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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란을 날려라

조지 오웰 지음. 이영아 옮김. 현암사 펴냄. 2023년 2월 10일 초판 1쇄.고든은 요즘은 늘 이런 식이라고 멍하니 생각했다. 친절하게 접근해오는 사람들을 계속 밀어내고 있었다. 물론 진짜 이유는 돈이었다. 항상 돈이 문제였다. 주머니에 한 푼도 없으면 상냥해질 수도, 심지어는 예의를 지킬 수도 없다(50쪽).집 꼭대기에 있는 냉랭하고 쓸쓸한 방을 생각하니 그의 앞에 파멸이 기다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50쪽).시! 이처럼 무익한 것이 또 있을까. 그는 잠 못 이룬 채 누워서, 자신의 무가치함을, 자신의 30년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자신의 인생을 생각했다(65쪽).그저 돈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돈이 없으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돈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돈이 미덕이며 가난은 ..

신부의 딸

조지 오웰 지음. 현암사 펴냄. 2023년 2월 10일 초판 1쇄. 1871년 어느 준남작의 작은아들로 태어난 신부는 자고로 작은아들은 성직이 제격이라는 케케묵은 이유로 성직자가 되었다(35쪽). “블리필고든 씨가 오늘 아침엔 참 다정하시네요.” 도러시가 말했다. “그래요. 도러시 양. 그럴 테지요. 다음 주에 선거가 있거든요. 자기한테 한 표 달라고 간살부리는 겁니다. 선거 다음 날이면 바로 우리 얼굴도 잊어버릴 거면서(58쪽, 59쪽).“우리 가난한 노동자들은 사는 게 이렇게 힘들다오, 도러시 양(84쪽).” “개소리!” 밴드는 이것밖에 연주할 수 없었다네. “개소리! 개소리! 너야말로(146쪽)!”햇볕 속에서 졸다가 깨어나서는 암소들처럼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일주일간의 중노동 후에는 암소와 동..

코끼리를 쏘다

조지 오웰 지음. 이재경 옮김. 반니 펴냄. 2019년 5월 25일 1판 1쇄. 2020년 6월 30일 1판 2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린 시절 특유의 깊은 서러움, 뭐라고 설명하기 쉽지 않은 감정 때문에 울었다. 적대적인 세상에 갇혔을 뿐 아니라, 도저히 지킬 수 없을 만큼 지독한 규칙들이 지배하는 선악의 세상에 버려졌다는 막막한 외로움과 무력감 때문이었다(15쪽). “누구든 나를 믿는 이 어린것들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는 자는 그 목에 맷돌을 달아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게 나을 것이다(63쪽).” (마태복음 18장 6절)아이가 자기 결점을 믿어버리면 그 믿음은 웬만한 사실에도 끄떡하지 않는다(80쪽). 나는 남자아이들만 있는 세계에 살았다. 남자아이들은 무리를 짓기 좋아하고, 어떤 의문을 제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