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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yongyi 2021. 1. 26. 19:49

백남룡 지음. 아시아 펴냄. 2018년 4월 25일 초판 1쇄.

 

“순희 동무, 그럼 진정하고 돌아가서 기다리오. 그동안이라도 남편과 아들을 잘 돌보오. 리혼할 때는 리혼해도 도덕은 도덕이니까(19쪽).”

 

정진우는 리혼 판결을 내렸다. 가슴이 아팠다. 사회라는 유기체의 한 세포가 파괴된 데서 오는 무거운 자책감과 함께 자녀들에 대한 걱정은 더욱 떨어버릴 수 없는 것이다(25쪽).

 

 “그렇지만··· 내겐 음악에 못지않은 생활이 있지···”

 석춘은 스스로 확신한 듯 머리를 쳐들고 말을 이었다.

 “선반공 생활··· 여기에 나의 보람이 있고 저 물소리처럼 변하지 않는 선률이 있소. 동무도··· 그걸 믿어 주지?”

 “믿어요···”

 “순희··· 동문 나와 같이 그런 생활의 길을 가겠소?”

 “녜··· 가겠어요···(54쪽)”

 

“내가 앉아 뭉갠다고 어수룩하게 보지 마오. 남편이 선반고급기능공이란 걸 당신이 모르오?  기술자로 등록되였으면 만족하지 뭘··· 대학졸업증이 꼭 있어야만 되는 게 아니요. 공장에 나가 선반을 돌리고 주근주근 기계를 창안하고··· 사회를 위해 평범하게 사는 이 생활이 내겐 좋소(60쪽).”

 

“판사네 집은 법정이 아니요. 어서 앉소. 나를 섭섭하게 하지 말구(71쪽).”

 

 “순희 동무, 애를 놔두시오. 저녁을 먹인 다음 데려가도록 하오.”

 아들을 어머니보다도 법률이 더 옹호하고 보호할 권리가 있다는 것 같은 그 인간적인 예리한 말 앞에서 녀인은 몸을 흠칫 떨었다. 그제야 지친 듯 방바닥에 주저앉았다(72쪽).

 

 “은옥이, 꼭 연수덕에 남새를 재배하오. 내 도와주겠소. 남편으로, 동지로, 벗으로 말이요(111쪽).”

 

 하나 둘 불이 켜진다. 생활에 대한 기쁨, 희망, 탐구, 사랑··· 감정과 계획의 모든 것이 시작된다. 불빛들이 많아진다. 사업과 직무에 대한 자각이 흐른다···(122쪽)

 

 “사실 내 석춘이 처를 모르지 않수다. 순희가 시집와서 도 예술단에 뽑혀가지 전까지는 우리 작업반에 있었거든요. 곱게 생기구 활달하면서두 코집은 센 녀자(코가 높은 여자)였습니다. 노랠 잘 불렀지만 선반일은 마음 쌀아하지 않았지요. 어덴지 근실한 성품이 적었습니다. 난 그때 좀 느끼는 바가 있어서 충고해 주었는데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더군요. 나를 싫어하는 것 같구··· 그래 난 더 말하지 않았지우. 사내도 아닌 녀자인데 뭘 그렇게 일하길 바라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구, 선반공으로 공장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석춘이의 처여서 내쳐두었습니다(141쪽).”

 

“아낙네가 우월감에 꾹 찼으니 남편이 눈에 곯아보였지요. 랭기를 피우구 드살을 쓰니 석춘이가 가만있을 리 있습니까. 원래 고집 세구 속대(마음의 줏대) 바른 사람이니 처한테 쥐울 리 만무하지요. 더 모가 지구 매듭이 얽혔지요. 내 알기엔 주먹찜질도 여러 번 했다구 하드군요(142쪽).”

 

 리혼소송 사유의 실무적 조사에서 당사자들의 사상적 면모는 자못 중요한 것이였다. 애정도, 지성도, 리상도 그 사람의 사상에 기초를 둔다(155쪽).

 

 “석춘 동무··· 난 판사로서보다 나이 많은 벗으로서 충고하고 싶소(1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