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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eunyongyi 2020. 9. 13. 16:28

정아은 지음. 천년의상상 펴냄. 2020년 5월 18일 초판 1쇄.

 

‘사회 지도층’이라 불리는 소수의 자본가는 열심히 일하기는커녕 다른 이들이 노력해 쌓아 올린 결과물을 약탈해 수중에 넣고 그것을 과시하기에 바빴다. 베블런은 이런 상류층의 행태를 ‘약탈 문화’가 시작되던 원시시대부터 내려온 특권층의 관심이라고 지적하며 이들의 주된 일이 ‘노동하지 않아도 되는 자신의 특권을 드러내 세련된 형태로 보여 주는 일’이라고 못 박는다(34쪽).

 

사회는 갓난쟁이를 둔 여성에게 집으로 돌아가라는 사이렌을 열성적으로 울려대지만, 엄마로만 사는 10여 넌이 흐르고 여성이 엄마가 아닌 다른 정체성을 요하기 시작하면 차갑게 외면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까지는 좋았어.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내 알 바 아니거든’이라고 말하는 셈이다(50, 51쪽).

 

꼬박꼬박 수입을 가져오는 남편과 그렇지 않은 나 사이에 있었던 미묘한 알력, 남편이 나의 지출 행위에 못마땅해 하는 기색을 보이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서러워했던 밤, ‘더럽고 치사해서 내가 내일부터 돈 벌러 나간다’ 결심하며 불끈 주먹을 쥐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중략······평소와 다른 특별 지출이 생길 경우 변명하듯 용처를 설명하면서 얼마나 굴욕감을 느꼈던가. 얼마나 떨렸던가.······중략······윗사람에게 결재받는 느낌. 누군가의 의지에 내 안위가 걸려 있다는 느낌. 스멀스멀 산재해 있던 그 음산한 느낌을 떠올리며 나는 연신 몸을 떨었다(57쪽).

 

나는 집안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잘하지 못하고, 잘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아이들에게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다는 목적의식이 치솟아 오를 때는 일시적으로 요리를 잘하고 싶다는 열망에 잠기기도 하지만, 그 기운이 가라앉으면 집안일은 바로 짐이자 부담,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천형으로 변한다(63쪽).

 

다른 이들은 정년이면 맞는 퇴직이 주부에게는 언제 오는가. 주부는 그런 것 없이 평생 일해야 하나. 그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69쪽).

 

뉴스에 발표되는 국민총생산, 주가지수, 실업률 같은 경제지수들에 먹이고, 입히고, 숙제를 봐주고, 어린이와 노인을 보살피는 돌봄 노동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것은 공식적인 경제 밖에 있는 외부의 어떤 것으로 취급된다(105쪽).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저자 마리아 미즈는 자본주의의 화려한 모습을 떠받치고 있는 3대 요소로 여성, 자연, 식민지를 꼽는다. 자본이 상품을 팔아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노동자와 천연자원이 필요한데, 이 두 가지 요인을 만들어 내는 하위 요인이 여성과 자연, 식민지라는 것이다. 여성은 남성 노동자를 먹이고 입히고 재워 ‘재생산’해 주고, 자연은 상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원을 공급해 주며, 최근에는 저개발 국가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된 식민지는 값싼 노동력과 천연자원을 동시에 제공해 준다(136쪽).

 

자급자족 혹은 교환경제 사회에서 살던 시민들을 강제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시켜 임금노동자로 만들어 버린 것도 국가요, 그 과정에서 공동체 단위로 이루어지던 재생산 노동이 산산조각 나게 만든 것도 국가이며, 재생산 노동이 온전히 개별 여성의 어깨에만 얹히도록 만든 것도 국가이니,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재생산 노동을 재조직해야 한다(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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