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화철 이광석 이정모 이정엽 임태훈 장은수 한기호 지음. 북바이북 펴냄. 2017년 9월 7일 1판 1쇄.
한기호.
4차산업혁명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담론이 된 데에는 2017년 5월의 대통령 선거도 큰 역할을 했다. 대선 과정에서 모든 후보가 자신이 4차산업혁명을 수행할 적임자라고 주장했다(7쪽).
손화철.
새로운 기술들로 인해 가능해진 일들의 성격 자체가 변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번역과 통역을 예로 들어 보자. 지금까지는 인공지능이 사람과 비슷하게 번역과 통역을 하게 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능력이 일정 수준 이상에 도달하게 되면, 인공지능으로 번역과 통역이 정확하게 되는 문장과 말을 좋은 문장과 말의 기준으로 삼게 될 것이다. 미묘한 의미를 전달하는 문학적 표현이 필요한 영역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체적으로는 간명한 언어로 세계가 소통하는 세상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 사람이 기계처럼 말하고 쓰게 된다면, 기계를 사람처럼 말하고 쓰게 하려는 노력은 일정 단계에서 멈춰도 된다(23쪽).
기술로 인한 일자리 상실은 예나 지금이나 특정 기술의 개발과 사용을 통해 유익을 취하는 다른 인간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26쪽).
보통 산업혁명을 통해 기술사회가 생겨났다고 보는데, 현대 기술사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진보, 그중에서도 기술 진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중략······러다이트 운동 시절과 현재를 가로지르는 특징이 있다면 바로 기술의 발전에 대한 의심이나 저항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31쪽).
랭던 위너가 ‘인식론적 러드주의(Episteological Luddism)’를 주장하는 것은 흥미롭다. 그는 우리 삶의 당연한 일부가 되어 버린 기술들을 조심스럽게 해체해 보는 것을 통해 그 기술들과 연관된 물리적, 사회적 조건들과 권력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좀 더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특정 기술을 한동안 멀리하고 관찰하기를 시도할 수 있다. 직접적인 실험이 불가능하다면 사고실험을 할 수도 있다(32쪽).
이광석.
국내 정보통신 정책사를 다 훑어봐도 동시대 시민 대중의 기술 참정권은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시민의 기술에 대한 참정권 없이 진행되는 현재 디지털 혁신론이나 비판론은 맹목이고, 결국 현실 지배적인 기술 권력의 지향을 오히려 공고화할 공산이 크다. 과학기술 혁신과 혁명이란 이름으로 또 다른 야만의 시장을 미화하는 효과 또한 가세할 것이다(46쪽).
‘과연 한국 사회가 매번 첨단기술을 통한 경제발전주의에 계속 등 떠밀려 움직여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과 같은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과도한 첨단기술의 선점과 추격에서 벗어나 시민의 삶에 필요한 기술이나 사회의 가치가 반영된 기술 도입과 운영의 묘가 필요하다. 기업과 정부의 주류화된 기술 해석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다른 기술 해석과 비전이 동시에 정착해야 한다(47쪽).
임태훈.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 시절의 창조경제를 극복할 경제 정책을 내놓고자 한다면, 재벌과 토건족의 이익보다 노동자의 삶을 가장 먼저 챙겨야 한다. 노동의 질서가 곧 세상의 질서이기 때문이다. 99%의 노동자가 일평생 가난의 비참에서 헤어날 수 없는 사회는 정상적인 세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니 외국 정책과 성공 사례를 모방하는 일에 더는 한눈팔 때가 아니다. 우리의 엄중한 현실에 집중할 단어는 4차산업혁명이 아니라도 아주 많다(109쪽).
장은수.
한마디로, 희망사항이라면 몰라도 4차산업혁명에 대응하는 물리적 실체를 찾기는 너무나 어렵다(115쪽).
이정모.
역사학자 김기봉은 “제4차산업혁명은 아직은 실체가 없는 유령처럼 등장한 말”이라고 주장한다. 1차산업혁명은 화석 에너지를 이용해 증기기관 같은 동력을 발명해 생산량을 급진시킨 계기를 말하는데, 1차산업혁명은 급격히 일어나지 않았으며 1760 ~ 1830년 사이에 서서히 지속적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역사학은 점진적으로 조용히 일어났던 변화를 급격한 혁명으로 서술하는 경향이 있다는 게 김기봉의 지적이다(133쪽).
4차산업혁명의 본질에 대한 김진형의 주장이 매우 특이하다. “요즘 나타나는 놀라운 인터넷과 인공지능의 성과는 70년 전에 시작된 디지털 기술, 즉 컴퓨터, 반도체, 통신, 소프트웨어 기술의 기하급수적 파급효과일 뿐이다. 사이버 피지컬 시스템, 3D 프린터, 드론, 로봇 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혁명적 기술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기존 디지털 기술의 확산일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요즘의 경제·사회의 변화는 새로운 산업혁명의 시작이라기보다는 3차산업혁명, 즉 디지털 혁명의 심화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138쪽).”
오타와 대학의 초파리 유전학자 김우재 교수는 그 이유에 대해 “박정희는 기술 중심의 경제발전정책을 정치적으로 포장하기 위해 과학을 일종의 이념으로 활용했고, 그 패러다임 아래서 한국의 과학기술정책은 경제발전의 논리에 봉사하는 도구로 전락해 왔다. 문재인 대통령의 편지에서도 과학과 기술의 혼란한 동거가 발견된다(143쪽).”
4차산업혁명을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또 한 번 예산을 왕창 쓰고서 그 어디에서도 사용되지 않은 기술을 개발할 것인가는 정부가 어떤 사고방식에 따라 작동하느냐에 달려 있다(1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