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078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최지은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2020년 6월 5일 초판 1쇄. 지구에 한 명을 꼭 더할 필요가 있을까요······. 요새는 뭘 먹든 미세 플라스틱을 걱정해야 하는 것처럼, 이렇게 오염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건 개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환경을 위해서나 아이를 위해서나, 제가 한 명을 늘리는 게 그렇게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22쪽). “부부가 살다 보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데, 나쁠 때 애가 없으면 헤어지게 된다.” 이 말에 대해 도윤은 웃으며 말했다. “나쁠 때 애가 없으면 좀 더 수월하게 이혼하고 행복해질 수 있겠죠(28쪽).” 임신의 유일한 장점은 생리를 안 하는 거라는 농담을 여자끼리 주고받은 적이 있지만, 분만 후 길면 한 달 가까이 자궁에서 분비물이 나온다는 사실은..

언니의 폐경

김훈 지음. 2005년 황순원문학상 수상작. 심사위원 다섯이 모두 남자. ━ 얘, 왜 B-6은 살고 A-6은 죽는 거니? 나는 대답하지 못했고 언니는 거듭 물었다. ━ 얘, 그게 왜 그런 거야? 언니의 물음은······중략······대답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중략······그때 언니는 차 안에서 갑자기 생리혈을 흘렸다. 언니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두 손으로 사타구니께를 눌렀다. ━ 얘, 어떡하지. 갑자기 왜 이러지······ ━ 왜 그래, 언니? ━ 뜨거워. 몸속에서 밀려나와. 지난번 정월대보름 밤에도 언니는 내 아파트에 와서 자고 갔다.······중략······그날 새벽에 언니는 또 생리혈을 흘렸다. 언니가 자리에서 버스럭거리는 소리에 깨어보니, 언니는 나를 깨우지 않고 일을 처리하느라고 조..

유튜브 온리

노가영 지음. 미래의창 펴냄. 2017년 12월 27일 초판 1쇄. 지금 넷플릭스의 과제는 무엇일까? 1억 명이 넘는 유료 가입자를 보유한 슈퍼 공룡 서비스임에도 2012 ~ 2015년 11억 달러 이상(누적) 마이너스 현금 흐름을 보였다. 심지어 2016년 매출은 88억 달러, 영업이익은 3억8000만 달러(영업이익률 4.3%)인데도 앞서 말했듯이 2017년에만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과 수급에 2016년 매출의 70%에 달하는 무려 6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호기를 부린다. 2016년 말 부채비율은 125%로, 향후 해외 가입자의 공격적인 확장을 통해 수익성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추가 차입으로 인한 부채비율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불안정한 현금흐름은 무엇 때문일까? 바꿔 말하면, 넷플릭스는 ..

탈성장 개념어 사전

자코모 달리사, 페데리코 데마리아, 요르고스 칼리스 엮음. 강이현 옮김. 그물코 펴냄. 2018년 9월 20일 1판 1쇄. 성장은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행복을 증진하지 않는다. 이는 기본 물질적 필요가 충족되면 추가 수입은 위치재(이웃보다 더 큰 집 등)에 점점 더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중략······모든 이의 지위가 올라가면 누구도 남들보다 더 잘살 수 없다. 이는 ‘제로섬’ 게임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성장이 위치재의 가격을 올린다는 점이다. 이것이 성장의 사회적 한계이다. 성장은 지위 경쟁을 결코 충족시킬 수 없고 오로지 악화시킨다. 따라서 모든 이를 위해 충분히 생산하는 성장은 불가능하다(33쪽). 근대 자본주의 사회와 사회주의 경제의 특징은 사회적 잉여의 상당 부분을 새로운 생산에 제..

기형도 전집

기형도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1999년 3월 2일 초판 1쇄. 2015년 7월 30일 초판 27쇄. 어느 날 그가 유리담장을 떼어냈을 때, 그 골목은 가장 햇빛이 안 드는 곳임이 판명되었다, 일렬로 선 아이들은 묵묵히 벽돌을 날랐다 (‘專門家’ 37쪽.) 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꿈꾸어야 한다, 단 한 줄일 수도 있다 (‘오래된 書籍’ 47쪽.) 휴일의 대부분은 죽은 자들에 대한 추억에 바쳐진다 (‘흔해빠진 독서’ 59쪽.)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 수조차 없이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온 이 길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61쪽.) 희망을 포기하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리, 흘러간다 어느 곳이든 기척 없이 (‘植木祭’ 85쪽.) 나는 가끔씩 어둡고 텅 빈 희망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사회 속의 과학기술

윤정로 지음. 세창출판사 펴냄. 2016년 3월 17일 초판 1쇄. 과학에서는 다른 과학자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의해서 제시된 지식, 그리고 이미 공인을 받은 지식에 대해서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끊임없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 요구된다(23쪽). 결국, 라투르와 울가의 주장에 따르면 과학적 사실이 ‘바깥 어디엔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특성(out-there-ness)은 과학 활동의 원인(cause)이 아니라 결과(consequence)일 뿐이며, 과학적 사실은 그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만들어 준 과학 활동을 둘러싼 사회적 실천의 네트워크(network of social practice)를 벗어날 수 없다(50, 51쪽). 기술결정론이란 한마디로 독자적인 존재양식과 발전법칙을 ..

이기적 섹스

은하선 지음. 동녘 펴냄. 2015년 8월 26일 초판 1쇄. 2016년 8월 15일 초판 5쇄. 남자들은 도대체 진화를 하지 않는 걸까(20쪽). 그는 임신하면 책임지겠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뭘 책임지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결혼’을 해서 아이의 양육비를 부담하는 것을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여자가 계획하지 않은 임신을 했을 때 발생하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는 그가 상상할 수 있는 영역 밖이었다(34쪽). “그렇게 발랑 까지지 않아도 다들 섹스하거든요. 수면 위로 꺼낼 필요가 있어요.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도 아니고. 섹스에 대해 청소년들이 이야기할 공간이 너무 부족해요(75쪽).” 중요한 건 ‘남의 욕망’이 아니라 ‘내 욕망’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찾아낸 ‘내 욕망’을 ..

아무튼, 메모

정혜윤 지음. 위고 펴냄. 2020년 3월 15일 초판 1쇄. 2020년 3월 25일 초판 2쇄. “부끄럽다면 최대한 빨리 그만두는 것이 좋다”지만 이 간단한 문장 하나 살아 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32쪽). 쉼보르스카 시인이 쓴 대로 “영리하고 재치 있는 데다가 부지런하기까지 한 것, 새로운 임무에 언제라도 적응할 채비를 갖추고 필요하다면 끈질기게 기다리는 것, 용감하게 미래를 응시하는 것”은 오로지 증오뿐이다(49쪽). “돈 좀 돼?” 빈 공간에 떠다니는 세 번째 에너지다. 뭐 좀 하려고 하면 묻는다. “그걸로 돈이 되겠어?”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동안 낸 나의 모든 책은 시장을 잘못 읽은 상품에 불과하다. 내 생각을 시장의 언어로만 인정받아야 하다니. 나는 그것을 조금도 원하지 않는다. 돈에만 관심..

아무튼, 피트니스

류은숙 지음. 코난북스 펴냄. 2017년 9월 25일 초판 1쇄. 그럼 정리 운동은? 잘 먹은 후에 상 치우기 같은 게 아닐까? ‘아 귀찮아, 내일 치우자’ 이러고 자고 나면 다음 날은 지저분함과 피곤함, 후회로 시작하게 된다. 오늘 먹은 상은 오늘 치우기, 잘 알면서도 매번 맞닥뜨리는 귀찮음과의 대결도 정리 운동과 닮았다(74쪽). 느리더라도 자기 속도로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묵묵히 갈 수 있다는 데 피트니스의 매력이 있다(81쪽). 체육관을 그저 왔다 갔다 할 때, 나는 PT, 퍼스널트레이닝(personal training)이라는 말도 몰랐다(95쪽). 과거는 우울한 것이고 미래는 불안한 것이라 했던가. 과거의 우울을 대하는 방법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만 미래에 대한 불안만은 뭔가를 ‘배운다’..

탈코르셋 ━ 도래한 상상

이민경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중요한 것은 여성에게는 꾸밈노동이 오로지 조건부로만 면제된다는 사실이다. 마치 병가처럼 말이다(54쪽). 수치심을 내면화하지 않는 몸은 더 이상 수치심이 부여하는 각본을 따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각본에 사로잡혔던 이전의 기억마저도 새롭게 의미화한다(65쪽). “저는 대학생 때부터 화장, 성형, 다이어트······ 다 했어요. 일회성으로만 한 게 아니에요. 제 인생에서 화장, 성형, 다이어트를 빼면 할 말이 별로 없어요. 너무 거기에만 몰두해 있었는데, 또 그러면서 아닌 척을 했죠(78쪽).” 여성복의 경우, 처음부터 옷을 입는 사람 대신 그 옷을 입은 사람을 보는 시선을 중심으로 제작되다 보니 옷으로서의 기능이 형편없을 수밖에 없다. 기능이 떨어져도 여성이라는 표식을 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