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길 지음. 코난북스 펴냄. 2019년 9월 2일 초판 1쇄. 2019년 9월 27일 초판 2쇄.
“방송국 다니면 텔레비전 싫어져.” 그 말을 정확히 일주일 만에 체감했다. 우리 부서 사람들은 모두 텔레비전을 싫어하는 인간이었다. 드라마도 예능도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눈과 귀가 늘 지쳐 있었다(20쪽).
동생이 회사를 관두려 했다. 여자 사원들만 입는 짧은 치마 유니폼, 여자 사원들만 하는 간부들 방 청소, 쉴 새 없이 계속되는 외모 품평과 원치 않는 남자 선임들의 접근 같은, 남초 회사의 고질적인 문제들 때문이었다(41쪽).
‘대학에 가면 예뻐진다’는 마법 같은 말은 ‘대학에 가면 필사적으로 예뻐져야 한다’는 뜻이었다.······중략······학교에 입학하니 압박감은 경쟁심으로 변했다. 밖에 나갈 채비를 하는 데는 적어도 두 시간이 걸렸다. 새벽에 일어나 잘 때 입었던 압박 스타킹을 벗고, 샤워를 하며 붓기를 빼고, 바디로션을 꼼꼼히 바르고, 머리를 만지고,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향수까지 뿌린 후, 최종적으로 꾸미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위한 신경까지 쓰면 두 시간도 빠듯했다. 도서관에서만 대여섯 시간을 보내던 시험 기간에도 시험 끝나고 있을 약속을 위해 그렇게 꾸며댔다(46쪽).
꾸몄기 때문에 그만큼 나에게 얼마간 보상이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답답했다. 어렵게 방은 벗어났지만, 더 외로운 곳에 갇혀 있는 기분이 들었다(50쪽).
한 해의 마지막을 모든 방송사가 시상식으로 때우고 마는 것도 그만큼 한국이 연예인에 미친 나라라는 방증이다(79쪽).
그러나 ‘오래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라는 메시지에는 함정이 많다.······중략······꼭 그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누군가는 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140쪽).
두통이 오면 ‘대가리 빠개질 것 같다’고 말했고 대개는 ‘빠개질 때까지 뭐했노. 빨리 양호실 뛰 가라’는 반응이 왔다. 서로를 걱정하는 여중생 사이의 보드라운 대화 패턴이었다(158쪽).
‘형님’ ‘아우’ 하며 추접스런 농담을 더럽게 낄낄거리고, 누군가가 지적하면 그것에 대해 윽박지르듯 덮어 버리는 것을 본다. 그러면서 이 지옥을 시작한 사람이 누구일까, 그는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일까에 대해서도 생각한다(162쪽).
‘무서워서 뭔 말을 못하겠다’ 하면서도 결국 말을 해온 사람들은 정말 이제 닥쳐야 할 때가 왔다(167쪽).
그 밑도 끝도 없는 벌칙 쇼 덕분에 나는 학교와 직장에 다니며 참여한 모든 행사에서 유사 복불복 지옥에 시달려야 했고, 현재까지 까나리액젓 다섯 컵과 간장 콜라 세 컵을 마셔야 했다(172쪽).
<삼시세끼>, <신혼일기>, <윤식당>, <숲속의 작은 집>까지 모든 쇼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잔잔하고 은은한 감성이 전달하려는 바는 잘 알겠지만, 이 방송이 포장되고 유통되는 공정을 체험하고 나면 그가 제작하는 ‘느림의 산물들’이 CJ가 만든 레토르트 스파게티처럼 느껴진다(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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