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A를 핥느라, 나를 물어박질렀을 마이너 신문 교육출판팀장 B. 내가 제 놈이 나온 고등학교 3년 선배임에도 모질게 물어박지르는 모습을 내보여야 A와 마이너 신문 사장을 더욱 잘 핥는 줄로 알았을 터. 고교 동창회에 얼굴 한번 내민 적 없는 내가 B에게 선배 노릇을 하거나 후배다우라고 윽박지를 아무런 까닭이 없었으되 그자가 사람 사는 이치에서 한참 빗나갔음을 알아보기엔 넉넉했다.
B. 나를 탁자 건너편에 앉혀 두고는 제 놈 주먹 가다듬으며 ‘너, 나(B)보다 나이 많고 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한데 기분 참 나쁘겠다. 기분 나쁘면 어디 먼저 한 방 날려 봐’ 하는 눈빛과 몸짓. 비웃음. 2013년 사월 1일. 서로 얽힐 일 없던 사이에서 팀장(B)과 팀원(나) 관계로 바뀌었으니 내게 “정규직 사원으로서 처신을 잘해야 할 것”이라 말한 날. 시원하게 사고 ― 폭력 ― 한번 치고 회사 때려치우시지 하는 꾐. 나는 지금도 망종 같던 B의 그때 눈빛과 몸짓을 잊지 못한다.
B. 2015년 유월 토끼 죽은 뒤 삶아 먹힌 사냥개처럼 마이너 신문에서 쫓겨났다. 2011년 유월 마이너 신문에 사업 판촉 사원으로 합류했으니 4년쯤 머물렀던 거. 그전엔 ‘작은 인터넷 관련 기업에서 일했다더라’는 정도로만 알려졌을 뿐 어디서 무얼 했는지 알 수 없었고.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듯했는데 그게 — 도대체 뭐라고 — 부끄러운지 입을 다물기 일쑤였으며. ‘영업은 팀원이 하고 나(B)는 사람 관리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절어 팀 에너지를 좀먹었다. 겉돌았던 거. 마이너 신문 사장은 그런 B를 어여삐 여겼고, 못난 A는 사장이 예뻐하는 B를 제 놈에게 이롭게 쓰려 했다. 쫓아내기 전까지.
B. 한국에서 손꼽히는 대학의 생물 관련 학과를 다녔다. 자연과학에 관심을 가졌다기보다 나와 B가 다닐 무렵 모교(고교)의 ‘○○대 보낸 머릿수 늘리기’ 결과였을 개연성이 컸다. 전공과 상관없는 인터넷 관련 기업과 마이너 신문 사업국 따위를 떠돈 까닭이기도 할 테고. 실제로 나 또한 고교 3학년 담임으로부터 내가 바란 ‘신문방송학’이 아닌 그 무렵 모교가 그어 둔 기준에 비춰 한 단계 높은(?) 대학의 문리대에 지원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나는 두말할 나위 없이 거절했고. 지금 뿌듯한 삶을 살며. 싹수없던 B를 ‘참 어처구니없는 자’라 여길 수 있게 됐다.
B. 마이너 신문 사장과 못난 A를 핥아 제 목숨 잇고자 나를 업신여기며 짓밟은 걸 헤아리면, 어딜 가나 노동자에게 몹쓸 짓 할 자. 이런 자가 물어박지르는 거. 아프더라. 생각보다 깊은 자국을 가슴에 남겼고. 제 놈 또한 노동자임에도 다른 노동자를 물어박지르며 살아가는 자. 나빠. 싹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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