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 신문 사장에겐 내 임금을 제때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책임이 남았다. 노사협의회에 나와 ‘똥값(화장실을 유지하는 데 드는 돈)’ 걱정을 토로한 사장인지라 진즉 해고하고 싶었을 나와 내 품삯에도 속을 끓였을 터. 내게 제대로 내주지 않은 삯만큼 사장이 지금 소리 없이 웃겠지만 내 결코 그 잘못을 잊지 않을 생각이다. 책임은 잘못한 자가 그릇된 일을 스스로 맡아 안기 전엔 사라지지 않게 마련이니까.
2014년 이월 6일 정부세종청사 11동 중앙노동위원회. 마이너 신문 사장은 울며 겨자 먹은 얼굴로 중앙노동위원회의 2013년 치 임금 인상 조정안을 받아들였다. 기본급 2% 인상. 2013년 유월부터 시작한 임금 교섭을 7개월이나 끈 데다 ‘8% 이상 인상’을 바란 노동조합원의 뜻에 크게 거슬렀음에도 ‘2%’가 못내 아까운 듯했다.
아무튼 ‘기본급 2% 인상’에 노사가 뜻을 모았으니 사장은 마이너 신문 노동자에게 2013년 사월 1일부터 2014년 일월 31일까지 9개월 동안 올리지 못한 임금을 한꺼번에 지급했다. 노동조합이 이루어 낸 소중한 결실이었다. 사장은 그런데 내겐 기본급 2% 인상분 9개월 치를 지급하지 않았다. 노동조합원이었음에도. 나를 뺐다. 내가 연봉제 노동자이기 때문에 호봉에 바탕을 둔 노동조합원들과 다르다는 것.
나는 “내게도 기본금 인상분 9개월 치를 지급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노동조합원이니 다른 조합원과 똑같이 대하라는 요구. 노동조합과 나는 이런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지방고용노동청에 사장의 임금체불 행위를 바로잡아 달라고 진정할 생각이었다.
그해 삼월 12일. 낌새를 맡았을까. 마이너 신문 사장에게 네 발 모두 들어 올린 성싶던 정보사업국장 A가 사장을 대신해 내게 연봉 계약서를 내밀었다. 임금 동결 계약서에 서명하라는 것. 사장이 내게 처음 연봉 계약서를 내민 게 2011년 오뉴월이었으니 거의 3년 만에야 보는 종이였다. 마이너 신문 사장이 2011년부터 3년 동안 내 임금 인상분을 ‘똥값’ 가운데 하나로 삼아 깔아뭉갠 셈. 그러다 ‘똥값’ 계속 뭉갤 때 쓰일 종이쪽지(연봉 동결 계약서) 하나쯤 받아두는 게 좋을 듯싶었을 테고.
나는. 서명하지 않았다. “다른 노동조합원처럼 내게도 기본급 2%를 올려 지급해야 한다”고 A에게 말했다.
마이너 신문 사장과 A는 그때로부터 나를 어디로 어찌 몰아붙여야 할지를 알게 되지 않았을까. 노동조합과 나도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잘 알았다. 한 달쯤 뒤인 사월 8일 노동조합으로부터 마이너 신문 사장에게 ‘임금체불이요 단체협약 위반일 수 있다’는 뜻을 담은 공문이 건너갔다. 열흘 뒤(사월 18일) 마이너 신문 총무국장 F가 ‘시말서 요구 공문질’을 시작했고.
“이러려고 ‘연봉제하자’ 하셨습니까. 참으로 기함할 노릇입니다. 이건 ‘연봉제’가 아니라 ‘끽소리 말고 그냥 주는 대로 받아’ 아닌가요. 무르고 약한 ‘노동자 한 사람’ 홀로 앉혀 놓고 계약서 내밀며 ‘바쁜데 뭐 고민할 것 있냐. 빨리 사인(sign)해’ 하는 걸 두고 ‘아하! 이런 게 연봉제구나’ 하고 꿀꺽 삼키고 말아야 합니까. 아니죠. 네, 아닙니다. 이래선 곤란합니다. 안 됩니다. 2011년 오뉴월께 제 코앞에 연봉 계약서가 처음 놓였습니다. 저는, 무력한 저는, 대표이사의 위계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무언의 압력에 눌려 달리 선택할 게 없었죠. 사인하고 말았습니다. 3년여 만인가요. 2014년 삼월 12일 제 코앞에 다시 연봉 계약서가 놓였습니다. 사인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납득할 수 없으니까요. 저는 노예가 아닙니다. 땀 흘려 일한 대가를 마땅히 받아야 합니다. 일했기에 당당히 타당한 보수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 요구할 수 있는 기회조차 3년간이나 박탈당했습니다. 이런 걸 두고 ‘공생을 위한 연봉제’라 하나요. 이러려고 ‘연봉제하자’ 하셨습니까. 근로기준법을 준수하세요! 법 제4조(근로조건의 결정)에 따라 노동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노동 조건을 결정해야 합니다. 노동 조건에는 임금, 시간, 휴일, 유급휴가 따위를 명시해야 하죠. 2014년 삼월 12일 3년여 만에 제 코앞에 놓인 연봉 계약서는 ‘위법 덩어리’였습니다. 삼월 21일에야 임금 책정의 전제인 2013년 하반기 인사 고과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소식(이메일)이 내게 들렸는데, 9일 전인 삼월 12일에 사인을 하라니요. 아주 작은 절차조차 무시해도 좋을 만큼 회사의 인사 고과 체계가 합리적이고 공정했습니까. 이 질문에 당황…하셨어요? 연봉제 포기하고 ‘호봉제로 공생하자’ 하시면 앞으로 당황할 일 없을 겁니다.”
떠올랐다. 그 무렵 노동조합 소식지에 내려다 멈춘 내 글 — 마음 — 몇 조각. 그때. 19년째였던 마이너 신문 사랑하는 내 마음이 가장 높은 곳에 닿았음을 알았다. 지금은 아니고.
좀 더 꼼꼼히 말하자면 마이너 신문 사장은 노동조합과 함께 ‘기본급 2% 인상’에 뜻을 모았음에도 2013년 사월 1일로부터 내가 퇴직한 2015년 시월 1일까지 2년 6개월 치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기본급이 올랐다면 더불어 바뀌었어야 할 여러 수당과 보험료, 퇴직금까지 헤아리면 사장이 체불한 게 더 많아질 터.
마이너 신문 사장은 “(내가) 해고(된) 기간 동안 정상적으로 일했더라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 상당액을 지급하라”는 지방노동위원회 판정에도 ‘똥값’ 꼼수를 썼다. 나를 부당히 해고한 책임이 사장에게 고스란하기에 ‘해고가 없었다면 마땅히 받았을 월 활동비’를 내놓지 않았다. 2014년 구월부터 십이월까지 4개월 동안 매월 50만 원(현금 20만 원과 주유 상품권 30만 원어치)씩 모두 200만 원을 내게 지급했어야 했음에도 입을 씻었다.
마이너 신문 노사는 월 활동비 인상 여부를 종종 임금 협상 탁자에 올렸다. 오래전부터 급료로 여겼던 것. 실제로 단체 교섭에서 기본급 인상분 가운데 일부를 활동비 증액으로 대신한 사례가 있었다. 내가 논설위원실에서 매월 40만 원을 활동비로 받았던 까닭이요, 내근하는 기자에게 월 40만 원씩을 활동비로 지급한 이유이기도 했다.
마이너 신문 사장은 그러나 내가 해고된 4개월간 출근하지 않았으니 활동비를 주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내가 사장에게 4개월 동안 출근하지 않겠다고 말한 적 있던가. 아니, 사장이 나를 출근하지 못하게 해고했지. 이 책임 또한 사장에게 있다고 보는 게 옳다.
‘똥값’ 걱정에서 우려냈을 사장의 꼼수는 멈출 줄 몰랐다. 나를 송도에 유배하더니 활동비 가운데 현금을 20만 원에서 70만 원으로 늘렸기에 “불이익을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맞다. 늘렸으니까. 그리했다고 노동위원회에 자랑스레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 말엔 사람 참 기분 나쁘게 하는 잔꾀가 숨어 있었다. 내가 2014년 십이월 24일 마이너 신문 경기인천센터로 복직한 뒤 2015년 일월 2일에 지급했어야 할 그달 치 활동비를 내놓지 않았다. 내가 2015년 일월 26일부터 이월 25일까지 ‘정직 1개월’을 치른 뒤 다시 경기인천센터로 돌아갔을 때엔 삼월 2일에 지급했어야 할 그달 치 활동비를 5일에야 줬다. 그때 활동비 가운데 ‘현금 70만 원’을 3개월에 걸쳐 일정 비율로 나눠 지급하려다가 나중에 임금체불 따위로 다투게 될 듯하자 전액을 사흘 늦게 지급했던 것으로 보였다. 구저분했던 거. 2015년 오월 6일에도 그달 치 활동비 가운데 ‘현금 70만 원’을 지급하지 않으려 조몰락거렸다. 그날 오전 11시께 모든 임직원에게 월 활동비를 지급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겐 줄 건지 말 건지를 경기인천센터장의 의지에 따라 결정할 거라며 주지 않다가 오후 5시 32분에야 내줬다. 그 돈이 ‘똥값’처럼 아까웠던 거였겠지.
마이너 신문 사장은 언제든 상황과 필요에 따라 내게 월 활동비를 아예 지급하지 않거나 일정 비율로 깎을 생각인 듯했다. 꼼수와 잔꾀를 참 잘도 버무렸던 거. 그래, 내 인정하겠다. 그 수와 꾀가 효과가 얼마간 있었다고 나는 여긴다. 구질구질해 기분 참 나빴으니까.
한마디 더 하련다. 마이너 신문에서 땀 흘리는 다른 노동자에게 다시는 그런 짓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사장이 내게 체불한 임금을 두고 다툼을 벌이지 않을 생각이 나는 있다. “당신의 ‘똥값’ 걱정을 덜어 줄 뜻이 내게 있다”는 거. 알아듣겠는가. 다른 노동자에겐 그런 짓 하지 말라.
▴손팻말을 밉게 봤거나 꺼리어 피한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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