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노 지즈코, 미나시타 기류 지음. 조승미 옮김. 동녘 펴냄. 2017년 1월 16일 초판 1쇄. 2017년 2월 20일 초판 2쇄.
우에노 사회학자 야마다 마사히로가 1990년대에 대학을 졸업하고도 부모에게 얹혀살면서 기초적인 생활을 의존하는 비혼자를 ‘기생충 싱글’이라 부르고 명쾌한 해석을 제시했죠. “젊은 남녀가 왜 결혼하지 않는가. 그건 남녀 모두 결혼하면 손해 보기 때문”이라고요.
그런데 여자와 남자가 손해 보는 내용이 달라요. 결혼하면 여자는 시간을 잃고, 남자는 돈을 잃는다는 거죠. 정말 명쾌한 결론이에요. 여자가 시간을 잃는다고 느끼는 건 가사와 육아는 전부 여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결혼관 때문이고, 남자가 돈을 잃는다고 느끼는 건 남자가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결혼관 때문이라는 얘기죠. 야마다 마사히로는 남자가 밖에서 돈을 벌고 여자가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는 ‘남성 생계 부양자형 모델’과 같은 보수적인 결혼관을 유지하는 남녀일수록 비혼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어요(34쪽).
미나시타 사회가 기혼 여성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가사와 가정에 완벽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돌봄 노동을 아내에게 완전히 맡기는 모델이죠. 저는 이것을 ‘고도 경제성장기 시대 아내 모델’이라고 부르는데, 일하는 남자와 가사를 완벽히 책임지는 여자의 조합을 유지하려면 여성은 전업주부를 지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에서 아내를 평생 전업주부로 있게 해 줄 정도로 벌 수 있는 남성은 극히 적죠(36쪽).
미나시타 옛날부터 여성이 집에서 가사나 육아만 해 온 것처럼 말하는 이들이 많은데, 이것도 직장과 주거가 분리된 형태로 일하는 방식이 생기고 나서 발생한 일입니다. 전통 사회, 그러니까 1차 산업 종사자가 많던 시절에 여성은 가사나 육아만 하지 않았어요. 근대 일본에서 메이지유신이 일어났을 때조차도 90퍼센트에 이르는 사람이 농민이나 어민이었습니다(47쪽).
미나시타 일가족 노동단이라니, 딱 맞는 말씀이네요. 친족 공동체가 하나 된 노동 집단이었습니다. 그런 형태에서 변해온 것인데도 마치 옛날부터 현재와 같은 가족이 쭉 있었던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인간은 한 세대만 지나도 제인 제이콥스가 말한 것과 같은 ‘집단적 기억상실’에 빠집니다(49쪽).
우에노 맞아요. 가족사회학자 오치아이 에이코가 ‘재생산 평등주의’라고 했는데, 노골적으로 말하면 남자에게 여자를 평등하게 분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근세에 농가의 차남이나 삼남은 독립을 못하고 부모나 장남 집에서 살았죠. 자기 가족을 꾸릴 수가 없었어요. 이들은 장남이 없어졌을 때를 대비한 예비용이었죠(51쪽).
(옮긴이 각주) 근대 가족론. 민주적이고 보편적 이상으로 제시된 근대의 ‘가족’이 상식적인 가족이라고 믿는 가족관에서 벗어나려 한 유럽 가족사회학자들의 연구를 말한다. 근대 가족이 실제로 산업화에 따라 진전된 성별 분업 체제(남자는 바깥일이라는 공적 영역, 여자는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에서 보호와 교육의 대상이 될 아이를 중심으로 부모와 자식 간, 부부간에 정서적인 유대를 요구하는 사적 영역이란 점을 밝히며 사회학이나 경제학·법학 등의 연구에서 가족을 다시 정의하도록 패러다임을 바꿨다(53쪽).
우에노 가장 나쁜 성적 괴롭힘은 아저씨들이 음담패설을 하는 자리에 독신 여성 한 명을 두는 거죠. 그리고 아랫도리 화제가 통하는지 테스트해요. 받아들이고 함께 웃어 주면 “뭐야, 벌써 (섹스) 한 거야?” “벌써 (섹스를 경험)했으면 내가 손대도 괜찮은 여자구먼” 하죠. 받아들이지 않고 놀라면 “어? 모르네? 그 나이까지 아직 처녀인가 봐” 하면서 바보 취급하고요. 어떤 답을 골라도 웃음거리가 되죠. ‘숫처녀’ ‘처녀’란 말이 쓰이던 시절은 정말이지 잔혹한 시대였어요(73쪽).
(우에노 각주) 사목권력. 목자가 양 떼를 이끌듯이, 개인이 자발적으로 내면화해 복종하도록 하는 눈에 띄지 않는 권력을 가리킨다(99쪽).
우에노 저는 의식이 먼저 바뀌는 일은 거의 없을 거라 봐요. 의식은 현실의 변화에 따라오는 것일 뿐이니까요(109쪽).
미나시타 아이가 태어났을 때 새로운 부부 관계를 만들지 않으면 눈 깜짝할 새에 아이 중심의 생활을 하게 되고, 서로 아이 아빠와 엄마로 대하게 돼 둘의 관계가 얄팍해진다고 합니다(128쪽).
우에노 저는 부부가 서로, 특히 아내가 체념하는 것을 기본으로 결혼이 유지된다고 봅니다(132쪽).
우에노 남편이 육아를 돕는다거나 협력한다는 말은 있을 수 없어요. 당사자로서 의식이 전혀 없는 거죠(134쪽).
우에노 육아 수당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일했다면 생겼을 상실 이익을 보장하자는 생각에서 출발하는데, 아동 수당은 국가가 아동을 키우는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죠. 그러니까 부모가 사회에서 아이를 맡아 키운다는 개념이에요. 아동 수당이라면 국가가 관여할 수 있어요. 이 말은 아동 수당이 부적절하게 쓰이면 공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의미죠(164쪽).
미나시타 어쨌든 주부는 자기 시간을 마음대로 못 쓰고, 사는 동네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하는 걸 보면 역시 집에 매인 가축이라 할 수 있겠죠. 지역에 매이기도 하고요. 여성 자신에게도 이런 역할에서 벗어나는 데 저항하는 의식이 있습니다(173쪽).
우에노 남자에 대한 척도는 하나거든요. 남자는 남성 집단의 내부 서열이 모든 걸 결정합니다(199쪽).
우에노 엘리트 직업에 종사하는 커플이라도 아내가 남편한테 양보하죠. 변호사 커플, 의사 커플 전부 다 그래요.
미나시타 그렇습니다. 아내가 시간을 쪼개서 집안일을 처리한다든지.
우에노 반대 경우는 거의 없어요(201쪽).
우에노 불편한 진실은 보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고 부정하는 것이 남자다움의 증후군이죠(209쪽).
(옮긴이 각주) 낭만적 사랑 이데올로기. ‘연애결혼 이데올로기’라고도 한다. 성과 연애와 결혼을 일체화하는 근대사회의 규범으로, 연애를 기초로 한 결혼이 유일하고 정통적인 남녀 관계라고 간주한다(229쪽).
우에노 민족이나 사회를 재생산해야 하니까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혼인율이 떨어지더라도 출산율만 오르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사회를 재생산했으면 좋겠다는 사람은 비혼을 탓할 게 아니라 출산에 대해 이야기해야죠(261쪽).
우에노 한편으로 아이들은 세상에 태어났으니 행복하게 살았으면 해요. 어떤 아이나 살기 편한 사회로 만들어야죠.
그런데 지금 일본은 정반대입니다. 여자들이 일하기 바라는 동시에 아이를 낳아 주길 바라죠. 신자유주의에 맞는 여성 규격을 만들어 낼 뿐이에요(280쪽).
(미나시타 기류) 나는 일본이란 국가가 국민의 삶이 어떤지 그 내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희생만 요구한다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가 이토록 살기 힘든 사회가 됐는데, 이토록 아이를 키우기 힘든 사회가 됐는데, 껍데기만 남은 가족 규범에 집착한다. 개성과 다양성을 중시한다고 기치를 내걸었지만, 실상을 보면 극히 균질적인 생활만 허용한다. 그 뿌리에 있는 상상력의 빈곤이 두렵다(286, 287쪽).
(옮긴이) 여태까지 결혼이란 ‘이성애 정상성’이란 사회규범 하에서 여자가 남자 없이, 남자가 여자 없이 자립해서 살아갈 수 없게끔 하는 것으로 기능해 온 제도였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남자, 남편과 아이 등 가족의 돌봄을 맡는 여자, 이렇게 성 역할을 분담해 만들어진 결혼은 역사상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모두가 결혼하던 시대는 고도성장기의 한 특수한 예, 즉 남성 노동자에게 가족을 부양할 만큼의 임금이 주어졌고 여성이 노동 시장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던 시대에 일어난 특이한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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