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이기자 — 해고 르포르타주

(9) 손팻말

eunyongyi 2016. 5. 29. 22:00

해고. 종이봉투 밖으로 배어난 ‘해고통지서’가 입 밖으로 헛웃음을 퉁겨 냈다. 설마에 탈 난 성싶은 그 느낌. 잊히지 않았다. 종이봉투에 덮인 ‘해고’가, 독 품은 살 되어 선연히 가슴에 꽂혔다.

마이너 신문사가 나를 겨냥한 살 — 해고 — 시위를 놓기 전에 내민 징계 까닭이 워낙 보잘것없던 터라 설마가 무색할 지경. 2013년 칠월 어느 날 발화한 근태 보고 한두 건에 독을 묻혀 활시위를 놓다니. 제정신이 아니지 싶었다.

2014년 팔월 22일. 금요일. 퇴근을 앞둔 오후 다섯 시 사십오 분쯤. 마이너 신문사가 내게 ‘너, 해고’라 했다. 이틀 뒤인 팔월 24일 일요일에 맞춰 ‘너, 해고’라 했다. 주말에 맞춘 해고 알림은 마이너 신문의 작은 배려였을까. 충격 어루만지라는. 거듭 헛웃음.

팔월 25일. 월요일. 아침 아홉 시 반쯤. 마이너 신문사는 내게 빨리 나가 달라 했다. “사무실 출입을 자제해” 달라고. “짐 정리할 시간은 드리겠다”더니 친절하게도 “노동조합 사무실엔 계속 출입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마이너 신문사에서 19년 5개월여 만에 억지로 내몰렸다.

대체 뭘까 싶었다. 나를 내몬 진짜 까닭. 2013년 칠월 어느 날 발화한 근태 보고 시비 따위 말고. 근태 보고 시비가 부른 경위서 제출 명령 말다툼 따위 말고.

2014년 시월쯤 내가 전국언론노동조합의 그 마이너 신문 지부장 선거에 나설 거라는 소문 때문이었을까. 단체 교섭에서 마이너 신문사의 치부를 이것저것 건드린 내가 귀찮았을까. 그냥 싫었을까.

누굴 때렸나. 내가? 아니다. 횡령? 아니다. 배임? 아니다. 대체 뭐였을까.

나는. 2014년 팔월 그리 인격 살인을 당했다. 추석 연휴를 앞둔 구월 5일. 다시 금요일. 오후 네 시쯤. 마이너 신문사가 나를 ‘징계로 즉시 해고’한 걸 두고 인사위원회를 열어 재심했지만 바뀐 게 없다며 오금을 박으려 들었다.

나는. 오금 박힐 수 없었다. 터무니없이 해고될 수 없었으니까. 손팻말을 돋우었다. “부당 해고”가 복받쳐 올랐다.

“그늘에서 하세요. 왜 거기(볕 든 곳) 서 있어요.”

구월 25일. 가을볕 참 따가웠다. 누가 볼 새라 내게 속삭인 한 아주머니. 그 마음 참 고마웠다. 덥긴 했으되 뙤약볕은 아니었다. 그의 마음을 가슴에 품었다.

“아이고, 저 냥반이 진짜…. 거 의자라도 가져다 놓고 해. 앉아서 해도 판(손팻말)에 쓴 거 잘 보이겠구먼. 그러다 병나! 사람들이 관심도 잘 안 보이는구먼, 그렇게 서 있어 그래, 답답허게”라고 호통친 아저씨 걱정도 품고.

“이거 하나 드세요. 갈증 나실 테니.”

구월 26일. 갈바람 드셌다. 바람이 손팻말을 뒤집거나 뺏으려 했다. 마실 거리 건넨 어느 아주머니. 파랑 깡통에 담긴 그의 마음 참 고마웠다. 꿀꺽꿀꺽 삼켰다.

“우산을 받치는 게 낫지 않겠어요?” “감기 들지 않게 조심하세요.” “식사는 하셨어요?”

구월 29일. 가을비 제법 세찼다. 빗속에 선 게 가엽고 불쌍해 보였을 듯싶다. 마이너 신문사 여러 동료 노동자의 따뜻한 눈길이 내게 닿았다.

“…….”

시월 8일. 정답고 포근한 눈길만 있는 건 아니었다. 팻말 든 손가락 사이를 감돈 바람이 조금 차갑나 싶더니 마이너 신문사 몇몇의 시선은 차갑기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마이너 신문사 총무국장 F는 실수인 듯 아닌 듯 어깨로 내 손팻말을 툭, 치고 지나가기도 했다.

“거기 만날 서 있네.”

십일월 7일. 새삼 깨달았다. 손팻말이 읽힌다는 거. 팻말 앞 지나는 여러 노동자의 시선을 잇따라 붙들었다. 새삼 깨달았다. 마이너 신문사의 몇몇에게도 읽힌다는 거. 팻말 문구를 두고 ‘명예 훼손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십일월 19일. 왼뺨에 비낀 늦여름 햇살과 갈바람에 내 얼굴은 반쪽이 도두보였다. 그날 저녁. 지방노동위원회가 내 손을 들어 올렸다. 마이너 신문사의 해고 행위가 “부당했다”고 인정해 준 것.

다툼이 끝난 건 아니었다. 부당 해고 책임자 잘못을 제대로 캐묻거나 꾸짖지 못했다. ‘미안하다’거나 ‘잘못을 용서해 달라’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마이너 신문사엔 야만이 기고만장했다. 선배답지 않은 자가 선배랍시고 후배를 윽박지르고 노동자를 짓밟았다. 내 말을, 노동자 말을 귀담아 듣는 자가 없었고. 사람다운 말이 오가지 않은 지 오래였다. 사람 사는 도리가 남아나지 않았다. 



 

“부당 해고. 부당(不當)한? 이치에 맞지 않은! 사람 사는 도리에 어긋난!”

제가 이치에 맞지 않게, 부당히 ○○신문에서 해고된 지 29일째입니다. 사람 사는 도리에 어긋났으니 마땅히 거두어들이는 게 옳을 것이나 사장을 비롯한 몇몇 부당 해고 책임자는 전혀 그럴 뜻이 없는 듯합니다. 하긴 스스로 “부당했다”고 인정하기 어렵겠죠. 본디부터 ‘이치로 보아 옳지 않다’는 걸 아는 자가 그리 했겠습니까마는 이런 몰상식한 행위는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을 겁니다. 결코 잊힐 수 없습니다.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꼭 기억해 둬야 두 번째, 세 번째 ‘부당 해고’를 막아낼 수 있습니다. 꼭 기억해 둬야 우리 노동자의 땀과 힘으로 ○○신문의 미래를 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 ‘부당 해고’ 사태를 맞아 ○○신문 내 몇몇의 도덕적 품성에 관해 곰곰 짚어 보았습니다. 선악의 견지에서 본 특정인의 인격과 행위 따위에 관해 생각해 본 겁니다. 치밀더군요. 분노가. 떨리더군요. 살이. 그 몇몇의 끝 모를 도덕적 게으름과 풀림에 생각이 닿으니 치마저 떨렸습니다. 치 떨리다 못해 지긋지긋해졌습니다. 그들의 거짓말. 음해. 위험한 꾀.

분노에 살과 치를 떨다 보니 난데없이 ‘과연 그 몇몇이 염치를 차릴 줄은 알까’ 하는 걱정이 솟더군요. 인간이 염치와 담을 쌓는 지경이라면 사람다운 대화가 어려워지게 마련일 텐데 저는 이번 ‘부당 해고’ 사태를 겪으며 그들과 이야기를 주고받기가 참으로 어려워 절망했습니다. 더할 수 없이 슬프고 끔찍했습니다. ○○신문의 앞날이 점점 암울하고 칙칙해질까 두려웠습니다.

곤란합니다. 이래선 안 됩니다. 저는 상식에 어긋난 그 몇몇이 왼 가슴에 손 얹고 자신의 언행을 겸허히 돌아볼 때가 됐다고 봅니다. 그래야 현장에서 땀 흘리는 ○○신문의 여러 노동자 앞에 옹송그린 채로라도 설 수 있을 겁니다. 그게 큰 힘 들여 일하지 않는, 땀 흘리지 않는 그 몇몇이 자신의 마지막 양심을 되살리는 길입니다.

부당 해고. 부당하다면, 이치에 맞지 않다면, 사람 사는 도리에 어긋난다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앞으로 남발하지 마십시오. 그게 올바른 도리요, 도덕입니다.

○○신문 인사위원회가 내건 해고 사유는 모두 빈약합니다. 보잘것없는 내용을 내밀어 ○○신문에서 19년 5개월여 동안 성실히 땀 흘린 나의 명예, 내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지 마세요. 보잘것없는 내용을 내밀어 성실히 땀 흘리는 ○○신문 노동자와 그의 가족의 안녕을 위협하지 마세요. 뭇칼질은 죄악입니다. 겸허히 돌아보세요. 칼질하던 당신의 말을. 행위를. 도덕성을.

아… 뜻밖의 부당 해고 사태에 맞닥뜨리다 보니 불쑥불쑥 솟는 게 정말 많더군요. 분노가 앞서고, 내 삶과 가족이 뒤를 잇더니 명예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은행 대출은 어쩌지?’ 하는 생각이 발등에 불로 떨어지나 싶더니 ‘의료보험은 또 어찌 될까? 지역의료보험으로 바뀌면 내 직장의료보험 피부양자이셨던 고향의 부모님도 해고 사태를 아시고 걱정하실 텐데’ 하는 염려까지. 그야말로 이리저리 불쑥거렸습니다. ‘해고는 살인’이라더니 그 시작이 어떠한지, 노동자와 그의 가족의 삶을 어찌 파괴할 수 있을지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따뜻이 위로하고 힘 더해 주신 여러 전국언론노동조합원 덕분에 꿋꿋하고 당당히 다시 섰습니다. 특히 ‘산업별 노동조합’이 왜 소중한지 제대로 알았습니다. 우리가 왜 노동조합 깃발 아래 모여야 할지 깊이 느끼게 됐죠.

그러고 보니 그 몇몇에게 고마운 게 있습니다. 서로의 어깨에 팔 얹어 끼고 나란히 설 우리 동료, 노동자! 저의 위안. 그 아름답고 소중한 한 사람 한 사람을 더욱 잘 알 기회를 공교롭게도 그자들이 열어 준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참, 고맙습니다그려.”

눈으로, 맞잡은 손으로 제 어깨 위 ‘부당 해고의 아픔’을 덜어 주신 ○○신문 노동자 한 분 한 분께 감사합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원 한 분 한 분의 마음에도 감동했습니다. 만행에 굴하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맞서겠습니다. 이 고통을 소중한 경험으로 바꿔 여러 노동자가 자본의 폭압에 당당히 맞설 때 손에 쥘 만한 무기가 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2014년 구월 22일. ○○신문에서 부당히 해고된 ○○○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