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밀그램 지음. 정태연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2009년. 원제 Obedience to Authority.
거북하고 괴롭다. 벌벌 떨 수도 있다.
“왜 그렇게 했냐고요? 그렇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때는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중략……그래서 나는 그런 일을 한 후에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 그 일이 잊히지가 않았어요(262쪽).”
그가 ‘그렇게 한 일’은 베트남 밀라이 마을 주민 370여 명을 마구 죽인 것이었다. 1968년 3월 16일 아침. 그가 속한 미국 보병 찰리 중대는 엠(M)-16 소총과 수류탄으로 밀라이 주민의 살을 찢었다. “남자, 여자, 어린이도 죽였”고 심지어 “아기도 죽였(260쪽)”다. 그가 말하길, 미군 총부리에 계곡으로 떠밀린 “그들(밀라이 주민)은 빌면서 ‘안돼요, 안돼’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들은 자기 아이들을 끌어안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계속 총을 맞고 있었습니다. 음, 우리는 계속 총을 쏘았습니다. 그들은 팔을 저으며 애원하고 있었습니다(263쪽).” 이 무슨 나락인가. 그는 일을 치르고 난 뒤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 무슨 생지옥인가.
두렵고 무섭다. 그처럼 ‘그렇게 하라는 명령을 받아’ 일본에서 핵폭탄 떨구는 스위치를 누르고, 이라크에서 민간인을 향해 기총소사를 한 이가 있었다. 때로는 장난처럼! 명령에 기대 ‘스스로 잘했다’고 위안을 받아 가면서다.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은 내게 전율로 각인됐다. 부들부들. 계곡에 떠밀려 아이를 끌어안고 허우적댔다. 가위. 꿈에서 겨우 놓여나 아이 콧숨을 들은 뒤에야 한숨 내쉬었다.
권위자의 명령 아래 극악한 행동을 한 개인이 가장 빈번히 쓰는 변명이 단지 자기 의무를 다했을 뿐이고, 그 사람은 핑계를 만든 게 아니라 권위자에 대한 복종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심리적 태도를 ‘솔직하게’ 이야기한 것(212쪽)이란다. 어찌 아니 무서운가. 세상 누구든 몹쓸 권위·명령에 기대 남자, 여자, 어린이, 심지어 아기에게 태연히 총을 쏠 수 있다는 얘기다. 어찌 아니 두려운가.
학습자의 손을 강제로 전기 충격판에 올려놓는, 학습자를 거의 인간으로 보지 않은 브루노 바터(가명·81쪽)를 보고 나는 기함했다. 비슷한 상황에 맞닥뜨린 내가 “왜 그랬냐고요? 그렇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어요. 난 지금도 그 일을 잘했다고 생각해요”라며 움츠리지나 않을까 두려워서다. 알면서도 그리할까 무서워서다.
밀그램은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이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더 사실일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됐다(31쪽)”고 했다. 특별히 공격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권위적 명령에 따른 의무감 때문에 타인에게 전기 충격을 가했다. 매우 평범한 사람이 지옥 같은 파괴를 얼마든지 대리할 수 있다는…… 공, 포.
쓸쓸하고 슬프다. 언제 어디서든 ‘사회적 구조 안에 매몰됐고, 그의 관점에서 적합한 일을 한(249쪽)’ 아돌프 아이히만 같은 전범(戰犯)이 불쑥 나타날 수 있을 것이기에. 아이히만 같은 이에게 악독하고 고약한 명령을 내릴 권위자가 상존하기에.
밀그램은 “(실험 결과가) 인간의 본성 또는 더 구체적으로 미국이라는 민주 사회의 특성이 악의적인 권위자의 지시에 따른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대우에서 시민을 보호할 수 없다는 가능성을 제기한다”고 풀었다. “합법적인 권위자가 명령한다고 지각하는 한 많은 사람은 행위의 내용이나 양심의 통제와 무관하게 그들이 들은 대로 한다(267쪽)”는 것이다.
해롤드 J 라스키가 이 절망스런 밀그램의 예측에 한 가닥 희망을 비추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의미 있고 중요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우리의 기본적인 경험에 반하는 어떤 것도 수용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한 것들은 전통이나 관습 또는 권위자로부터 오기 때문이다.……중략……모든 국가에서 자유의 조건은 늘 권력이 강요하는 규범을 광범위하고 일관되게 회의(懷疑)하는 것이다(268쪽).”
모든 것을 의심하자. 철학을 품고 살아갈 소중한 바탕이다.
덧붙여 하나. 그는 입버릇처럼 ‘창의’와 ‘역발상’을 말했으나 사실 머릿속이 ‘군대’ 같은 것으로 가득 찼다. 상명하복. 몹쓸 권위를 앞세우기 일쑤였다. 우스운 건 그가 군대를 제대로 다녀오지도 않았다는 것. 그는 그렇게 구태에 머물렀다. 속이 그렇다 보니 성정이 겉으로 나타나게 마련이었음에도 그는 늘 아닌 척했다. 그런 그가 내 앞 ‘벽’으로 섰고, 나는 그런 그를 외면하거나 회피했다.
☞ 전자책 <빨강 독후>(허들북스 2012년 11월)에 담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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