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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진 자리

eunyongyi 2021. 4. 3. 23:15

김수열 지음. 걷는사람 펴냄. 2018년 3월 23일 1판 1쇄.

 

피로 얼룩진 우리들의 사월이

끝내 내릴 수 없는 깃발임을

그대는 진실로 아는가

-‘그대는 진실로 아는가’, 12쪽.

 

하늘이 노랗고 게거품 물면서라도 물질은 간다

-’조천 할망’, 20쪽.

 

사월의 바람은

 

4·3의

횃불과 죽창

그리고 미친 가슴을 싣고 같 바람은

어느 외진 땅 사람 없는 곳에서

회한의 얼굴들을 되씹고 있는지

 

낮게 어둑진 하늘

한꺼번에 닥쳐올 바람은

감히 아물지 못하는

사십 년의 상처를 어디로 싣고 갈는지

피어보지도 못하고 짓밟힌 꽃망울

어디로 싣고 가려는지

 

꽃 진 자리

 

동박새 울음도 들리지 않고

진초록 이파리 눈부실 무렵

아무런 미련 없이

당당하게 지는 꽃

 

그래도 살아

아,

선연하게 살아

퀭한 눈 부라리고

가만히 아우성치는

바람도 비껴 선 자리

동백꽃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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