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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극장

eunyongyi 2020. 11. 28. 11:27

노명우 지음. 사계절 펴냄. 2018년 1월 26일 1판 1쇄. 2018년 2월 5일 1판 2쇄.

 

보통학교를 겨우 졸업한 아버지가 2008년 일본으로 가족 여행을 갔을 때 여전히 일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67쪽).

 

“천하 없어도 성공”하고 말겠다는 박정희는 1937년에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했다. 군사 조직을 모범으로 삼아 학교를 구조화하던 제2차 조선교육령 시기에 예비교사 교육을 받은 셈이다. 개인의 발전 따위는 교육의 목표가 아니었다. 교육의 제일 목표는 집단에 복종하는 개인, 체제의 원리에 조금도 어긋남 없이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학교는 조회와 주회, 집단 체조 같은 행사를 통해 집단 규율을 내재화하는 공간이었다. 사실상 예비 군사 조직이나 다름없었다(108쪽).

 

함께 군 생활을 하는 전우들이 모두 가족이고, 후방에 있는 국민들도 한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아버지 혼자 거부하기는 힘에 부쳤을 것이다. 나고야의 조토헤이에 불과했던 아버지가 자기 힘으로 돌파하기에 제국의 이데올로기는 나고야성만큼이나 견고하고 튼튼했다(142쪽).

 

1941년 다카키 마사오로 1차 개명을 했다가, 이름에 남아 있는 조선인의 흔적을 지울 양으로 ‘오카모토 미노루’라고 다시 이름을 고친 박정희는 차츰차츰 껍데기의 상층부로 진입했다(146쪽).

 

1935년 말 통계에 따르면 일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조선인은 당시 인구의 7.7퍼센트에 불과했다. 학교 교육을 받은 조선인들만이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었으니 일본어 구사 능력은 조선인의 계층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표식이었다(158쪽).

 

 “국군 정예 북상 총반격전 전개 ⎼ 해주시를 완전 점령.”

 1950년 6월 27일 자 <동아일보> 기사. 이 오보가 나오던 날 새벽 이승만은 기차를 타고 피난을 떠났고, 다음 날 한강 다리를 폭파시켰다(173쪽).

 

전후 생활력의 시대를 나타내는 표징인 양색시는 1950년대를 무대로 하는 영화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당대의 유명 여성 스타는 모두가 한 번은 양색시 역을 맡았다. <지옥화>에서 배우 최은희는 소냐라는 이름의 양공주로 등장한다. 김지미 역시 <혈맥>에서 양공주 역할을 맡았다(226쪽).

 

상이군인이 이렇게 말했다.

“난 이렇게 병신이야. 폐물이야. 전쟁 때 쓰고 난 탄피야.”

식민체제하에서 한국 남자는 있으면서도 없는 존재였다. 공식 질서에서 지배자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남자는 가정의 영역에서 목소리가 커진다. 전후의 질서 역시 마찬가지다. 승자인지 패자인지 알 수 없는 전후 남성은 점령군이니 해방군인지 판단할 수 없는 미군 앞에서 한없이 위축됐다. 적어도 미군과 자신이 동등한 위치가 아님을 본능적으로 알았기에 자신들이 큰소리를 칠 수 있는 영역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231쪽).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구혼할 때에만 해도 꽃다발을 가져다 줄 정도로 로맨틱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결혼 이후 꽃다발을 든 그 남자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아버지는 ‘벌레의 시간’에서 느끼는 불만을 타인에 대한 공격으로 표출했다. 그 공격의 대상은 물론 어머니였다. 꽃을 들었던 남자는 윽박지르는 남자로 바뀌었다. 그 앞에서 어머니는 ‘묵묵무언(默默無言)’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246쪽).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영화 관람 절차는 독립국이 되고 초대 대통령이 몰락하는 과정에서도 굳건히 살아남았다. 영화를 보러 간 관객은 ‘국민의례’를 하고, 국가가 제작한 <대한뉴스>를 본 뒤 국가가 선택한 ‘문화영화’를 통과해야만 관객 자신이 선택한 극영화에 도달할 수 있다(300쪽).

 

미군은 한국 사람을 우습게 알았고, 한국 남자는 양색시를 양갈보라 부르며 우습게 알았고, 양색시는 흑인 미군을 ‘니그로’라 부르며 우습게 알았다. 서로 우습게 아는 관계가 물고 물리는 삼거리였기에 미군들끼리도 싸웠지만, 양색시와 미군 사이의 싸움도 적지 않았고, 한국인 남자와 미군 사이의 다툼도 종종 일어났다(310쪽).

 

선글라스를 쓰고 나타난 박정희 때문이었을까? 40대 초반 무렵의 사진에서 아버지는 자주 선글라스를 쓰고 등장한다. 이때의 사진들에서 아버지가 쓰고 있는 선글라스는 형태로 볼 때 ‘라이방(레이밴Ray-Ban)’ 제품임에 틀림없다(317쪽).  

 

아버지의 보통학교에 책 읽는 소년 니노미야 긴지로 상이 있었다면, 신산국민학교에는 책 읽는 소녀상과 함께 이승복 어린이상이 있었다(3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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