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 신문사 교육출판팀장 B가 지핀 ‘근태 보고 지시 불이행’은 총무국장 F의 ‘경위서 제출 명령 거부 및 불이행’에 옮겨붙었다. F가 이른바 ‘근태 보고 지시 불이행’ 법석이 일어난 2013년 칠월 어느 날로부터 9개월이 지난 2014년 사월 17일 불똥을 직접 옮겼다. B가 지시했다는 근태 보고를 거부한 까닭을 대라며 F가 내게 공문(公文)으로 닦달했다.
나는. “거부한 적 없다”고 입술 닳도록 대답했다. B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내게 난데없는 시말서와 경위서 제출을 요구하고 촉구했다. 공문으로. B는 기어이 내가 ‘자신의 경위서 제출 명(命)’을 여러 차례 받아들이지 않고 물리쳤다는 걸 2014년 팔월 24일 부당히 해고하고 2015년 일월 14일 징계(정직 1개월)한 까닭으로 들이밀었다. B가 불 지핀 게 F의 명령을 거부한 것으로 띄워지더니 두 가지 모두 나를 부당 해고하고 징계한 까닭으로 마지막까지 기세등등했다.
나는 B와 나눈 2013년 칠월 어느 날의 전화 통화에서 일어난 다툼을 두고 왜 총무국장인 F가 경위서를 달라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B와 내가 다툼을 벌인 게 문제가 됐다면 B의 직속상관인 정보사업국장 A가 경위서를 요구하는 게 마땅했기 때문. 특히 F의 2014년 사월 17일 자 첫 공문을 받은 날 — 사월 18일 — A가 정보사업국 주간 회의를 열어 ‘B와 내가 벌인 근태 보고 다툼’에 대해 정리를 한 터라 경위서 문제도 이미 풀린 것으로 봤다.
이쯤에서 되짚을 거 몇 가지. 경위서, 일이 벌어진 경위를 적은 서류. 2014년 사월 17일 마이너 신문사의 총무국장 F가 내게 처음 요구한 건 경위서가 아니었다. 시말서였다. 시말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사건의 경위를 자세히 적은 문서. 시말서와 경위서 간 차이가 대개는 크게 벌어지지 않기에 그게 그것으로 여겨지기도 하겠으나 그 마이너 신문사에서 쓰이기로는 조금 달랐다. 마이너 신문사 ‘시말서’는 노사 간 단체협상과 취업규칙에 미리 정해 둔 징계 가운데 하나(견책)였다. ‘경위서’는 징계로 보지 않았고. 말(구두)로 간단히 요구하고 일정한 형식 없이 내는 게 흔했다. 특히 그 무렵엔 2014년 임금 협상을 앞둔 터라 노동조합 간부(부지부장)였던 나를 향한 ‘시말서’ 요구가 예민한 자극일 수밖에 없었다. 어디 그뿐이었으랴. F는 마이너 신문사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시말서 제출을 요구하는 ‘총무국장 명의 공문’을 보내 왔다.
나는 ‘내가 마이너 신문사 몇몇의 표적이 됐음’을 곧바로 느껴 알았다. 단체 교섭을 앞둔 시점에 교섭 위원을 공격하는 그 몇몇의 저의를 제대로 가늠할 수는 없었다. 4개월여 뒤(2014년 팔월 24일) 마이너 신문의 몇몇이 겨눈 표적에 ‘해고’가 아로새겨져 있었음을 알게 됐지만 당시로는 예측이 어려웠다.
나는. A가 주재한 정보사업국 회의에서 ‘근태 보고 지시 불이행’ 관련 다툼이 정리됐으니 F의 공문에 응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여겼다. F는. 그러나 그해 사월 23일 ‘시말서 제출 최고(催告)’를 내게 보냈다. 공문으로. “시말서 제출을 거부할 경우 징계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알려드리니 착오 없기 바란다”고 겁박했다.
노동조합은 F가 내게 요구한 시말서는 징계의 일종인데 관련 절차를 모두 무시한 것이니 “철회하라”고 대응했다. 공문으로. “총무국장이 조합원에 대한 징계를 명시한 공문을 시행하면서 노사 간 공문의 형식을 무시하고 대표이사의 직인 대신 총무국장이 서명하고 해당 조합원 개인에게 직접 통보했다”며 “이런 방식으로 조합원을 개별적으로 압박하는 징계 통보가 이루어지지 않게 재발 방지 약속”을 함께 촉구했다.
F는 그날(사월 23일) 곧바로 세 번째 공문을 내게 보냈다. ‘시말서’를 ‘경위서’로 바꾼 공문. F는 겁박을 늦추면 안 된다고 여겼는지 그해 사월 28일과 오월 9일과 유월 9일에도 같은 내용을 담은 공문으로 나를 을렀다.
유월 9일 공문이 마지막인 듯했다. 특히 그달 30일 F와 내가 참석한 마이너 신문사 노사협의회에 ‘총무국장의 경위서 제출 공문 남발 문제’가 안건으로 오른 터라 ‘경위 설명’이 충분히 이루어졌다. F는 물론 마이너 신문 사장과 얼굴을 맞댄 채였기에. 그리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리 마무리된 것으로 알았다.
F는, 웬걸, 칠월 28일 다시 같은 공문을 내게 보냈다. 두 달여 만이었다. 2014년 팔월 24일 자행한 부당 해고를 한 달쯤 앞둔 때였다. F를 비롯한 마이너 신문의 몇몇은 ‘경위서 제출 명령 거부 및 불이행’ 횟수를 하나라도 더 늘리는 게 절실했던 모양. 나를 부당히 해고할 핑계가 하나라도 더 있어야 했을 테니까.
F가 경위서에 집착한 까닭은 뭘까. 내 실수 때문이었다. 2013년 칠월 3일. 그러니까 내가 B의 ‘구글 캘린더’에 오후 외근 일정을 제대로 올리지 않았다던 그 칠월 어느 날의 이튿날. 내가 교육출판팀장인 B에게 “회사에서 영업 직원의 일일 영업활동에 대해서 일일이 체크하고 간섭하는 건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억지 주장을 했다는 것. 이게 B의 근태 보고 지시를 내가 배척한 것이고, 그 이유로 제시한 ‘근로기준법 제58조(근로시간 계산의 특례)’도 납득할 수 없으니 다른 근거를 달라는 F의 명령을 거부한 것에 대한 ‘시말서’를 내라고 압박했던 거. 옳다구나 하고. 숨넘어갈 듯. F가 나를 그리 몰아칠 수 있었던 건… 그래, 맞다. 내가 근로기준법 제58조를 잘못 이해했다. 근로시간 계산 특례는 적합한 근거가 아니었다. 내가 제대로 알지 못한 까닭으로 생긴 일. 나는, 다만, B가 내 외근 활동을 시간마다 일일이 체크하고 간섭하려는 게 문제라고 지적하고 싶었을 뿐이다. B가 점심 뒤 회사로 복귀하는 시간이 오후 1시 20분을 넘으면 휴대폰 문자메시지나 메신저 따위로 왜 늦는지 알리라거나 외근할 때 동선을 일일이 보고하라기에 이견을 냈다. “특정 장소로 이동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는 등 지나치게 상세한 외근 일정 보고를 요구하는 건 노동자의 인격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B에게 말했다. 그게 더하거나 뺄 것 없는 본질.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이견. 근로기준법 제58조를 언급한 건 내가 관련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빚어진 일이었으되 그걸 근거로 삼아 “업무 보고나 근태 보고 지시를 아예 거부하겠다는 뜻을 내보인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B와 F의 주장처럼 내가 근로기준법 제58조를 앞세워 근태 보고를 배척했다면 2013년 칠월 2일과 3일 이후로 ‘구글 캘린더’에 외근 일정을 올리거나 업무 일일 보고(이메일)를 계속했을 까닭이 없었을 거다. 그랬음에도 F가 근로기준법 제58조에 옳다구나 집착한 건 달이 아니라 달을 가리킨 손가락을 두고 시비한 꼴. 특히 2014년 칠월 28일 마지막 공문을 내기 한 달쯤 전인 유월 30일 노사협의회에서 ‘본질에 대한 경위 설명’이 충분히 이루어졌음에도 ‘옳다구나!’ 하며 다시 경위서 제출을 요구한 것에 나를 ‘기어이 내치고야 말겠다’는 마이너 신문사 몇몇의 뜻이 고스란했다. F와 마이너 신문사의 강다짐에 나는 그저 어처구니없을 따름이었다.
F는 비겁(卑怯). 하는 짓과 성품이 천하고 졸렬했으되 겁이 많아 보였다. 제 몸 온전히 지킬 생각에 후배를 상명하복 틀에 가두고 짓누른 채 사장에겐 무엇 하나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마이너 신문사 밖으로 뛰어다닌 적도 없고. 그저 ××였다. F 같은 자의 달음질 끝엔 물어박질러지는 여러 노동자가 있게 마련. F 같은 자의 달음질엔 부당노동행위가 깃들게 마련. 눈 크게 뜨고 귀 열어 잡아낼 일. 달음질 못하게 부러뜨리고, 물어박지르지 못하게 뽑아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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