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경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중요한 것은 여성에게는 꾸밈노동이 오로지 조건부로만 면제된다는 사실이다. 마치 병가처럼 말이다(54쪽).
수치심을 내면화하지 않는 몸은 더 이상 수치심이 부여하는 각본을 따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각본에 사로잡혔던 이전의 기억마저도 새롭게 의미화한다(65쪽).
“저는 대학생 때부터 화장, 성형, 다이어트······ 다 했어요. 일회성으로만 한 게 아니에요. 제 인생에서 화장, 성형, 다이어트를 빼면 할 말이 별로 없어요. 너무 거기에만 몰두해 있었는데, 또 그러면서 아닌 척을 했죠(78쪽).”
여성복의 경우, 처음부터 옷을 입는 사람 대신 그 옷을 입은 사람을 보는 시선을 중심으로 제작되다 보니 옷으로서의 기능이 형편없을 수밖에 없다. 기능이 떨어져도 여성이라는 표식을 다는 것만은 포기하지 않는다. 심지어 여성 수형복에도 허리 라인이 들어가 있다(171쪽).
“제가 워낙 말랐는데 코르셋에 가슴은 또 커야 된다는 게 있잖아요. 그 코르셋 때문에 제가 뽕이 엄청 큰 브라를 하고 다녔던 거죠. 여름에도 맨날 하고 다녔어요. 완전히 에어백을 메고 다니는 거죠. 세미나를 들을 즈음에 이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브라를 바꿨어요(188쪽).”
여성은 규범적 여성성에 부합하는 ‘쓰러질 것 같은’ 자아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여기도록 학습했을 뿐, 실제로 쓰러졌을 경우 스스로에게 이로울 것은 어디에도 없다. ‘튼튼한’ 이미지가 규범에 맞지 않아 수치심을 안길 뿐, 튼튼해서 나쁜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271쪽).
성별을 이유로 모든 여성이 ‘꾸밈’이라는 같은 종목에 출전하는 세계가 기이해진다(314쪽).
여성들은 ‘이미 있는 그대로도 아름답다’는 말을 숱하게 듣고도 멈추지 못했던 꾸밈 경쟁의 레이스를 탈코르셋 운동이 전파하는 ‘여성은 아름다울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듣고 나서야 빠져나온다(328쪽).
탈코르셋 운동은 ‘모든 선택을 존중한다’거나 ‘모두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대신, 현실에 매겨진 위계를 거꾸러뜨릴 방법을 최대한 고민한다(333쪽).
패션 산업은 여아에게 공주 옷을 입히고 남아에게 사람 옷을 입힌다. 그뿐 아니라 성인에게 아동복을 입히고 아동에게 성인복을 입힘으로써 아이를 일찌감치 성적 대상으로 만든다(362쪽).
아무리 사랑과 관심에서 비롯한 말이라고 해도 ‘꾸미니 더 예쁘다’는 말은 뒷면에 ‘안 꾸미면 덜 예쁘다’라는 의미가 붙은 이중적 메시지이다(368쪽).
여성은 이미 여자로 태어나놓고도 ‘여자가 되는’ 관문을 따로 통과한다(3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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