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브라운밀러 (1975년) 지음. 박소영 옮김. 오월의봄 펴냄. 2018년 2월 27일 초판 1쇄.
강간은 권력과 지배를 확인하려는 고의적인 행위이자, 도덕 기준 없는 남성들이 저지르는 모욕 행위이며, 대부분의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살해당할까봐 두려워한다는 사실이었다(13, 14쪽).
(난징) 여성들이 휴식 중인 (일본) 병사들 앞에서 섹스 쇼를 하도록 강요당했다. 총부리로 위협하며 아버지가 딸을 강제로 강간하도록 한 사건들도 있었다. 이런 이야기 다수가 비슷한 결말로 끝난다. 군인 무리는 여자를 붙잡아 일을 끝내고 난 후 질에 막대기를 쑤셔 넣거나 목을 벴다(93쪽).
히브리 사회질서 아래에서도 처녀들은 결혼을 통해 은 50조각에 매매됐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가부장이 예비 신랑 내지 신랑 가족에게 파는 것은 딸의 파열되지 않은 처녀막에 대한 권리였고, 그 처녀막은 그가 완전히 소유하고 통제하는 재산 중 하나였다. 처녀막에 가격표가 붙은 이스라엘의 딸은 깨끗한 상품임을 확실히 하기 위해 감시하에 살았고, 훼손된 상품이라서 유리한 거래를 이끌어 낼 수 없게 되면 첩으로 팔렸다(33쪽).
미국이 개입한 20년뿐 아니라 식민 통치한 프랑스에 맞선 애초의 독립전쟁이 시작된 이래로 베트남전쟁은 여러 가지 집단과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는 강간의 도가니였다(135쪽).
아넷의 분석에 따르면, 베트콩이 강간을 저지르지 않은 원인이 효율적인 문책 시스템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보기에는 베트콩 여성이 군사작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 그리고 남자들과 함께 동등하게 싸우는 여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다른 여성에 대해서도 성적 모욕과 학대를 하지 못하게끔 작용했다(141쪽).
콩고 사례에서 강간은 복수의 이름으로 정당화됐으며, 그런 정당화를 가능케 한 것은 여성을 남성의 재산으로 보는 뿌리 깊은 사고방식이었다. 하지만 고색창연한 이데올로기적 변명을 걷어 내면, 그 복수란 실은 남자들끼리 되는대로 경박하게 좋은 시간을 보낸답시고 저질러 온 수많은 강간 사건 중 하나일 뿐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213쪽).
저 위대한 서부 이주와 개척의 역사에는 백인 남성이 인디언 여성에게 저지른 강간과 인디언 남성이 백인 여성에게 저지른 강간이 늘 부산물처럼 따라다녔다(216쪽).
노예제와 결혼이 가부장 제도로서 하나로 맞물려 돌아갔던 탓에 가장 계몽된 사람들조차 여성 노예의 성적 권리와 신체 온전성이라는 개념을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19세기에 결혼한 여성은 법적으로 남편의 소유물로 간주됐기에 결혼한 여성을 학대하는 일은 남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일로만 간주됐다. 미혼 여성인 경우 그 아버지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일로 여겨졌다(251쪽).
강간범이 없는 세상은 여성이 남성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세상일 것이다. 역으로 일부 남성이 강간을 하는 것만으로 모든 여성은 항상 협박당하는 상태에 몰리게 되며, 남성의 저 생물학적 도구가 언제라도 해로운 무기로 변할 수 있으니 경외심을 품어야 한다는 생각을 영원히 뇌리에 각인하게 된다(320쪽).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을 강간한 혐의로 기소되는 사건만큼이나 미국의 정치적 분열증을 확실하게 폭발시키는 기폭제가 되는 사건은 없다. 대중의 상상은 폭주하고 그 와중에 무엇이 사실인지는 전혀 상관없게 된다(322쪽).
백인 남성들은 노예 소유자든 아니든 백인 여성을 동등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소유한 영토의 일부로 취급했다. 백인 여성은 투표할 수 없었고, 공직을 차지할 수도, 배심원이 될 수도 없었다. 또한 고등교육을 받을 수도 없었고, 결혼 후에는 자기 앞으로 땅이나 노예, 돈을 소유할 수도 없었다(337쪽).
기독교 문화에 노출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시대를 불문하고 여성의 처녀성을 전혀 문제시하지 않는 문화들이 존재해 왔다(496쪽).
의제강간죄의 원리는 일정 나이 이하의 어린이가 피해자일 때는 저항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으로, ‘법이 그녀를 대신해 저항한다’고 일컫는 법이다(578쪽).
강간 범죄 개념은 정조 내지 순결에 관한 모든 전통적인 관념과 완전히 분리되어야만 한다. 정조라는 말 자체가 (남성이 아니라) 여성에게만 혼외 성관계를 자제할 의무가 있음을 상정하는 말이다. 여성이 성적으로 활발한 모습을 보인다고 ‘정숙하지 못하다’고 표현하는 사고방식은 여성을 순전히 남성이 쓰는 그릇으로 간주하는 남성 중심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604쪽).
강간은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이며 통제할 수 없는 욕정에 의한 범죄가 결코 아니다. 정복자가 되고 싶은 남성이 여성에게 두려움을 주고 협박하려는 의도로 계획한 비하 및 점령 행위, 즉 의도적으로 여성을 적대하는 폭력 행위이다. 이것이 바로 강간의 실체이다(612쪽).
포르노그래피를 볼 때 다수의 여성이 느끼는 배 속에서 곧장 우러나오는 이 불쾌감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목적을 위해 우리 자신과 우리 몸을 벗기고 노출시키며 짓밟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여성을 익명의 헐떡거리는 장난감, 성인용 장난감, 이용하고 학대하고 망가뜨린 후 버리면 되는 인간성이 말살된 사물로 보는 것을 통해 권력을 쥔 느낌과 쾌락을 얻어야 부풀어 오른다는 저 ‘남자다운 자부심’을 강화하겠다는 터무니없는 목적 말이다(6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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