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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동아일보의 탄생 ━ 언론에서 기업으로

eunyongyi 2021. 8. 21. 18:25

장신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 2021년 1월 22일 초판 1쇄.

 

조선일보는 뒤늦게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미처 거르지 못한 ‘격한’ 기사를 쏟아 냈다. 이 점이 창간한 지 반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조선일보가 동아일보보다 많은 기사 압수를 당한 이유다(55쪽).

 

김동성 등의 동아일보 퇴직 기자들이 조선일보에 합류했다. 또 간부들의 만류로 동아일보에 남아 있던 다수의 사원이 대거 조선일보에 입사했다.······중략······(1924년) 5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편집국장과 6명의 편집국 부장 중에서 5명, 영업국장과 공장장까지 동아일보에서 조선일보로 옮겼다(85쪽).······중략······사원들은 개혁운동의 여세를 몰아 대주주들에게 인사권의 양보를 요구했지만 김성수는 사원들과 인사 협의를 하지 않았다. 100주 이상의 소유지만 중역이 될 수 있도록 한 정관을 개정하지 않는 한 일반 사원은 사정(社政)에 참여할 수 없었다.

 김성수는 자신에 우호적인 대주주를 중심으로 중소주주들과 표 대결을 벌여서 뜻을 같이하는 인물을 중역으로 추천했다(86쪽).

 

 달리 말해 구독자 수는 광고 수주와 직결되는데, 대다수 독자들은 총독부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민족의식을 고양하는 기사를 좋아했다. 그런데 독자의 기호를 따르다 보면 불가피하게 경영상의 손실을 가져올 수 있었다. 독자를 만족시키면서도 총독부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기사를 생산하는 게 편집국장의 능력이었다(168쪽).

 

 3·1운동 이후 총독부는 문화정치를 표방하면서 세 신문을 허가했다.······중략······총독부는 자신들이 신뢰하면서도 통제 가능한 개인과 단체에 신문을 허가했다. 곧 후작 박영효에게 동아일보를, 대정친목회에 조선일보를, 민원식을 대표로 하는 국민협회에 <시사신문>을 허가했다(170쪽).

 

1937년 (조선일보) 신년호의 신문 1면은 예년과 달리 등장인물과 내용이 크게 달랐다. 일왕 부부의 사진이 1면에 처음으로 등장했고 조선총독의 연두사, 정무총감과 경무국장의 연두 소감도 함께 실렸다. 당시의 주필 서춘은 1937년 신년호에 적색으로 인쇄된 일장기를 제1면에 게재하려 했지만 편집국장 김형원의 반발로 불발되었다. 이처럼 신년호의 지면은 총독부의 강요와 조선일보 내부에서 시류에 순응하려는 움직임이 서로 맞물려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186, 187쪽).

 

조선일보는 민족의 계도자보다 수익성 좋은 기업을 선택했다. 방향이 정해진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이후 사장 방응모는 ‘친일행위’로 비판받는 총독부의 각종 행사에 다방면으로 참석했다. 이는 압력으로 인한 마지못한 출석이라기보다 유능한 경영자의 적극적인 활동이었다(192쪽).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수많은 지식인이 저항을 포기하고 전향을 선언했듯이, 조선일보는 일본의 미래에 자신의 운명을 걸었다(194쪽).

 

 (1) 동아일보도 함께 처분할 것(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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