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지음. 글항아리 펴냄. 2017년 9월 22일 1판 1쇄. 2018년 12월 10일 1판 2쇄.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아니 잠든 후에도 아빠의 욕설과 발소리, 문을 쾅쾅 닫는 소리가 지배하던 집은 내게 또 하나의 감옥이었다(19쪽).
초등학교 졸업반, 인생을 별 낙 없이 살아가는 하루하루였다. 밤이면 아빠가 내뿜는 담배 연기를 피하고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야 했다(33쪽).
손가락을 깨끗하게 씻지 않고 자위를 한 다음 날은 오줌이 자주 마렵고 아랫배가 아팠다. 성인이 되어서야 이런 증상이 방광염이라는 걸 알게 됐고, 이후로는 손가락을 깨끗이 씻고 자위를 했다(37쪽).
나는 놀랍고도 무서운 사실을 발견했다. 대부분의 친구가 자위를 해 본 적이 없고, 남자와 섹스할 때 오르가슴을 느끼기는커녕 오르가슴을 느끼는 척 연기하는 감정노동을 하는 데 신경을 쓰고 있었다(39쪽).
그러니까 그들은, 나와 섹스할 때도 혼자 있을 때 자위하듯 섹스를 한 것이다(47쪽).
그의 힘과 대등하게 맞서서 “아빠, 나한테 욕하지 마세요”라고 정중하게 말하거나 “아빠! 나한테 왜 그러는데, 내가 동네북이야?”라고 도발하면 집기가 날아오거나 욕설이 더 심해졌다(115쪽).
‘나는 그를 존경하지만 그와 자고 싶은 건 아니야.’ 마음속에서 계속 이 말이 올라왔지만, 꾹꾹 누르며 참았다(139, 140쪽).
따로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닌데, 엄마는 자신에게 언어폭력을 휘두르는 아빠의 블라우스를 다리고, 아침밥을 차리고, 뒤집힌 양말을 빨아 줬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집에서도 청바지를 입고 생활했는데, 아빠가 옷을 벗기지 못하게 하려고 그랬다 한다. 엄마는 피임 없는 섹스로 임신이 될까 봐 걱정했다. 혼자 임신중절수술을 하러 또다시 병원에 가는 게 두려웠던 것이다. 가끔 화난 엄마는 설거지를 하면서 중얼거렸다. “내가 이 집 노예도 아니고 정말(208쪽).”
소수 이성 친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나를 잠재적 연애 상대로 여겼다(251쪽).
내 첫 번째 전쟁터는 가정이었다. 밤마다 아빠의 담배 연기와 욕설에 눈치 보며 밥을 먹고 아침에 눈뜰 때마다 몸을 떨었던 내 어린 시절, 그 시절을 공유한 언니는 핏줄로 맺어진 자매이기 이전에 싸움터에서 서로를 지켜낸 전우다(3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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