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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은행나무 펴냄. 2015. 이모는 이렇게 대답했다.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 대답이나 설명보다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고(23쪽). 너는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고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조차 참고 살았다. 그 질문이 불러오는 온갖 감정을 참고 살았다(94쪽). 참기 싫다고. 참는 게, 싫어졌다고. 나한테 묻지 말라고. 내가 뭘 알겠느냐고. 난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고. 근데 여긴 열심히 사는 게 정답이 아닌 세상 아니냐고(95쪽).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실패는 예정되어 있는 것 같고,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이미 진 것 같았다(97쪽). 남녀가 만나는데 타이밍 말고 무슨 이유가 더 있느냐고 누나는 말했다(105쪽). 아무 인사도 없이 입대했다. ..

신문기자

모치즈키 이소코 지음. 임경택 옮김. 2020년 5월 27일 초판 1쇄. “왜 제대로 답변하시지 않는 겁니까? 이래서는 취재가 안 됩니다(62쪽)!” 거품경제 붕괴 후 취직 빙하기에 졸업한 우리들은 ‘잃어 버린 세대’라고 불린다. 아버지처럼 학생 시절 대동단결하여 권력과 대치했던 단카이 세대의 넘치는 에너지가 우리 세대를 거쳐 완전히 사라졌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래도 다행히 신입 기자 시절에는 쇼와 시대(1925 ~ 1989)의 활기찬 분위기를 물씬 풍겨 주던 선배 기자들이 많았다(65쪽). 어떤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기자로서의 긍지를 잃지 말라고 호되게 가르쳐 주는 뜨거운 선배가 있었다(93, 94쪽). 실체도 없는 두려움 때문에 눈앞에 있는 문제를 보고도 못 본 척할 수는 없다. 그것이 바로 상대가..

안녕, 재피

김성희, 선지현, 손가영, 이기범, 이대로, 이용우, 진재연, 함은선 지음. 한내 펴냄. 2023년 2월 4일 초판 1쇄. “재학이처럼 저도 계약서는 쓴 적이 없어요(23쪽).” (박용관) “프리랜서라는 자리가 그런 거 같습니다.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고, 관심 가졌다가는 더 어려워지기도 하고요(58쪽).” (윤소영) “방송업계는 여전히 프리랜서를 소모품처럼 생각해요. 인식은 나아지지 않은 거죠(78쪽).” 어느 날인가 밥 먹자고 연락했더니 돈을 벌어야 한다며, “나 만나면 사람들한테 괴롭힘 당하니 조심해”라는 답장이 왔다(80, 81쪽). 아버지는······중략······숨어 있는 이야기들은 알지 못하셨다. 왜 PD인 이재학이 중계차를 타고, 행정 업무를 하고, 프로그램 제작 입찰을 위해 프레젠테이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