018년 2월 12일 초판 1쇄. 2018년 4월 10일 초판 3쇄.

 

시댁 방문이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해야만 한다’는 의무였기에 괴로웠다.······중략······나와 달리 남편은 주말에서 자유로웠다. 일요일마다 다니는 운동이나 회원들과의 모임으로 시댁에 안 가는 날이 잦았다(31쪽).

 

시댁에 함께 살 때 남편에게 집안일은 다른 행성의 일이었다. 집안일은 며느리인 나와 시어머님이 하고 자잘한 일들이 있으면 시누가 도와주었다. 그러니 남편은 설거지를 해본 적도, 청소기 한 번 돌려본 적도 없었다(45, 46쪽).

 

남편은 “내가 내 집에서 편하게 담배도 못 피우냐”라고 말했다. 집에서 담배 피우는 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고, 그것이 자신의 권리인 양 당당했다(92쪽).

 

‘집 안’에서는 여전히 주말에도 가족들 밥을 챙겨야 한다는 속박에 묶여 있었다. 나도 주말 하루는 집안일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지내고 싶었다. 무엇보다 단 하루라도 ‘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95, 96쪽).

 

남편은 말 그대로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자랐다. 시댁에서 부엌일은 온전히 ‘여자들의 몫’이었다. 남자들이 마시는 물 한 잔도 여자들이 떠다 주었다. 거실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있으면 어머님이나 여동생이 알아서 간식을 챙겨 코앞에 놔주는 환경에서 자랐다.

남편은 어릴 때 삼촌, 고모 들과 한집에서 살며 부엌엔 얼씬도 하지 못했다. 어쩌다 부엌 근처에라도 가게 되면 고모들은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 떨어진다”라고 말했다고 한다(98쪽).

 

가사 도우미의 노동은 일로서 인정받는데, 왜 같은 일을 하는 주부의 가사노동은 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101쪽).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이 내게서 멀어질수록 더욱 남편이 원하는 여자가 되려고 했다. 분노했지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금기를 건드리지 못했다(108쪽).

 

점차 내 감정을 표현하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남편은 사소한 일에서도 완강했다. 예컨대 설거지! 남편이 기꺼이 설거지를 받아들이기까지 5년 넘게 걸렸다(119쪽).

 

조선 시대 500년 동안 삼종지도라 해서 여자가 어릴 때는 아버지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들을 따라야 했다. 조선 시대가 아닌 지금도 보이지 않게 여자들에게 작용하고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163쪽).

 

결혼해서 제일 큰 스트레스가 시간 맞춰 밥해야 하는 신데렐라 타임이었다. 시부모님 밥상은 아침 8시, 점심 12시, 저녁 6시였다. 분가해서도 저녁 5시만 되면 저녁밥을 해야 한다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중략······매일 반복되는 밥하기는 정말이지 제일 먼저 그만두고 싶은 일이었다. 정성과 시간을 쏟아서 하는 것도 아니었고, 못 견디게 힘든 일도 아니었다. ‘해야만 한다’는 것 때문에 그만두고 싶었다. 밥이라는 무게를 내려놓고 싶었다(233, 2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