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우치 마리코 지음. 황혜숙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2018년 9월 28일 초판 1쇄.
남자 친구는 혼자 생활했을 때보다 눈에 띄게 주변 정리를 귀찮아 한다. 원래 성격이 그랬던 건지 천하태평이다. 집안일 분담에 대해 대화를 나누려고 해도 건성으로만 대답한다.
내가 무언가 해 달라고 하면 입으로는 “네, 네”라고 하지만 한 귀로 듣고 흘릴 뿐, 뭔가를 제안하거나 정한 생활 규칙을 마지못해 따라올 뿐이다(쓰레기 처리만큼은 남자 친구의 역할이라고 정해 주니 별 불만 없이 하기는 한다. 마치 임무를 수행하는 것처럼(27쪽)).
남자들은 가전제품이나 도구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고 있다. 남자를 집안일에 동참시키고 싶다면 그들의 의무감을 자극해 보자(50쪽).
결혼한 지 이제 겨우 두 달이 됐지만 남편이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은 여전히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이미 다 알고서 한 결혼이지만 하루하루 가사 노동 능력을 높여 효율적으로 살아가려는 나에 비해 남편의 가사 노동에 대한 자세는 안타깝게도 미적지근하다(174쪽).
이제 남편(을 비롯한 모든 남자)에게 자발적으로 도와주길 바라는 것은 포기하는 편이 상책일 것 같다. 이대로 포기하는 거냐고? 아니다. 앞으로도 정기적인 투쟁으로 집안일 분담의 평등을 쟁취해 나갈 것이다. 그의 형편없는 집안일 능력에 화가 나지만 그렇다고 내가 전담하는 건 억울하다. 대신 그의 자발성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거기서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피곤하겠지만 나만 피곤할 수 없다. 피곤하게 그에게 시켜야 한다. 동거에서 결혼에 이르면서 내가 얻은 결론이다(188쪽).
집안일은 여럿이 분담해서 하면 금방 끝나고 힘도 들지 않지만, 매일 한 사람의 어깨를 짓누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끝도 없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다 보면 미간에는 주름, 입에서는 불평! 남편에 대한 애정조차 식어가고······. 좋을 게 하나도 없다. 그러니 남편, 제발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좀 더 책임 의식을 가져 줘. 건강하고 화목한 생활을 보내기 위해 우리 각자가 제대로 역할을 다해야 한단 말이야(209쪽).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틀에 박힌 말은 마치 여자의 사회적 성공을 응원하는 듯하지만, 여자에게 슈퍼우먼의 책임감을 지울 뿐이다. 이 불편한 진실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집안일은 여자의 역할이라며 떠맡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여남평등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사회가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느꼈지만, 가정 안에서 주어진 아내의 역할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물론 남자도).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활약하고 싶어도 녹록지 않은 현실이 분명 존재했다. 그런 것들이 내게 이토록 부담과 스트레스가 될 줄은 몰랐다(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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