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이기자 — 해고 르포르타주

(7-2) 회색분자 날뛰고

eunyongyi 2016. 5. 10. 20:54

망둥이 뛰면 꼴뚜기도 뛴다더니. 음. 마이너 신문사 논설실장이던 C 또한 내 부당 해고 사태가 일어나자 옳다구나 싶었는지 붓 들고 망나니 춤을 췄다. 지옥 마지막 자리는 회색분자 차지라더니. 음. C는 가장 나쁜 자. 글을 쓰되 앞뒤 재고 망설이며 끝내 회색분자로 남은 채 제 안위만 돌봤기에. 내게 나빴고 그 마이너 신문과 한국 사회에 좋지 않았다.

나는 C에게 “비판할 줄 모르는 선배”라고 말한 적 있다. 곰곰 돌이키니 비판할 줄 모르는 게 아니라 비판하지 ‘않을’ 자였던 성싶다.

기분 나빴겠지. 후배에게 가장 부끄럽고 아픈 곳을 찔렸을 테니. 하여 보잘것없는 노예 G처럼 C도 마이너 신문사 쪽에 선 채 지방노동위원회에 나를 해고할 만하다는 데 힘을 보탤 ‘사실 확인서’를 냈을 터. C가 그동안 쓴 글 가운데 아마도 제 뜻을 가장 잘 드러낸 듯했다. 나는 그 글에서 가장 천하고 졸렬히 달음질하는 ×를 봤다.


▴C가 지방노동위원회에 낸 사실 확인서


C는 내가 “논설위원실에 오기 전 항명, 태도불량 등으로 사실상 편집국에서 방출”됐다고 주장했다. 항명? 명령이나 제지에 따르지 않고 반항했다? 내가? 대체 언제? 거짓말도 웬만해야지. 언제 뭘 어찌 항명했는지부터 밝혔어야 내가 ‘아, 그런 적 있었던가’ 하고 되짚어나 보지 않겠나. 밑도 끝도 없이 그리 마구 내밀면 곤란하지.

“내(C) 밑에 있으면서 그릇된 점을 고쳐 편집국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내(C) 미션으로 생각한다”고 C가 내게 말했단다. 음. 그릇된 점이라니. 갸우뚱. 정작 잘못된 건 내가 아니라 C — 비판할 줄 모르는 자 — 였지. 일간 신문 논설실장이 권력과 자본 눈치나 보며 붓을 기울이면 안 되니까. 기자라면 C처럼 납작 엎드려 기면 안 될 터. 하여 좀 늦었지만 C에게 대답하련다. “네(C) 밑에 있으면서 내 스스로 깨우친 건 너처럼 붓을 놀려선 곤란하다는 깨달음이었다.”

C는 나를 두고 “(논설위원실) 근무 기간 내내 대화를 통한 교화를 시도했으나 결국 포기”했단다. 음. 게울 것 같다. 대화를 통한 교화는 무슨.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 C는 나와 사설이나 칼럼 방향과 주제를 두고 논쟁하다가 끝내 대화를 피한 채 논설위원실 밖으로 달아나듯 나가고는 했다. C는 오래전부터 취재에 게으른 것으로 널리 알려졌고, 잔머리와 글 잔재주로 버틴 자였다. 취재 현장에서 무슨 일이 어찌 일어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해 논쟁에서 밀렸고, 제 스스로 부끄러웠던 나머지 입을 닫은 채 자리를 피하기 일쑤였던 거. 상황이 그랬는데 지방노동위원회에 낸 사실 확인서에선 되레 나 때문에 말문이 막힌 것처럼 거짓말했다.

하여 나는, 내가 “지적 허영심, 개인 명망 최우선 경향이 강하며, 독자 관심사나 신문 편집방향도 곧잘 무시”했다는 C의 말을 ‘열등감 고백’으로 읽었다.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으며, 비비 꼬는 냉소주의가 지나쳐 기자로서 치명적인 문제점을 확인”했다는 것도 마찬가지. C가 스스로를 부끄러워한다고 느꼈다.

C가 말한 “(내) 성향이 글에 그대로 나타나 여러 차례 지적을 했으며, ○○○ 씨(나)는 승복하고서도 고치지 않았”다는 건 거짓말. 어쩜 그리 제멋대로 말할 수 있을까. 거짓말하기 전에 가슴에 손부터 올리라. C가 말한 ‘독자 관심사나 신문 편집방향’은 진실을 외면한 채 기업과 권력의 밑을 빨고는 했던 자신의 버릇을 덮는 말장난. 비판하지 않는 회색분자의 거짓부렁에 지나지 않았다.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은’ 채 논설위원실 문을 차고 나간 것도 C였고. ‘냉소주의’니 ‘승복’이니 모두 거짓말이다.

“○○○ 씨(나)가 정한 사설 주제가 너무 엉뚱하거나 편집 방향과 배치되며, 쓴 사설 방향이 주제에 맞지 않는 경우도 많아 2 ~ 3시간 논쟁을 벌이는 일이 일주일에 한두 차례 꼴로 발생”했단다. 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했을까. 내가 논설위원으로 일한 1년여 동안 사설이나 칼럼 주제와 방향을 두고 논쟁한 건 몇 손가락에 꼽을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C는 사설이나 칼럼을 두고 벌인 논쟁과 논설위원실 일상의 입씨름을 두루 섞은 듯하다. C는, “선배, 실내(논설위원실)에서 흡연하시는 것 때문에 제가 많이 힘듭니다. 죄송하지만 사무실 밖에서 피우시면 안 될까요”라는 나의 조심스럽고도 정중한 요청을 여러 차례 무시했다. 나는 기어이 “선배, 정말 너무하시네요. 지난번에 ‘미안하다. 밖에서 피울게’라고 말씀하셨잖아요”라고까지 말해야 했다. 음. C가 지방노동위원회에 이런 얘기를 할 순 없었겠지. 창피할 테니까.

일상의 입씨름 하나 더. C는 노동조합과 마이너 신문사 사이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을 두고 선후배 간 지배와 피지배 관계를 열쇠로 내밀기 일쑤였다. 참된 기사 쓰려는 여러 후배를 찍어 누르기에 편한 열쇠. 제 불편한 것을 풀어내거나 껄끄러운 일을 피하기에 좋은 열쇠. 나는 C와 마이너 신문 사장에게 ‘약한 후배를 품을 줄 아는 선배’가 되어 주기를 바랐고, 그리 거듭 말했다. ‘기자가 올바르게 직필할 수 있는 환경’을 거듭 부탁하기도 했고. 내가 논설위원이던 때 품은 일말의 기대였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C가 지방노동위원회에 낸 사실 확인서


C는 “과학기술대연합 출범식을 주제로 사설을 쓴다고 해 국가 과학기술 정책의 중요성을 사설로 다루라고 했는데 ○○○ 씨(나)는 뜬금없이 과학기술계 이기주의를 주제로 쓰겠다는 식”으로 내가 사설을 망친 사례를 들었다. 헛소리. 어쩜 그리 제 편할 대로만 기억하나.

말 나온 김에 조금 더 풀어 보자. C가 든 ‘과학기술대연합 출범 관련 사설’은 내가 사설을 망친 게 아니라 제 스스로 논설실장(C)의 권리와 권위를 내던져 버린 사례였다. 특히 “(사설을) 믿고 맡길 수 없어 ○○○ 씨(나)가 쓸 주제 사전 확인과 쓴 기사 확인 등 늘 자리를 지켜야 했다”거나 “논설위원 담당 칼럼 출고 횟수를 축소 조정 조치했다”는 사례로 내민 “2011년 11월 초 지방 문상을 갔을 때 당시 편집국장으로부터 ○○○ 씨(나)가 올린 사설이 문제가 많다는 전화가 왔음. 결국 다른 사람이 급히 쓴 사설로 대체 조치했다”는 게 서로 다른 사건이 아니라 모두 ‘과학기술대연합 출범 관련 사설’에 얽힌 얘기다. C의 기억이 엉망이거나 내밀만 한 사례가 많지 않아 일부러 쪼갠 것으로 보인다.

그날 C는 내게 사설 두 꼭지 — 마이너 신문에 날마다 실린 사설 수 — 를 모두 맡기고 제 볼 일(지방에 문상) 보러 일찍 논설위원실을 나갔다. 그리 믿고 맡긴 일이 가끔 있었다. 내가 16년간 기자로 살며 이런저런 글을 제법 썼고, 논설위원으로서 그야말로 ‘사설(社說)’을 쓸 줄 알았기 때문. C도 그리 인정했기에 내게 모두 맡기고 나간 날이 여러 차례 있었던 것.

C가 그날 사설 두 꼭지 가운데 ‘과학기술대연합 출범 관련 사설’이 문제라고 내민 건 그때 편집국장이던 H의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H가 초판 신문이 인쇄된 뒤 C에게 전화해 ‘한 문장을 두고 과학기술계에서 불평했다기에 편집국의 부장이 쓴 글로 대체했다’는 것. 이튿날 C가 내게 그리 해명했다. 애초 사설을 쓴 내겐 한마디 말도 없이.

신문사에서 일어난 이런 행태는 폭력. 글이 곧 사람이기에 나를 짓밟은 것이요 C는 논설실장으로서 H에게 냉큼 엎드린 꼴. 신문사에서 논설실장과 편집국장은 서로 가깝고도 멀다. 서로 간섭하거나 간섭받지 않으며 참된 기사와 사설과 칼럼이 신문에 제대로 오를 수 있게 견제하는 관계. 논설실장이 편집국장의 전화 한 통화에 다른 논설위원이 쓴 사설을 통째로 들어낸 건 — 그 사설을 쓴 논설위원(나)에게 사실 여부나 의견을 묻지도 않은 채 다른 글로 바꾼 건 — C가 그야말로 옷을 홀딱 벗었다는 뜻. 더구나 그때 편집국장이던 H가 논설실장인 C의 마이너 신문사 후배였던 바에야 더 말해 무엇하리. C는 그랬다. 시민(독자) 알 권리를 위해 진실을 알리려 애쓰거나 올바로 쓴 사설을 지키지 않았다. 그저 월급이나 지키며 부동산 자산을 늘리려 눈에 피 올린 자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테고.

C가 지방노동위원회에 낸 이른바 ‘사실 확인서’는 ‘요약’ 부문에서 그 꼴이 참 볼만했다. “○○○ 씨(나)와 같이 근무한 결과 기자직(데스크•논설위원 포함) 수행이 도저히 불가하다는 판단을 내림”이라 썼다. 내가 마이너 신문에서 기자와 논설위원으로 일한 게 17년인데 논설위원실에서 1년쯤만 함께 일해 본 자가 어찌 “기자직 수행이 도저히 불가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가. 꼭 그리해야 했다면 ‘논설위원’만을 두고 판단했어야 옳지. 내가 11개월 조금 넘게 논설위원실에서 사설과 칼럼을 쓰면서 C와 주제나 방향을 놓고 다툰 게 서너 번에 지나지 않았다는 건 어찌 설명할 건지 몰라.

어쨌든 그런 “이유로 본인(C)은 2012년 3월 편집국장으로 취임하면서 ○○○ 씨(나)를 편집국에 복귀시키지 않음”이라 했는데 이건 오지랖. 나의 “사업국(출판팀) 근무는 기자직만 해 온 (내) 경력을 감안한 배려임”이라는 얘기도 오지랖. 인사권을 제대로 쓰지 못했던 자가 중얼거릴 만한 일이 아닌 듯하다.

이제 C의 뒤끝. “편집국장 재직 시절인 2012년 7월 편집국 대상 KPI 설명회 자리에 ○○○ 씨(나)는 출판팀 직원으로 자격이 없음에도 참석해 국장 비난 발언을 거듭했으며, 이 행위를 편집국장 공개편지(2012년 7월 15일)로 지적했으나 지금까지 해명 또는 사과한 사실이 없음”이라 했는데 웬 헛소리. 웬 해명? 웬 사과? 그날 설명회는 한국기자협회 마이너 신문 지회장이 마련했고, 회원이었던 나도 그의 알림(이메일)을 받아 참석한 것이었는데 왜 내게 자격이 없었겠니. C가 내게 참석 자격이 있느니 없느니 말할 게 아니었다는 얘기. ‘국장 비난 발언’은 또 웬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람. 노동자 사이 경쟁을 지나치게 부추긴 나머지 되레 기업을 망가뜨리는 것으로 나타나 퇴물이 되어 가는 데다 결코 어울리지 않을 기자 사회에 핵심성과지표(KPI) 체계를 들이겠다는 건 크게 잘못된 생각인 성싶다는 의견을 열린 공간(설명회)에서 몇 차례 말했을 뿐인데 비난이라니? 음. 남이 마땅히 할 만한 말(의견)을 비난으로 들으니 논쟁하다 말고 논설위원실 문을 박차고 나갔겠지. 그리 들으니 정중하고 조심스런 요청에도 불구하고 계속 앉은 자리에서 담배를 피웠겠지. 그러니 “비판할 줄 모르는 선배”라는 소릴 들었겠지.

내 점잖이 말하는데 “이제 그만 날뛰었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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