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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노조 30년사 3. 2008 ~ 2017

eunyongyi 2022. 3. 1. 13:11

전국언론노동조합 펴냄. 2021년 11월 23일.
 
(2008년) 9월 2일 언론노조 KBS본부의 간판은 내려졌고, 대신 KBS노동조합 간판이 내걸렸다. 현판식에는 이병순 사장이 부사장들을 대동하고 기념 촬영을 했다(72쪽).
 
 언론노조가 계획한 ‘조중동 OUT’의 대장정은 9월 27일 부산에서 ‘진알시’ 주최로 열린 ‘언론굿’판에 결합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지만, 민주노총은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언론 교육과 홍보사업을 계속 이어갔다. 학습 시간을 따로 내어 공부할 정도로 언론의 중요성이 크다는 것을 노동자들도 인식하게 되었다(84쪽).
 
 또한 언론중재법의 적용 대상을 확대해 인터넷 포털이나 언론사 닷컴, IPTV를 통한 언론보도로 피해를 받을 경우 중재·조정 신청을 가능하게 하여 포탈 등에 게재된 기사의 삭제와 통제 수단의 근거를 마련했으며,······중략······정권의 손쉬운 관리와 통제를 위한 개정안들이 포함됐다(95, 96쪽).
 
(2009년) ‘양승동·김현석 파면, 성재호 해임, 이상협·이준화 정직 3월, 이도영·복진선 감봉 6월(109쪽).’
 
 이병순 사장 체제의 보복 인사와 제작 자율성 침해에 사원들의 분노가 폭발하자, 같은 날 특별인사위원회는 서둘러 재심을 열고 양승동·김현석은 파면에서 정직 4월로, 성재호는 해임에서 정직 1월, 이상협·이준화는 정직 3월에서 감봉 4월 등으로 각각 징계를 경감했다(110쪽).
 
성재호 전 KBS새노조 위원장이 지적한 대로 “태생부터 권력에 매우 취약한 전통과 DNA”는 이병순 체제에서 되살아났다(112쪽).
 
결국 이 싸움의 목적이 ‘공정방송 YTN’을 만들기 위한 일이니 ‘노사 간 공정방송 협의기구를 둔다’는 문구를 넣자는 노조의 제안이 받아들여짐으로써 최종 협상안이 추인되었다(125, 126쪽).
 
 현장의 보도 투쟁은 한 번의 파업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언론의 편집권 독립과 민주적이고 공정한 언론으로서의 실천 그리고 언론인들의 윤리적 취재와 보도 행위가 수반되어야 가능한 과제였다. 언론 노동자 각자의 각성과 분발과 더불어, 언론노조가 상설 기구로 두고 각 지·본부에 설치한 민주언론실천위원회와 언론사마다 노사 간 합의로 설치한 공정보도·공정방송위원회라는 협의체를 상시로 가동해 일상적인 감시 활동을 벌일 수 있어야 했다(156, 157쪽).
 
 2010년 2월 8일······중략······결국 김우룡 이사장과 여당 측 위원만 참여한 채 제작본부장에 윤혁 보도국 부국장을, 보도본부장에 황희만 울산 MBC 사장을, 편성본부장에 안광한 편성국장을 선임했다.······중략······87년 민주화 투쟁의 결과물로서 MBC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는 기구로 구성된 방문진이 사장의 인사권을 무시하고 임원 인선에 직접 개입한 경우는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192, 193쪽).
 
(2010년 7월) 최대 쟁점이었던 공정방송위원회 설치가 합의문에 들어간 것만으로도 명백한 승리였다.······중략······무엇보다 KBS새노조의 파업은 공정방송이 언론 노동자들의 핵심 근로조건이라는 법적 판례를 남김으로써 공영방송을 위한 파업이 완전한 합법 투쟁임을 입증했다(227쪽).
 
 언론노조는 이미 2009년 연말에 한 해의 투쟁을 정리하고 다음 해의 사업 과제를 도출하면서 민주언론실천위원회의 복원과 역할 강화를 제1의 과제로 선정한 바 있었다(229쪽).
 
 언론노조는 민실위 복원과 역할 강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YTN에서 해직된 조승호 기자를 민실위 위원장으로 선출하고 사업장별로 민실위를 재조직화하는 한편 정기 보고서를 발표했다(230쪽).
 
민실위 위원장에 새로 내정된 노종면 전 YTN지부 지부장(233쪽).
 
(2011년) 그(이강택)는 최상재 위원장이 전임 이준안 집행부가 떠난 자리에 보궐로 임기를 시작했을 때 민실위원장을 맡아 조직 추스르기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그러나 KBS본부가 언론노조를 탈퇴하면서 졸지에 불법 파견 전임자로 전락한 그는 회사에 돌아가서도 한동안 징계 때문에 현업에서 물러나 있었다(254쪽).
 
그(최시중)가 재임한 3년간 징계를 받은 언론인만 204여 명에 달했고 언론자유지수는 69위 수준으로 추락했다(261쪽).
 
(2011년 5월 17일 <이명박 정권의 시사보도 탄압과 대응 1차 토론회>) 권력은 언제든 방송을 장악하고 통제하려는 욕망을 가지기 때문에 권력의 방송 침탈에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도록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사장 선임 구조, 학계와 언론계의 연대를 통한 지속적인 비판과 보도투쟁, 사별 감시기구의 활성화 등의 필요성이 논의되었다. 토론자로 참석한 박중석 언론노조 민실위원장은 언론인들이 상실하고 있는 ‘저널리즘의 숙명’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중략······5월 초부터 언론노조 민실위원장을 맡은 KBS 탐사보도팀 출신 박중석 기자(271쪽).
 
(2012년) 종편 방송은 첫날부터 그 수준을 드러냈다. TV조선, MBN, JTBC, 채널A 등 4개 종편은 약속이나 한 듯 방송 첫날 여권의 유력 대선 후보인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과의 대담을 내보냈다. 30분에서 1시간 길이로 따로 편성한 이 인터뷰는 신변잡기적 내용이 대부분이었다(320쪽).
 
신문 부문에서는 2011년 가을부터 정수재단의 사회 환원과 민주적 사장 선임제를 요구하다 지부장 해고까지 겪은 부산일보지부가 천막 농성과 선전전을 이어가며 부산일보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여당의 유력 대선 후보 박근혜 의원의 아킬레스건을 조준하고 있었다(339, 340쪽).
 
2012년 1월 27일, 언론노조 민실위워 해직 언론인들이 함께 만드는 방송 뉴스로 처음 공개된 <뉴스타파>는 나흘 만에 유튜브 조회수 50만을 달성하고 팟캐스트 뉴스 부문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큰 관심을 모았다(344, 345쪽).
 
 뉴스타파는 2012년 1월 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 산하에 만들어진 독립언론이다(402쪽).
 
 (2013년) 6월 22일 순례 13일째. 물집이 터진 순례단의 발에 굳은살이 박였다. 강성남 위원장과 김유경 전자신문지부장, 정대균 전 MBC 수석본부장이 서울에서 내려와 함께 걷기로 했다(418쪽).
 
 편집권 독립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언론계에서 이룬 민주화에 해당된다. 발행인의 정치·경제적 이해 추구 행위가 건전한 여론 형성 기능을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편집국장 추천제 등 언론사 내부의 언론자유를 제도화하였다. 2000년엔 방송법, 2005년엔 신문법에 편성 (편집) 규약 조항을 포함시켰다. 그 핵심은 정치권력·자본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다(428, 429쪽).
 
가장 많은 주주를 모은 채널A는 231개 법인과 개인으로부터 자본금 4076억 원을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TV조선(당시 CSTV)은 127개 법인과 개인으로부터 자본금 3100억 원을, JTBC는 111개 법인과 개인으로부터 자본금 4220억 원을 조달하겠다고 했다(4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