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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年 그者

eunyongyi 2015. 12. 20. 18:54

 애플年 그者

 

 


“사 가, 이 시키”로 들렸다. 가끔. 잘못 들은 줄 알았지. 얼마간은 긴가민가했는데 들릴… 들을수록 ‘사 가’요 ‘이 시키’였어. ‘가’를 조금 늘이나 싶다가 ‘시키’로 재빨리 매조지하는. 외침이. 귓전을 때리고 맴돌았다. 귓전에 워낙 가까웠던 날엔 여음이 머리를 맴돌았고. 길게. 그 사람 눈길이 외침에 앞서 처음 내 눈에 꽂힌 — 더도 덜도 없을 — 한 날엔 여음이 명치께로 얹혔다. 나. 아직 그 외침을 명치 아래로 밀어내리지 못했네.

회백색 왼쪽 수정체. 모자챙 아래 옹송그린 채 치떴으되 초점이 내 눈에 맺힌 것인지, 눈두덩 어딘가로 미끄러졌는지 모를 그 눈길.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채 오랫동안 앓은 백내장 때문일 듯싶었다. 그 사람이 자기 눈빛에 어울릴 옷을 부러 찾진 않았을 것이되 거듭 빨아 입어 색 바랜 잿빛 점퍼가 맵고 신 삶을 말해 줬지. 보풀 인 소맷부리가 곁점을 찍었고.

‘사 가’와 ‘이 시키’가 귓전에 더 크게 걸린 날 아침엔 영등포 중앙시장 북쪽 문 앞 삼거리를 훑는 자동차와 멈춰 선 그 사람 손수레 사이로 내가 끼인 듯 스친 듯 지나쳐야 했어. 수레는 과일을 더 많이 담으려 손잡이 근처까지 널을 잇댔더군. 손잡이 쪽과 맞받이가 조선(朝鮮) 판옥선처럼 살짝 — 날렵하진 않게 — 하늘을 향했고. 음. 특히 비 내린 날엔 더 깊숙이. 섰다. 그. 당연한 듯 내 출근길에 손수레를 내세운 채. 우산 없이. 모자챙 아래 죄어 다잡은 “사 가, 이 시키”와 함께.

사과. 이십 개. 도대체 얼마를 치러야 그 사람 손수레로부터 사과 이십 개를 덜어 낼 수 있었을까. ‘만 원에’ 같은 꾸밈씨 없이 그가 그리 그냥 퉁겼다. 쇳소리. “사 가.” 또는 “사과.” 야무지거나 날카롭진 않았어. 목소리. “이 시키.” 또는 “이십 개.” 값싼 담배와 서울 그을음에 쇠잔했을 성싶었어. 가르랑거렸지. 가래. 후두 언저리에 질척하게 들러붙은 그놈을 온전히 삼키지 못한. 시원히 뱉지도 못할 그놈이 기관지에 들러붙어 그 사람 허파를 빼앗을 구실을 찾는 듯했다.

한 번도 사과를 사지 않은 내가 못마땅했을까. 그저 내 차림새나 걸음새가 싫었을 뿐일까. 발칵 역정을 내는… 아니, 그만한 파장이 내게 건너오진 않았지. 쇠하여 가냘팠을 뿐. 그 사람 덩치가 작았거든. 음. 사실 ‘사과 이십 개’는 애초부터 없었더군. 참외 몇 개로 받치고 손수레 둘레에 기대어 놓은 과일 값표. “사 가”와 ‘사과’가 헷갈리고 ‘이십 개’가 아닌 “이 시키”가 귀에 거슬린 뒤에야 눈에 띈. 그래, 그럼 사과 이십 개가 도대체 얼마? 쓰여 있지 않았어. ‘사과’가. ‘이십 개’도. 내가 그리 처음 그 사람 수레를 깊이 들여다본 그날엔 웬걸 덩치 큰 참외만 있었지. 과일 값표에 ‘참외 5개 만 원.’ 손수레에 사과가 없었음에도 ― 있던 날이 더 많긴 했지만 ― 그는 내게 이십 개를 사 가라 외친 거야. 그러니까 그건 아마도 욕. 그랬지.

 

십이월. 그자가 똥값 걱정을 했다. 갯값을 말한 게 아니었어. 그야말로 똥 풀 값이었지. 그자. 단체교섭에 불려 나와 탁자 앞에 앉더니 “이것저것 들어갈 게 많아요.” 직원 월급뿐만 아니라 “사무실 똥값도 내야 합니다.”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둥 회사 앞날을 위해 돈을 좀 쌓아 둬야 한다는 둥 앓는 소리더니 난데없이 연봉제를 하자 배때 벗었고 급기야 똥 풀 값까지.

그자와 그자의 몇몇 주구는 임금을 뺀 제반 경비로 노동자 한 명마다 매년 사천만 원 이상을 물렸다. 어느 해엔 오천만 원을 넘겼지. 서울에서 사무실 임대료가 가장 비싸다는 강남 테헤란로에 버금갈 수준이었어. 그자와 그자의 주구가 들락거린 사무실이 영등포에 있었음에도. 그나마 그 사무실이 있는 건물은 나를 포함한 여러 노동자가 은행에서 빌린 돈을 십 년쯤 갚은 끝에 자산으로 일군 거였지. 그자가 이룬 게 아니었어. 그자는 그저 수년 전에 주식을 콧방귀 좀 뀔 만큼만 샀을 뿐임에도 방귀에 머물지 않고 회사 안팎에서 주인 행세를 하려 들었다. 거드름. 똥 풀 값 걱정 해가며.

그자는 박정희와 전두환 따위가 한국을 지배하던 시절 건설업에 부동산 투기를 곁들여 쌓인 제 아비 돈 덕에 위세를 누렸다. 들어가고 나온 대학이 달랐고, 읽고 생각한 게 많지 않은 게 자주 드러났어. 영어를 쓰는 이를 만나면 입뿐만 아니라 몸까지 얼어붙었고, 한국에서 살았음에도 군대에 가지 않았지. 이쯤에서 적이 짐작했을 텐데 그자는 밥벌이에 뼈저리지 않은 삶을 살았다. 다만 돈 밝힌 집에 태어났으니 돈맛을 알았겠지. 하여 똥값 냄새에 빨라 연봉제 같은 몽니를 부린 것일 테고.

그자의 주구로는 혀 짧은 망종에 젓가락질 잘 못하는 게 끼었지. 젓가락질 서툴고 혀 짧다 하여 사람이 나쁘다 몰아칠 수 없겠으되 그 둘은 이것저것 서툴고 짧은 게 많아 측은할 지경. 엄지와 검지 사이에 젓가락을 몰아 쥐고 끙끙대던 주구 역시 읽고 생각한 게 짧은지 무식하기가 그자에 버금갔어. 나치나 일제 군용 모자를 들쓰기라도 한 듯 누구에게나 상명하면 하복하길 바랐다. 마땅한 상명이 아니더라도 “그대로 시행하는 게 아랫사람의 도리”라고 윽박지르곤 했지. 혀 짧은 망종도 그자처럼 군대에 가지 않았는데 자신이 젓가락질 서툰 주구를 향해 아랫배 깔고 열심히 꼬리 흔들 듯 나를 비롯한 여러 노동자에게 하복하길 바랐다. 그자의 똥값 걱정이라도 덜어 내려는 상명이요 하복이라기보다 그저 어여삐 여김을 받으려는 꼬리치기였어.

점입(漸入). 군에 짧게 다녀온 주구도 둘 있었는데 어쩜 그리 하나같이 상하 복종에 매이고 허세에 기대어 사는지… 쯧쯧. 군대에 가지 않았거나 짧게 다녀왔다 하여 사람이 모자라다 몰아칠 수 없겠으되 못난 그 둘은 그자에게 비루해 살아남았다. 꾸역꾸역. 구린내 나는 다른 주구 뒤꽁무니에 숨어 잔머리를 굴릴 뿐 앞으로 나선 적 없어 못난 것, 누군가를 “교화하려 했다” 하나 정작 제 자신이 착하지 못해 흐릿한 것. 가경(佳境). 들어갔던 대학을 부끄러이 여긴 주구도 둘 있었는데 어쩜 그리 하나같이 거짓말에 매이고 발싸심에 기대어 사는지… 쯧쯧. 대학이 부끄러워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대학원에 갔다 하여 사람이 모자라다 몰아칠 수 없겠으되 못난 그 둘도 그자에게 비루해 살아남았다. 꾸역꾸역. 꼼수에 밝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한 대가리 큰 것, 갈등 빚은 대기업 앞에 발랑 누워 배를 내보였음에도 항복한 게 아니라고 우격다짐한 것. 음. 모두 낯부끄러움을 모르는 족속이었어. 대가리 큰 건 암수를 거침없이 썼지. 그자에게 충성하고 회사를 위해 사는 듯싶었지만 제 살 궁리로 암수와 꼼수에 매달렸다. 실수하거나 거짓말이 드러나면 그자를 향해 아랫배 깔고 꼬리 흔들면 그뿐. 제 위아래 동료 노동자와 함께 땀 흘릴 까닭이 없었지. 하여 대가리 큰 주구는 회사를 제대로 망쳤다.

 

일월. 여의도 샛강에 머물던 찬 바람이 한강성심병원 옆길을 타고 남동쪽 영등포 중앙시장 북쪽 문 앞 삼거리로 몰아쳤다. 길 가는 사람 머리카락을 들어 이리저리 흔들었지. 그 사람 손수레에선 사과와 귤이 서로 넘실거렸어. 나. 그 겨울 매일 아침. 샛별 보며 그 사람 “사 가, 이 시키”를 스쳐 지나 똥값 걱정에 빠진 그자를 향해 걸었다. 타박타박. 지하철 영등포시장역에서 동쪽 영등포 중앙시장 북쪽 문 앞까지 삼백일흔 걸음. 타박터벅. 북쪽으로 바투 돌아 여의도 샛강 바람에 머리카락 내맡긴 채 이백아흔다섯 걸음. 터벅터벅. 횡단보도 건너 북동쪽 그자와 그자의 주구가 있는 곳까지 사백스물다섯 걸음.

그자. 호봉제 직원 임금 인상 효과가 영(0) 점(.) 영, 삼사 퍼센트쯤에 지나지 않으니 몇몇 주구에게 준 자동차를 “빼앗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지. 그걸 모두 빼앗으라 하지 않았음에도. 다만 줄이라 했음에도 빼앗아 봐야 소용없다고 눙친 거야. 백구십 명쯤 되는 회사에서 그자와 그자의 몇몇 주구를 위해 값비싼 검은빛 자동차를 일곱 대, 때론 열 대를 굴리며 기름값까지 댈 만큼 나와 내 동료 노동자의 기름과 피가 넘쳐나진 않았다. 업종이 같은 다른 회사에선 노동자가 오백 명을 훌쩍 넘는데도 값비싼 자동차는 네댓 대에 불과했지. 양심에 게으른 그자와 그자의 주구가 짬짜미한 결과였어. 나, 함께 땀 흘리는 여러 노동자는 마땅히 “자동차 줄이라.” “똥값 무서워 임금 인상 어렵다 말하지 말라.”

이월. 그자가 세종시 중앙노동위원회 임금 조정위원회에 나타났다. 젓가락질 서툰 주구와 함께. 똥값 따위가 두려워 노동조합의 임금 인상 요구를 외면한 탓이었지. 그자. 회사 경영권을 잡아 쥐려고 삼십오억 원쯤 썼음에도 미래를 위해 무려 백오십억 원을 ― 그 돈으로 남은 생애를 편히 살아도 될 텐데 회사를 잘 만들어 보려고 ― 태웠다고 노동위원회 조정 위원들에게 거짓말을 했더군. 천연덕스레. 쉬 거짓말하는 습성을 스스로 내보였어.

“거짓말입니다.” 나. 덧붙여 말했지. 그자의 회사 사랑하는 마음, 앞날 걱정은 전횡을 감추려는 가림막일 뿐이라고. 그자가 바라는 연봉제는 제 편할 대로 노동자를 휘두르고 길들이려는 꼼수라고. 계열 회사가 하나 있는데 이미 제 마음대로라고.

며칠 뒤. 혀 짧은 망종이 나를 장애인에 빗댔다. 제 아는 자가 나를 두고 “장애인”이나 마찬가지라 했다며. 능력 없는 내가 “노동조합 우산 아래 숨어 있다”는 거야. 그자가 그리 주구를 풀어 ‘물어!’ 하자 혀 짧은 망종이 득달같이 나를 물어박질렀지. 그 망종은… 내 고등학교 삼 년 후배였어.

 

삼월. 군대에 짧게 다녀온 못난 주구 가운데 하나가 그자 뜻에 따른 연봉 동결 계약서를 내게 내밀었다. 이름 써넣으라고.

나. “노동자와 사용자가 대등한 자격으로 계약해야 합니다.” 못난 주구 따위가 “위임 받아 처리하거나 전결할 일이 아닙니다.”

그자가 삼 년 전 내민 첫 연봉 계약서에 이름 써넣은 뒤 그자와 따로 마주한 적 없던 나는 내밀었다. 바로잡으라고. 노동조합도 당연히 “단체 협약 위반이다.” 그자가 “임금을 체불했다.”

며칠 뒤. 노사 협의회. 나. “해마다 연봉 계약을 새로 맺지 않았고, 임금을 포함한 노동 조건을 서면으로 내보이지도 않았으니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그자에게 말했어. 그자는 회사에 연봉 계약을 맺는 직원이 마흔세 명이나 됐음에도 삼 년간 따로 만나 임금을 두고 대화한 적이 없었지. 대충 눙쳐 모두 동결하고 말았다. 대가리 큰 주구. 노사 협의회에서 궁지로 몰려 못마땅한 그자의 기분 냄새를 맡더니 궤변을 허투루 징징댔어. 젓가락질 서툰 주구.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웅얼거렸고. 차라리 시원히 울거나 웃었으면 덜 측은했을 징징거림. 회사를 내리누르는 대기업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느니. 앞날을 준비하려면 아픔을 나눠야 한다느니. 두 주구의 꾀죄죄하고 초라한 짓에 얼마간 자신감을 얻었는지 그자도 다시 튀어나왔지. 입사한 지 사 년이 훌쩍 지난 비정규직 노동자 한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조차 부담스럽다느니. 한 사람이 일 년 내내 일 하나를 모두 맡고 있긴 하지만 휴가는 갈 수 있다느니. 제 스스로 그리 밝혔지. 똥값 냄새와 돈맛에 눈멀었음을.

 

사월. 덩치 큰 참외가 일곱 개에 만 원이었던 날. 덩치 큰 사과도 그 사람 손수레에 다시 등장했다. 사과 한 무더기와 참외 한 무더기. 노란 참외와 빨간 사과의 낯선 동침. 덩치 큰 참외와 사과가 수레 따위에 함께 있는 게 대체 언제부터 눈에 익었는지 감감했으되 철모르는 사과를 탓할 것 없이 참외마저 쌀쌀한 봄날 아침부터 수레를 노랗게 물들였더군. “사 가, 이 시키”와 함께.

그 사람 사과를 산 이가 있었을까. 있을까. 그 아침에. 지하철 영등포시장역 2번과 3번 출구 사이로 난 양산로와 영등포로 53길이 만나는 영등포 중앙시장 북쪽 문 앞 삼거리에서. 사과 이십 개를. 음. 한번. 딱 한 번 보기는 했다. 그 사람으로부터 사과 한 봉지를 받아 들려는 한 아주머니를. 어, 정말 사고파나 보다 싶어 살짝 놀랐고, 재게 걸어 — 거의 뛰다시피 다가갔지만 몇 개를 담았는지 헤아리진 못했어. 봉지 윤곽으로는… 많아야 댓. 아주머니. 만 원을 건넸다. 그. 오천 원을 거슬렀고. 그렇다면. 열한두 개에 만 원쯤일 성싶었다. 그렇겠지. 이십 개 안팎이면 이 만 원쯤이겠고. 음. 그렇긴 할 텐데. 장바닥 손수레 장사치가 대개는 ‘만 원에’나 ‘천 원에’로 손님을 꾀지 않던가. 만 원에 몇 개, 천 원에 몇 개로 말이야. ‘싸니 많이 사 가’라며 꾀는 게 흔하잖아. 그렇지. “사과 — 굳이 — 이십 개에 이만 원”을 외치진 않게 마련이다. 더구나 때론 “떨이여 떨이!”라던 그. 마수걸이가 아닌 떨이. 그 아침에. 그 사람 아침 장사는 시작이 아닌 마무리? 아니면… 그저, 입에 밴 값싼 사과 판촉용 말마디였을 뿐일까. 그는 그리 꿋꿋하게 참외 등속을 수레에 실은 채 사과를 이십 개씩 팔겠다고 외쳤다. 내게 “사 가, 이 시키.” 욕. 결국. 그랬다.

나. 회사에 불복할 뜻을 밝혔다. 그자의 혀 짧은 망종이 내 업무 고과를 두고 근거 없이 ‘시(C)’로 물어뜯었기에. 노동조합과 함께 다시 외쳤다. “인사 평가 기준을 밝히라.” 그자가 나와 연봉 계약을 따로 체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노사 임금 협상에 따른 인상분을 내게 반영하지 않았기에. “임금 체불이자 단체 협약 위반이다.”

그자의 젓가락질 서툰 주구. 10개월 전인 2013년 칠월 3일 내가 외근 일정 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던데 그날 혀 짧은 망종의 지시를 왜 무시했느냐며 시말서를 내놓으라 했다. 나. 그렇지 않다 했지. 거듭. 혀 짧은 망종을 무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나친 외근 동선까지 보고하라 하면 노동자의 인격권을 침해할 수 있어 문제다, 그리 꼭 집어 가리켰을 뿐이라고. 시말서는 단체 협약과 취업 규칙의 견책에 해당하는 징계인데 인사위원회 같은 걸 열지도 않은 채 나를 마구 물어뜯으려는 것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젓가락질 서툰 주구. 나를 물어박질렀어. 더욱 더. 시말서가 문제라면 경위서로 말 바꾸겠다며. 연거푸. 경위서를 내지 않으면 정말 징계할 수 있다고.

16일. 그자 같은 자본의 탐욕이 SEWOL을 가라앉혔다. 바다에. 기어이. 꽃다운 삼백구 명을. 그자 같은 자본의 몇몇 주구는 꽃다운 이들을 차갑고 깜깜한 곳에 가라앉힌 채 제 휴대폰 버튼을 누르느라 바빴어. 제 몸만 숨기려. 두려웠을 터. 똥값에, 탐욕에 눈먼 그자 같은 자본의 서슬이. 무서워. 사람 목숨보다 더.

 

오월. 그자의 젓가락질 서툰 주구. 점심 먹을 나절 커피숍에서 불쑥 튀어나오더니 봄볕에 구정물을 흩뿌리듯 내게 눈 맞추며 입을 옆으로 죽 찢었다. 비웃음. 어디 한번 해볼 테냐 —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듯했어. 며칠 뒤. 그자는 대기업 등쌀에 속을 썩이는데 그게 풀릴 때까지 제 월급 이십 퍼센트를 내놓겠다고 떠들었다. 그게 무슨 4단계 비상 경영의 첫째라나. 그자의 몇몇 주구가 제 월급 20퍼센트도 반납하겠다며 맞장구 꼬리를 쳤지. 나. 그자의 못난 주구에게 “제아무리 회사가 어렵다 해도 사장이 먼저 급여 반납을 말하면 곤란합니다.” 몇몇 주구만 그자에게 꼬리 쳐도 곤란한데 그런 행위가 “(오른손을 왼 가슴에 올려놓으며) 심약한 저를 비롯한 여러 노동자의 급여 반납을 은근히 부추기거나 내리누르기 때문이죠.” 대기업 등쌀에 “회사가 오늘내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못난 주구. “인간적으로 잘해 줄 때 똑바로 해!” 난데없이. 내게 연봉 동결 계약서에 서명하라 윽박질렀을 때보다 한층 더 거세게. 제 놈이 내게 뭘 잘해 줬는지 헤아려볼 새 없을 윽박지름. 못난 데다 능력까지 보잘것없어 얼렁뚱땅한 형 동생 관계에 기대어 목숨 겨우 잇는 그놈은 나를 가끔 을렀으되 제대로 물진 못했지. 얼렁뚱땅한 형 동생 되기 잔꾀가 내게 먹히지 않았기에 쉬 접근하지 못했던 거야. 하여 못난 주구. 얼렁뚱땅 동생인 듯 꾄 이들을 제 차에 태우고는 하릴없이 먼 곳으로 점심 먹으러 싸돌며 구린 물밑 작업을 했어. 제 대신 달려들어 물라고. 나를.

그리 그자의 몇몇 주구가 더욱더 으르렁거렸다. 한두 번쯤 송곳니를 내 몸 깊이 박아 넣기도 했고. 그자. 제 아비가 벌어 놓은 돈. 그 돈에 꼬인 새 돈맛. 그 맛에 서린 탐욕. 그 끝장을 즐기며 제 몇몇 주구가 누군가에게 으르렁대고 결국엔 물어뜯는 꼴이 기꺼웠겠지. 제 할 일 많지 않았고, 제 손에 피 묻힐 일 없었을 테니까.

 

유월. 영등포 중앙시장 북쪽 문 앞 삼거리 과일 손수레가 두 대로 늘었다. 회백색 왼 눈빛 터주 — 그 사람 — 수레가 있던 북서쪽 열한 시 방향 자리에 새 얼굴 새 수레. 이가 얼마간 빠졌는지 합죽하나 눈빛과 광대뼈 언저리에 깡다구가 서렸더군. 그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밀려났어. 터주 손수레. 삼거리 남서쪽 일곱 시 방향 모퉁이로. 장바닥 훑는 자동차가 지하철 영등포시장역을 향해 오른쪽으로 바투 돌아나가느라 수레와 손님을 위협하는 곳. “사 가, 이 시키”가 솟구치기는커녕 그 사람 담배 연기마저 우산 아래 장바닥에 배를 대고 기었다.

며칠을 두고 영등포시장역 2번과 3번 출구 사이에서 영등포 중앙시장 북쪽 문 앞으로 이어지는 양산로 왼편을 따라 그자 같은 자본의 담이 섰다. 육 척 사내조차 감히 넘보지 못할 높이로. 처음엔 담 아닌 가림 막. 담입네 했으되 얼기설기 천으로 가려 둔 곳이 많았어. 그자 같은 자본은 그리 어설피 행인 눈만 가리고는, 담 안에서 우당퉁탕 때려 부수기 시작했지. 쿵. 집. 쾅. 둥지. 다다귀다다귀했던 쪽방이 하나 두셋씩 무너졌다. 쿵. 쾅. 담 접혀 내려앉는 사이로. 쉭. 쉭쉭. 시멘트 가루. 쪽방 삶 티끌과 석면 따위가 코털 헤치고 목 넘어 폐로 달려들더라. 행인 1과 2와 3. 손수레 터주와 깡다구. 한강성심병원 환자복 입은 이 1과 2. 나. 들이마셨다. 콜록. 삭았지. 쿨룩. 삶. 더 빨리.

30일. 노사 협의회. 그자는 시말서인지 경위서인지를 구실로 삼아 징계할 수 있다는 공문으로 나를 한창 물어뜯던 젓가락질 서툰 주구를 북돋웠다. 그자. 젓가락질 서툰 주구의 물어박지르는 형식과 절차가 문제라면 “대표이사 이름으로 경위서 내라는 공문을 다시 보내드릴까요.”

 

칠월. 사라졌다. 터주. 깡다구 수레만 남았어. 장사를 포기했을까. 아픈 건 아닐까 했다. 혹시 타워 때문에? 아크로타워. 아크로, 끝. 타워, 탑. 끝탑? 아크로, 꼭대기. 꼭대기탑? 아크로, 높은 곳. 높은 곳에 있는 탑? 그자 같은 자본. 영등포 중앙시장 북쪽 문 주변 쪽방들 밀어낸 자리에 아크로타워를 쌓는다 했다. 그야말로 아크로폴리스를 닮은 탑일 리는 없겠고. 다만 제 돈 크게 튀겨 줄 사람 꾀어내려고 끝과 꼭대기 따위로 치장한 거였겠지. 사전 분양이 어쩌고저쩌고한 플래카드도 내걸었고.

19일. 서울시청 앞. 그자 같은 자본과 몇몇 주구가 SEWOL로 가라앉힌 꽃다운 이들의 죽음을 밝히려 사람이 켰다. 촛불. 특별법 만들라고. 무슨 일 있었는지 제대로 알아내 책임자 처벌하라며. 24일. SEWOL 백 일째. 시간 자꾸 흐르더니 “교통사고”가 꼬리를 쳤다. 그자 같은 자본과 한통속 권력을 향해. 그걸 지키려.

그자. 그 무렵. 내가 다음 차례 노동조합 위원장 선거에 나설 성싶다는 말을 바람결에 들은 모양이었다. 그자의 몇몇 주구가 그리 예측했다지. 음. 나. 사실 그럴 뜻 있었어. 풍문에 그칠 게 아니었던 거지. 여러 입을 오르내리며 바람결에 흘러 다닌 말에 그자의 몇몇 주구가 제법 귀를 기울이긴 한 듯해. 하여 주구들 으르렁대는 소리와 눈에 선 핏발이 점점 더 짐승다워졌지.

 

팔월. 세 대가 됐다. 손수레. 목 좋다는 얘긴가. 한강성심병원에 문안 가는 이들이 그곳에서 사과나 참외를?

터주는… 며칠 쉰 탓이었을까. 세 번째 수레에게마저 있던 자리를 내줬더군. 북동쪽 한 시 방향. 애초 있던 자리의 맞모금에 섰다. 가격 팻말을 키웠으되 호졸근했어. 그의 난데없는 — 사과 아닌 — “복숭아 한 상자에 만 원”의 풀기도 빠졌고. 수레엔 복숭아뿐만 아니라 사과도 제법 있었지만 여전히 ‘이십 개’나 ‘만 원’ 같은 표식은 없었다. 그 사람이 내준 북서쪽 열한 시 방향의 깡다구 수레엔 아침 여덟 시 십오 분임에도 달랑 — 다른 날과 다르게 — 참외 두 알만 남았더군. 터주의 애초 자리. 음. 팔리긴 하는 자리였구나 싶었지. 남서쪽 일곱 시 방향에 자리 잡은 셋째 수레도 사과 몇 무더기만 남았더군. 셋째 수레의 주인은 터주와 깡다구의 중간 어디쯤이라 말하기 어려울… 음. 눈길을 끌지 못했다고 해 두자. 터주 수레의 복숭아는 한가득. 영등포 중앙시장 북쪽 문 앞 삼거리 과일 손수레 세계를 그리 깡다구가 지배하는 것으로 보였어.

19일. “복숭아 한 상자 만 원, 만 원.” 잦아든 터주 목소리. 복숭아가 연일 팔리지 않은 성싶었어. 그맘때 어른 아름 크기 상자에 담긴 복숭아 시세가 이만 원쯤이었거든. 철모르되 값싼 사과의 위력이었을까. 깡다구와 셋째 수레의 사과와 참외는 듬성듬성 바닥을 내보였음에도 터주 수레엔 여전히 복숭아가 무성했다. 터주는 사과와 참외를 피해 복숭아로 손님을 꾈 요량이었을 터. 실패로 보였지. 아무래도 자리 탓 아니었을까 싶어. 깡다구와 셋째 수레 주인에게 밀려나 할 수 없이 자리 잡은 삼거리 북동쪽 한 시 방향 말이야. 그곳엔 지하철 영등포시장역에서 영등포 중앙시장 북쪽 문 앞을 지나 한강성심병원으로 돌아드는 길 가는 사람 발걸음이 웬만해선 닿지 않았거든. 그 길 가는 사람은 남서쪽 일곱 시 방향을 끼고 돌아 북서쪽 열한 시 방향으로 내처 걸어 나갔지.

22일. 금요일. 오후 다섯 시 사십사 분. 그자가 내게 해고를 통보했다. 서면으로. 일요일(24일) 자로 회사를 나가라고. 징계 해고. 일 년 전인 2013년 칠월 3일. 한 번. 인터넷 캘린더에 오후 외근 일정을 올리지 않아 근태가 불량했다며. 그날 오후 일정을 사무실 칠판에 쓰고, 말로 얘기했음에도. 젓가락질 서툰 주구가 그날 있던 일을 알아보겠다며 달라 한 시말서와 경위서를 내지 않았다고. 회사에서 삼십여 년 동안 해 오던 대로와는 사뭇 다른 시말서와 경위서를 요구했음에도. 내 책임이 아닌 일에 불량했다는 억지까지 덧붙여. 징계. 즉시. 해고.

 

구월. 터주와 깡다구와 셋째 손수레가 사과와 배와 감으로 물들었다. 이른 추석. 과일 맛 신통치 않아 차례가 부실해질까 걱정이라는 얘기를 얼핏 들은 듯 만 듯. 귀향길 교통 정체가 어느 날 어느 시에 가장 심하겠다는 얘기를 얼핏 들은 듯 만 듯. 나. 추석 연휴 하루 전. 5일 오후 네 시께. 징계 해고 최종 통보를 받았지. 회사 안 인사위원회의 징계 해고에 불복한 내가 재심을 요구한 끝에 나온. 그자와 그자의 몇몇 주구가 부린 끝장 횡포였어. 주말이나 연휴를 앞둔 오후 늦게 해고를 통보하는 만행을 일삼은 건 아마도 시간 흐름에 기대어 내 칼이나 창을 얼마간 무디게 하려는 꼼수로 보였다. 음. 절차. 딱딱 치 떨리는, 분노를 가슴 아래에 눌러 두고 밟은 회사 안 순서. 음. 방법. 그자와 그자의 몇몇 주구가 이치에 맞지 않게, 보잘것없는 이유를 들먹인 끝에 괜히 뭇매질했음을 밝힐 회사 밖 수단. 나. 달리 해볼 — 대들어 맞겨루거나 싸울 — 게 없었어. 하여 손팻말.

 

 

해고는 살인이다!

□□□□ 조합원 부당 해고 22일째

악질적 표적 징계

●●● 징계위원장 경질!

악질적 부당 해고 방지

노사 동수 징계위 구성!

 

무엇을 위한

해고입니까?

 

○○○○노동조합 □□□□ 지부

 

 

툭… 투둑, 툭, 후드득. 머리 덮개에 떨어진 성긴 빗방울. 이 소리. 어디서 들었더라. 익숙한데… 아, 맞다 맞아. 빗속 경계 근무 설 때 철모 위에. 후드득후드득. 흐름을 탈 순 없었지만 설움 가라앉힌 다독다독. 투둑… 툭, 후드득, 툭.

나. 섰다. 빗속에. 볕 따갑고. 바람 일어도.

25일. 부당 해고 삼십이 일째. 가을볕 참 따갑더라.

“그늘에서 하세요. 왜 거기 서 있어요.”

속삭인 아주머니. 그 마음 참 고마웠다. 볕 든 곳 ‘거기’ 말고 그늘 안에 서라는. 덥긴 했으되 뙤약볕은 아니었지. 걱정해 준 마음, 내 품속에 고스란히 넣어 뒀어.

“아이고, 저 냥반이 진짜…. 거 의자라도 가져다 놓고 해. 앉아서 해도 판에 쓴 거 잘 보이겠구만. 그러다 병나!”

호통 친 아저씨. 그 마음 참 고마웠다. 다리가 좀 뻐근했으되 주저앉을 정도는 아니었지. 그예 호통 친 마음, 내가 깊이 품었어.

26일. 부당 해고 삼십삼 일째. 갈바람 좀 불더라.

“이거 하나 드세요. 갈증 나실 텐데.”

마실 거리 건넨 아주머니. 그 마음 참 고마웠다. 바람에 손팻말이 흔들리긴 했으되 놓칠 만큼은 아니었지. 파란 깡통에 담긴 마음, 꿀꺽꿀꺽 내 가슴에 삼켰어.

29일. 부당 해고 삼십육 일째. 가을비 제법 세차더라.

“우산을 받치는 게 낫지 않겠어요?” “감기 들지 않게 조심하세요.” “식사는 하셨어요?”

여러 동료 노동자. 그 마음 참 고마웠다. 빗속에 다시 선 게 가엽고 불쌍했을까. 눈길에 담겨 건너온 정답고 포근한 여러 마음. 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네, 먹었어요.”

 

시월. 영등포 중앙시장 북쪽 문 맞은 편 북동쪽 한 시 방향 일대에 ‘아크로’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팔구월 사이 옛집 허문 자리에 단층 가건물이 늘어서더니 아크로 생맥주와 한정식, 아크로 커피숍과 부동산 따위가 죽. 같은 크기로 칸을 나눠 아크로… 아크로. 터주 손수레가 선 자리 뒤쪽엔 야채 가게까지. 사과와 배 등속도 파는. 눈치. 터주 눈빛도 시들시들. 모자챙 아래 옹송그린 채. 그자 같은 자본이 쪽방 밀어낼 때 날린 티끌이 그 사람 성대를 꾸준히 먹어 들었는지 ‘사가, 이 시키’마저 깊숙이 가라앉았지.

깡다구 수레의 어깨도 합죽한 뺨이 그린 선을 이어 내려앉았다. 그가 지배한 시장 북쪽 문 앞 삼거리 손수레 마당 면적이 줄진 않았으되 높은 담 따위로 등등한 아크로 기세에 눌려 잔뜩 웅크린 모양새였거든. 그자 같은 자본이 돈 튀길 욕심을 채우기 위해 풀어 놓은 몇몇 주구의 검은 자동차가 들랑댔고, 수레를 바투 돌아나가는 공사 차량에 치이지 않자면 깡다구 내밀고 서 있을 공간조차 없었지. 쉭, 쉭. 덩치 큰 회반죽 차가 콘크리트 무게에 겨워 거친 숨 내쉴 때마다 깡다구는 수레 뒤로 물러나야 했어.

9일. 한글날. 오후. 광화문 앞마당 세종 동상 주변에 나들이 나온 얼굴에 얼굴. 햇살 사이로. 또 얼굴. 갸웃갸웃. SEWOL 동조 단식 천막 안. 갸웃기웃. “캔 아이 테이크 어 픽처?” 기웃기웃. 그자 같은 자본의 몹쓸 SEWOL이 삼킨 꽃다운 이들 영정.

10일. 부당 해고 사십칠 일째. 아침. 아홉 시 이십 분. 그자의 검은빛 자동차가 내 손팻말을 바투 돌아 회사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출퇴근 보고가 어쩌고저쩌고… 근태가 불량해 나를 해고한다더니 정작 그자는 제 편의에 따라 출퇴근하고는 했지. 차에서 내릴 때 보니 입에 담배를 물었더군. 엄지와 검지로 바싹 죈 꽁초였으니 차 안에서 피웠다는 얘기. 음. 그자의 차를 운전하는 이가 담배를 함께 피울까. 차 안에서. 그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고문일 텐데. 음. 그자. 아랑곳없더라. 꽁초 들고 주차장에서 회사 현관으로 곧장 들어갔어. 거리낌 없이. 꽁초. 어디에 버렸을까. 현관? 엘리베이터? 제 사무실? 제 회사에서 제 하고픈 대로 한다 여겼겠지. 아니, 아마 아무 생각 없었을 걸. 쯧쯧. 세상없는 자리에 앉아 못할 일 없을 권력을 휘두른다 해도 태도나 말에 예의가 있어야 할 텐데. 그자. 사람이 행하고 지켜야 할 것에서 많이 벗어났더군.

13일. 부당 해고 오십 일째. 그자가 뭐라 허풍 떨자 가장 비루한 주구가 꼬리를 흔들었다. 만면에 웃음 띠고. 내 손팻말 외면한 채 나란히 점심 먹으러 가는 길인 듯했지. 나 잘 들으라는 듯 크게 웃고 꼬리치는 짓이 사람과 사람이 주고받는 것과는 달라 보였어.

20일. 부당 해고 오십칠 일째. 가을비. 아침에. 서늘하고 퍽 찼다. 삼투. 양말 언저리가 젖더니 무릎까지 서늘히 물이 올라왔어. 손팻말. 나. 굳게 세워 두려 끙끙댔지. 끊이지 않게. 노래. 읊조렸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거부한다던 복종을 달게 받지 않겠다던….”

그자의 젓가락질 서툰 주구. 시위 함께한 내 동료 노동자를 불러 점심을 사며 손팻말 들지 말라 했다더군. 의뭉스럽게. 그 주구를 시중하는 노예 가운데 하나는 늦은 밤 술에 취해 그 동료 노동자의 집 앞에 나타나 똑같은 짓을 했고. 그리 말하고 행한 그자의 몇몇 주구와 노예는 내 손팻말 앞에서 독한 냉기를 뿜었지. 함께 땀 흘린 게 십구 년이든 수년이든 상관없이. 차갑기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나. 온 몸 떨고 손가락 곱았지. 발발. 몇몇 주구와 노예의 냉기에. 벌벌. 추위에.

 

십일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공익 위원. “사 측에 묻겠습니다. 이천십삼 년 칠월 삼 일 외근 보고를 하지 않은… 등등의 근태 불량이라는 게 (부당 해고 구제) 신청인을 해고할 만한 사유라고 보시나요.” “(젓가락질 서툰 주구의) 시말서나 경위서 제출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는 게 해고할 만한 이유가 됩니까.” “신청인이 연감 발행 업무를 소홀히 했다손 치더라도 그걸 이유로 삼아 해고할 수 있나요.”

젓가락질 서툰 주구 옆 회사 대리자. 암수와 꼼수에 밝고 수임료가 비싸다 하던 자. 공익 위원의 질문 하나하나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더니 기어이 “위원님, 저희는 세 가지 사유를 복합적으로 보아 신청인과는 더 이상 근로 계약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아니, (세 사유를) 하나로 묶지 마시고.”

회사 쪽 대리자를 향한 공익 위원의 짜증.

노동위원회 사용자 쪽 위원. “징계 해고는 어쩌면 사망 선고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회사에서 십구 년이나 일한 사람을 해고한 사유로는 좀… 많이 빈약하네요.”

“위원님, 세 가지 사유를 복합적으로 감안해 주십시오.”

사건을 잘 파악하려는 사용자 쪽 위원을 향한 회사 쪽 대리자의 짜증.

나.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부당한 해고였다’는 판정이 제 명예를 회복할 새 출발점일 것으로 봅니다. 제가 그리 보잘것없는 이유들 때문에 즉시 징계 해고될 까닭이 없다는 거, 회사의 행위가 부당했음이 인정될 테니까요.”

며칠 뒤. 그자 같은 자본이 본색의 약간을 담에 내걸었다. 퍼런 바탕. 희고 빨간 글씨. ‘불법 광고물’과 ‘부착시’와 ‘광고물관리 제18조 및 제20조’와 ‘형사고발(1년 이하 징역 및 500만원 이하 벌금)’을 빨갛게 돋우려 했으나 되레 ‘펜스에’ 따위의 나머지 흰 글씨가 도드라진. ‘스티커,’와 ‘광고 부착물’이나 ‘광고 부착물)’과 ‘등을’ 사이를 띄지 않았고, ‘조치’와 ‘할’을 띄어 쓴 데다 ‘부착’과 ‘시’를 붙여, 특히 ‘현장소장 백’으로 부박함을 스스로 방증한. 물러나! 알림이라기보다 겁박인.

 

 

□××○××

 

펜스에 불법 광고물

(스티커,광고 부착물)등을 부착시

광고물관리 제18조 및 제20조에 의거

형사고발(1년 이하 징역 및 500만원 이하 벌금)

조치 할 것 입니다.

불법 부착으로 인하여 광고주의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으시길 바랍니다.

 

현장소장 백

 

 

천을 허술하게 잇댔던 담도 바꿨더군. 은색 철판 일색으로. 틈 없이 안을 가렸어. 그자 같은 자본. 담 안을 넘보거나 담에 광고물 하나 붙이지 말라 사람 겁박한 뒤. 담 안에서 제 맘껏 땅을 팠다. 돈 마구 튀겨 줄 타워를 빨리 쌓느라. 다다귀다다귀했던 영등포 중앙시장 북쪽 문 일대 쪽방? 물론 흔적 없앴고.

새벽. 개… 덩치 큰 셰퍼드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내게 다가왔다. ‘어, 이 녀석, 나 어릴 적 메리인가’ 했는데 눈빛이 달랐어. 으르렁거리는 게 예사롭지 않더니 내 몸을 굳히더군. 쉬 움직일 수 없었지. 식은땀. 미친개에게 물리고 싶지 않았어. 가위. 그놈 뒤로 미친것 한둘 아니었거든.

오후 한 시 이십구 분. 나. 한강 강서 생태습지공원. 스슥. 응? 스스슥. 헉. 뭐, 뭐야. …. 뭐였지? ……. 갈대 사이로 바람 따라온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