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지금은 사라진 마이너 신문 경기인천센터 센터장. 마이너 신문 사장과 그자 주변 몇몇을 두고 사납게 다툰 내가 가장 어려운 때 힘겹게 맞닥뜨릴 수 있던 인물. 내가 마이너 신문을 떠나기 전 막바지 9개월 동안 가장 구질구질하게 E와 다툴 수도 있을 것으로 걱정됐기 때문. 부당 해고됐다가 4개월 만인 2014년 십이월 24일 “원직 복직”이라는 마이너 신문 사장의 새빨간 거짓말에 등 떠밀린 내가 간 인천 송도 경기인천센터에 E가 있었으니까. 그때 사장 뜻에 따라 E가 나를 몹시 끔찍하게 괴롭혔더라면 짐작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을 터.
E. 힘에 부치거나 당해 내기 어렵진 않았다. 그 또한 경기인천센터를 ‘유배지’로 여겼기에. 전기 끊긴 뒤 물마저 끊어질 지경에 이르렀던 곳이었으니 그곳 센터장인들 어찌 유배라 여기지 않았으리요. 그만큼 마이너 신문 사장은 참 나빴다.
고마운 거 하나. E가 나를 ‘기자’로 대한 것. 처음부터 기자였고, 이리저리 좀 뛰어다닐 줄 아는 기자였던 걸 E가 잘 알았으니까. 하여 E는 마이너 신문 사장에게 나를 ‘광고 영업 사원’ 말고 “차라리 기자로 발령 내 달라” 했다. 사장에게 두 번, 편집국장 노릇 하던 H에게 한 번 그리 요구했다고 내게 밝혔다. 기자였고 논설위원까지 지냈던 사람을 부당 해고했다가 ‘유배지 광고 영업 사원’으로 발령하니 ‘부당한 인사 발령’을 두고 다시 다투려 고개를 들지 않느냐는 E의 항변이자 회사를 위한 진득한 고민 끝에 나온 요구였다. (마이너 신문 잔심부름꾼 D는 이를 두고 ‘내 주장일 뿐’이라 하나 내겐 E가 사장과 H에게 그리 요구했다고 밝힌 증거가 있다.)
안타까운 거 하나. 2014년 구월 ‘해고는 살인’이라는 손팻말 든 내 모습을 바라보며 입술 비튼 E가 찍힌 사진 한 장. 자신 또한 노동자임에도 사장 쪽에 선 채 달리 해볼 게 없어 세차게 일어선 노동자를 두고 소태라도 문 듯 입술 비틀린 웃음. 딱해 가슴 아프다.
▴2015년 사월 15일 마이너 신문 경기인천센터에 온 단전 통지. 전기가 일주일 넘게 끊겼고, 그해 십일월 센터 문을 아예 닫고 말았다.
▴2015년 삼월 23일 나는 경기인천센터장 지시에 따라 마이너 신문 100부를 경기도 성남에 있는 한 중소기업에 배달했다. 그 무렵 마이너 신문 사장의 ‘부당한 인사 발령과 징계, 부당노동행위’를 두고 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했던 나는 — 마이너 신문 사장이 생각하기에 내가 ― 자존심을 얼마간(?) 구길 만한 것 여럿을 잘 참아 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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