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너벨 그랩 (2014년) 지음. 황금진 옮김. 동양북스 펴냄. 2016년 12월 8일 1판 1쇄.
열다섯 살 미만 자녀를 둔 오스트레일리아 두 부모 가족 중에서 아버지가 직장에 다니고 어머니가 시간제 근무를 하거나 전업주부인 경우가 60퍼센트였다. 그럼, 어머니가 직장에 다니고 아버지가 전업주부 남편이거나 시간제 근무를 하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3퍼센트였다(34, 35쪽).
아내가 있다는 것은 경제적 특혜이다. 또한 여성보다는 남성들이 훨씬 많이 누리고 있다(37쪽).
지난 50년 동안 양성평등 혁명이 일어났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장 혁명적인 부분은 주로 ‘유급 여성 노동자의 증가’로 기업의 계산 장부 한쪽에서만 일어났다. 대부분의 경우 여성은 가정에서 여전히 무급 노동을 하고 있으며 남성들은 여성의 역할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 특히 일하는 엄마에게 부담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마치 직업이 없는 사람처럼 아이를 기르면서 아이가 없는 사람처럼 일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것이다. 만약 그 두 곳에서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양쪽 모두에서 실패한 것처럼 느낀다. 그리고 이는 일하는 엄마라면 누구나 호소하는 끊임없는 긴장과 불안의 이유이기도 하다(40쪽).
일하는 엄마들이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은 “피곤하지 않으세요?” 혹은 “그럼 애들은 누가 봐요?”이다. 하지만 일하는 엄마들의 남편에게는 아무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52쪽).
한번은 가까운 친구가 첫아이를 낳은 후 시간제 근무를 따내기 위해 회사 대표와 협의하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적이 있다. 법적으로 사측에서는 시간제 근무를 당연히 허용해야 했지만, 그 회사는 친구의 업무를 나눠서 맡아 줄 인력을 구하지 못했다. 회사는 친구가 그동안 일하면서 얼마나 많은 이익을 안겨 줬는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일제 근무를 하든지 아니면 아예 일을 그만두라고 최후통첩을 했다. 괴로워하던 친구는 결국 그 회사를 떠났다. 친구는 애정을 가졌던 일자리를 잃었고 회사는 능력 있는 직원을 잃었다(120쪽).
남자들은 여전히 일터에서 지나치게 많은 역할을 부여받고 가정에서는 지나치게 적은 역할을 하고 있다(150쪽).
여자에게 결혼은 남자와 정반대를 의미했다. 남자나 여자나 똑같이 가정과 아이가 있지만 여성은 직장에서 믿음직한 인재로 인정받지 못했다(170쪽).
전통적인 생계부양자와 전업주부 모델을 옹호하는 이들은 유급 노동과 무급 노동을 각각 한 사람이 전담하는 게 경제적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교환 협상’이라는 시스템(196쪽).
존 버밍엄. “꽤 많은 남자들이 축구를 할 수 있게 아이들을 공원에 데려가는 것을 집안일로 정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자들은 그 일을 아내가 2시간 동안 빨래를 하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할 겁니다(209쪽).”
조금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면 집안일의 세계는 경계가 분명하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집안일은 복작복작 들끓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당연하게 퍼져 있는 관습과 먼 과거로부터 축적된 불만, 일관성이 없어서 도저히 이해하기가 힘든 교환 시스템 등으로 이뤄져 있다(201, 211쪽).
여자들이 집안일에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가 하나 있다. 집안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대부분 여자 잘못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아이가 보살핌을 제대로 못 받거나 집이 더러우면, 부주의하다면서 여성을 맹비난한다. 여성과 남성이 청결에 대해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남녀의 득실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212쪽).
1993년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를 도입해 남성들이 휴가를 낼 수밖에 없게 만든 나라가 바로 노르웨이다(257쪽).
수많은 외부 사건이 여성의 노동 방식이나 여성에게 기대하는 노동의 종류에 영향을 미쳤다.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여성은 간호 분야와 낮은 차원의 정치 운동을 접하게 됐다. 대공황을 계기로 온 집안을 먹여 살릴 방법과 과일 궤짝으로 기본적인 가구를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임시방편으로 만든 가구는 80년 후에 시내 골동품 가게에서 어마어마한 가격에 팔리게 됐다(275쪽). 2차 세계대전 때에는 공장에서 일을 했고 바지도 입을 수 있게 됐다. 불황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 페미니즘의 부상으로 여성의 모험심은 그 모양이 바뀌고 다듬어졌다. 그러나 여성이 가정에서 하는 노동의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은 여전히 거북한 분야로 남아 있다(276쪽).
정치인 엄마들은 아이들 얘기를 늘 입에 올려야 한다. 남자들처럼 자녀가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중략······애들은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을 계속 받아야 한다. 제아무리 열정적으로 깔끔하게 일을 해내도 마찬가지다. 여자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가능한지를 보여 주는 의미심장한 지표를 찾느라 혈안이 된 자들의 깐깐한 시선을 받아야만 한다(334쪽).
“애는 어디 있어요?”······중략······우리는 암묵적으로 아이들은 엄마의 보살핌을 받을 거라고 가정한다. 그래서 엄마가 아이들과 함께 있지 않는 시각적 증거를 만나면 어린아이처럼 어리둥절해하며 즉각적으로 질문을 해댄다(353쪽).
오스트레일리아의 강력한 남성 생계부양자 문화가 지닌 힘은 거세고 사납기까지 하다. 여성이 한 가정의 주요한 생계부양자 노릇을 하거나 아버지가 집에서 아이들을 보는 게 불가능하지도, 불법이지도 않다. 또한 아무 쓸모가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사회에 퍼져 있는 정형화된 형태의 중력이 너무 센 것뿐이다(367쪽).
일하는 엄마는 ‘워킹맘’이다. 일하는 아빠는 그냥 보통 남자일 뿐이다(369, 370쪽).
사람은 여러 가지 생각을 통해 규정되고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고정불변일 필요는 없다(387쪽).
옮긴이. 그런데 잘 알다시피 집안일이라는 것은 마치 끝없는 형벌과도 같았다(412쪽). 집안일을 ‘돕고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집안일을 그냥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날이 오기를(415쪽).
'나책좋아요 ILike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의를 부탁해 (0) | 2019.08.17 |
---|---|
분노의 숫자 (0) | 2019.08.11 |
한국의 명가 근대편 2 (0) | 2019.08.11 |
세상을 깊게 보는 눈 (0) | 2019.08.11 |
거리에 선 페미니즘 (0) | 2019.0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