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권 지음. 천년의상상 펴냄. 2019년 6월 28일 초판 1쇄.
외적 제약이 없다면 자본가가 잉여가치에 대한 충동을 제어하는 일은 없습니다. 언제나 ‘최대한'입니다(28쪽).
파업이라는 사건은 노동자의 인격적 지위를 복원시킵니다. 단지 노동력을 담은 생체에 지나지 않던 노동자를 자기 목소리를 가진 주체로 만드는 거죠. 다시 인간으로 돌려놓는 겁니다(33쪽).
16시간, 14시간, 12시간, 10시간, 8시간. 노동일의 역사적 표준화는 과학과 논리를 통해 도출해 낸 게 아닙니다. 그것은 “총자본가 즉 자본가계급과 총노동자 즉 노동자계급 사이의 투쟁"의 결과물이죠(39쪽).
마르크스는 19세기 중반 미국의 가장 자유로운 주였던 매사추세츠 주가 자신의 진보성을 뽐내며 내세운 노동일 규제에 대해 한마디 했는데요. 당시 매사추세츠 주는 12세 미만 아동에게는 하루 10시간, 주 60시간 이상의 노동을 시키지 말라고 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12세 미만의 아이들에게 하루 10시간, 주 60시간까지는 일을 시킬 수 있었던 것이지요. 마르크스에 따르면 이것은 17세기 말까지만 하더라도 영국에서 ‘혈기왕성한' 수공업자나 ‘몸집이 거구인' 대장장이의 표준노동일이었습니다(53쪽).
노동일의 길이는 정말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자본주의가 역사적으로 출연한 이래 그 중요성을 잃어본 적이 없습니다(60쪽).
앞서 말한 것처럼 올해(2019년)부터는 한국 기업들도 주당 52시간을 넘길 수 없습니다. 참고로 국제노동기구가 제시한 장시간 노동의 기준은 주당 48노동시간입니다.······중략······2011년 기아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던 18세 어린 노동자가 뇌출혈로 쓰러졌는데요. 그는 최대로 일할 때는 주 70시간 노동을 했습니다(72쪽).
2017년에는 한 생수업체에서 일하던 18세 어린 노동자가 제품을 적재하는 기계에 목이 끼여 죽었습니다. 그는 여름에도 섭씨 40도가 넘는 공장에서 12시간씩 일했다고 합니다. 근로기준법상 18세 이하 연소자는 1일 7시간, 주 40시간 넘게 일해선 안 됩니다.······중략······2013년 한 중소 전자부품 업체에서 30대 직원 두 명이 뇌출혈과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었는데요. 31세의 평사원은 주 80시간, 35세의 과장은 주 60시간을 일했다고 합니다. 법정근로시간은 주 40시간입니다(73쪽).
모든 노동은 ‘생명력의 소비'라는 점에서 살인적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중략······그러므로 어느 한계 이상으로 일을 시켜서는 안 되며, 노동 후에는 반드시 생명력을 복원할 자원과 시간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은 노동은 모두 ‘살인적 노동'입니다. 아니 그냥 ‘살인'이라고 불러도 무방합니다. 우리가 ‘산업재해'라고 부르는 것들 중에는 기업에 의한 ‘살인' 내지 ‘살상'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적절한 경우가 있습니다. 재해라고 하면 그냥 불행한 사고처럼 느껴집니다. 가해자가 모호해지죠(100쪽).
“자본은 사회가 강요하지 않는 한 노동자의 건강과 수명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123쪽).”
(15세기 말 ~ 16세기) 당시에는 거지가 되려고 해도 면허가 필요했습니다. 늙고 병들어 노동능력이 전혀 없다는 증명서가 있어야만 했지요. 그런게 없이 부랑하다 걸리면 엄청난 매를 맞은 뒤 ‘노동에 종사하겠다'라는 맹세를 하고서 풀려납니다. 부랑인 주제에 노동을 거절하면 그를 고발한 사람의 노예가 되어야 했습니다(137쪽).
생명체가 생애의 대부분을, 그것도 가장 생명력 넘치는 기간을 타인의 감독 아래 타인의 지시에 따라 타인의 부를 생산하기 위해 살아간다는 게 정상인가요(144쪽).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문제는 세력관계입니다. 1848년 5월 1일부터 ‘10시간 노동제'가 시행됐지만 정세가 변했습니다. 1848년은 혁명의 해였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혁명이 패배한 해였죠(150쪽).
1848년의 패배 이후 프랑스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한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마르크스는 19세기 프롤레타리아혁명을 18세기 부르주아혁명과 비교했는데요. 이 내용은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에도 상당 부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부르주아혁명들 즉 18세기 혁명들은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며 맹렬히 돌진"했습니다. 그래서 근대의 혁명사란 부르주아 승리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프롤레타리아혁명들 즉 19세기 혁명들"은 “진행 도중에 끊임없이 걸음을 멈추며, 완수된 것처럼 보이는 것으로 되돌아와 다시 새로이 시작"합니다.······중략······그런데 마르크스는 이것이 프롤레타리아혁명의 위대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패배함으로써 배우고 주춤주춤 물러서면서 도약을 위한 도움닫기의 거리를 확보해 간다는 거죠.······중략······그러다 보면 언젠가 “어떤 반전도 있을 수 없는 상황", 다시는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 만들어집니다(152쪽).
미래는 현재의 요구 속에서 고개를 내미는 법이죠. 1866년, <자본>이 출간되기 1년 전 ‘국제노동자협회(제1 인터내셔널)’는 제네바 대회에서 ‘8시간 노동제'를 결의했습니다(157쪽).
엥겔스는 “외톨이가 된 프롤레타리아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라고 했는데요. 개별 노동자는 자본가 앞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저항할 수가 없지요(168쪽).
마르크스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단결은 14세기부터 단결금지법이 폐지된 1825년까지 중범죄로 취급되었"습니다(169쪽).
영국 노동자들은 아일랜드 식민화가 제공하는 물질적 혜택 때문에 아일랜드인들의 독립투쟁을 외면했습니다. 적어도 아일랜드 문제와 관련해서는 지주나 자본가 계급과 암묵적으로 결탁했던 거죠(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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