銀容사說

방통위원이 자기 자리에 앉을 때

eunyongyi 2017. 10. 12. 23:16

12일 09시 33분. 표철수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실 김정수 비서관 혀가 입 밖으로 두 치 반쯤 나왔다 들어갔다. 일이 바싹 닥쳐 마음 조마조마했다가 큰 탈 없이 풀렸을 때 내쉬는 한숨 비슷한 거. 마음 놓는 작은 웃음과 함께.

09시 32분 끄트머리. 정부과천청사 2동 4층 방통위 심판정. 4기 방통위원 다섯 가운데 표철수 위원 자리만 비었다. 1분쯤 앞서 이효성 위원장이 자리에 앉은 뒤 시곗바늘이 09시 32분을 지나자마자 김석진 상임위원이 심판정으로 들어왔기에 2017년 제36차 회의 준비가 끝난 것으로 보였다. 허욱 부위원장은 09시 29분, 고삼석 위원이 09시 31분 앞머리에 이미 자기 자리에 앉았기 때문. 김정수 비서관을 당황하게 만든 그림이다.

네 상임위원이 한동안 두런두런하며 표철수 위원을 기다렸다. 09시 32분 앞머리와 끄트머리 사이 — 그다지 길지 않은 — 수십 초 흐른 뒤 표 위원 입장. 멋쩍었는지 심판정에 들어오며 “넥타이 매느라고 늦었어요. 아이…”라며 미안한 마음 담아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표 위원이 자리에 앉자 네 위원이 넥타이를 두고 잠깐 웃어 준 뒤 09시 34분 앞머리에 회의 시작. 별일 없었다.

2008년 1기 방통위 때엔 많이 달랐다. 다섯 비서관이 복도를 살피며 상임위원 간 심판정 입장 차례를 맞춰 고른 것. 4기 방통위에 대어 본다면 ‘고삼석‒표철수‒김석진‒허욱‒이효성’으로 맞췄다. 차례에 따라 1기 방통위원장이던 최시중 씨가 반드시 맨 나중에 심판정에 들어오게 조율한 것. (2기 방통위는 현장에서 지켜보지 못했다. <전자신문>에서 갑작스런 내근 발령으로 내 삶이 힘겨워지기 시작했고, 기어이는 붓마저 빼앗겼기 때문.)

3기 방통위원장인 최성준 씨도 꼭 마지막에 들어왔다. 네 상임위원이 모두 자리에 앉아 기다리는 모습이 짜이면 방통위 사무처 의안정책팀장이 최 위원장을 모시러 가 ‘맨 나중 입장’을 이뤄 냈다. 그나마 제3, 제2, 제1 상임위원, 부위원장 사이 차례는 사라졌다.

음. 최성준 위원장이야 판사 때부터 맨 나중 입장이 몸에 익어 버려 자리에 앉는 차례 같은 걸 쉬 놓을 수 없었을 듯도 했다. 한번은 김재홍 3기 방통위 부위원장과 내가 마주 선 채로 시작한 회의 전 인사 차림이 눈치 없이(?) 길어지자 사무처 직원이 다가와 조심스레 ‘이제 위원장이 들어와야 할 시간’임을 알렸다. 두 사람이 계속 서 있으니 최 위원장이 들어올 수 없었던 거.

4기 방통위는 쓸데없는 — 인사치레나 매한가지인 — 자리 앉기 차례가 많이 느른해진 성싶다. 이효성 위원장이 불쑥 들어와 앉고 예사로이 부위원장이나 상임위원을 기다리고는 하기 때문. 그리해도 아무 탈이나 말썽 없었다. 진작 그리해도 좋았던 거. 이제 그리하니 손뼉 짝짝.


▴정부과천청사 2동 5층 방통위 엘리베이터 앞 ‘열린 근무 혁신 10대 제안’ 알림 막. 12일엔 2번 ‘의전 간소화’가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