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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전집

기형도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1999년 3월 2일 초판 1쇄. 2015년 7월 30일 초판 27쇄. 어느 날 그가 유리담장을 떼어냈을 때, 그 골목은 가장 햇빛이 안 드는 곳임이 판명되었다, 일렬로 선 아이들은 묵묵히 벽돌을 날랐다 (‘專門家’ 37쪽.) 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꿈꾸어야 한다, 단 한 줄일 수도 있다 (‘오래된 書籍’ 47쪽.) 휴일의 대부분은 죽은 자들에 대한 추억에 바쳐진다 (‘흔해빠진 독서’ 59쪽.)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 수조차 없이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온 이 길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61쪽.) 희망을 포기하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리, 흘러간다 어느 곳이든 기척 없이 (‘植木祭’ 85쪽.) 나는 가끔씩 어둡고 텅 빈 희망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사회 속의 과학기술

윤정로 지음. 세창출판사 펴냄. 2016년 3월 17일 초판 1쇄. 과학에서는 다른 과학자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의해서 제시된 지식, 그리고 이미 공인을 받은 지식에 대해서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끊임없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 요구된다(23쪽). 결국, 라투르와 울가의 주장에 따르면 과학적 사실이 ‘바깥 어디엔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특성(out-there-ness)은 과학 활동의 원인(cause)이 아니라 결과(consequence)일 뿐이며, 과학적 사실은 그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만들어 준 과학 활동을 둘러싼 사회적 실천의 네트워크(network of social practice)를 벗어날 수 없다(50, 51쪽). 기술결정론이란 한마디로 독자적인 존재양식과 발전법칙을 ..

이기적 섹스

은하선 지음. 동녘 펴냄. 2015년 8월 26일 초판 1쇄. 2016년 8월 15일 초판 5쇄. 남자들은 도대체 진화를 하지 않는 걸까(20쪽). 그는 임신하면 책임지겠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뭘 책임지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결혼’을 해서 아이의 양육비를 부담하는 것을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여자가 계획하지 않은 임신을 했을 때 발생하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는 그가 상상할 수 있는 영역 밖이었다(34쪽). “그렇게 발랑 까지지 않아도 다들 섹스하거든요. 수면 위로 꺼낼 필요가 있어요.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도 아니고. 섹스에 대해 청소년들이 이야기할 공간이 너무 부족해요(75쪽).” 중요한 건 ‘남의 욕망’이 아니라 ‘내 욕망’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찾아낸 ‘내 욕망’을 ..

아무튼, 메모

정혜윤 지음. 위고 펴냄. 2020년 3월 15일 초판 1쇄. 2020년 3월 25일 초판 2쇄. “부끄럽다면 최대한 빨리 그만두는 것이 좋다”지만 이 간단한 문장 하나 살아 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32쪽). 쉼보르스카 시인이 쓴 대로 “영리하고 재치 있는 데다가 부지런하기까지 한 것, 새로운 임무에 언제라도 적응할 채비를 갖추고 필요하다면 끈질기게 기다리는 것, 용감하게 미래를 응시하는 것”은 오로지 증오뿐이다(49쪽). “돈 좀 돼?” 빈 공간에 떠다니는 세 번째 에너지다. 뭐 좀 하려고 하면 묻는다. “그걸로 돈이 되겠어?”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동안 낸 나의 모든 책은 시장을 잘못 읽은 상품에 불과하다. 내 생각을 시장의 언어로만 인정받아야 하다니. 나는 그것을 조금도 원하지 않는다. 돈에만 관심..

아무튼, 피트니스

류은숙 지음. 코난북스 펴냄. 2017년 9월 25일 초판 1쇄. 그럼 정리 운동은? 잘 먹은 후에 상 치우기 같은 게 아닐까? ‘아 귀찮아, 내일 치우자’ 이러고 자고 나면 다음 날은 지저분함과 피곤함, 후회로 시작하게 된다. 오늘 먹은 상은 오늘 치우기, 잘 알면서도 매번 맞닥뜨리는 귀찮음과의 대결도 정리 운동과 닮았다(74쪽). 느리더라도 자기 속도로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묵묵히 갈 수 있다는 데 피트니스의 매력이 있다(81쪽). 체육관을 그저 왔다 갔다 할 때, 나는 PT, 퍼스널트레이닝(personal training)이라는 말도 몰랐다(95쪽). 과거는 우울한 것이고 미래는 불안한 것이라 했던가. 과거의 우울을 대하는 방법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만 미래에 대한 불안만은 뭔가를 ‘배운다’..

탈코르셋 ━ 도래한 상상

이민경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중요한 것은 여성에게는 꾸밈노동이 오로지 조건부로만 면제된다는 사실이다. 마치 병가처럼 말이다(54쪽). 수치심을 내면화하지 않는 몸은 더 이상 수치심이 부여하는 각본을 따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각본에 사로잡혔던 이전의 기억마저도 새롭게 의미화한다(65쪽). “저는 대학생 때부터 화장, 성형, 다이어트······ 다 했어요. 일회성으로만 한 게 아니에요. 제 인생에서 화장, 성형, 다이어트를 빼면 할 말이 별로 없어요. 너무 거기에만 몰두해 있었는데, 또 그러면서 아닌 척을 했죠(78쪽).” 여성복의 경우, 처음부터 옷을 입는 사람 대신 그 옷을 입은 사람을 보는 시선을 중심으로 제작되다 보니 옷으로서의 기능이 형편없을 수밖에 없다. 기능이 떨어져도 여성이라는 표식을 다는..

제보자 X, 죄수와 검사

이오하 지음. 하눈 펴냄. 2020년 11월 27일 초판 1쇄. 나는 피해 주주 모임과 주주 모임에서 선임한 이사들과 함께 옵셔널에 대한 실태 파악에 들어갔다. 감사법인을 선임해 광주에 있는 옵셔널 본사로 내려가 적발 감사를 진행했다. 적발 감사는 일반 회계감사와 달리 전 경영진의 불법 사항 전반을 파악하는 감사 방법이다(54쪽). 그곳에서 ‘필사 노트’를 얻었다. 담장 안에서는 ‘희귀템’이라 징벌방을 나와서는 여러 사람의 부러움을 샀던 그런 일기장이다(128쪽). 내가 있던 남부구치소의 독방은 5동 하층에 있었다(135쪽). 내가 어릴 적부터 자본시장에서 했던, 피해 주주 모임에서의 경험, 명동 등 기업 사채시장에서의 경험, 상장회사의 CEO나 오너로서 겪은 경험, 여러 회사의 투자 컨설팅 경험을 하면..

디지털의 배신

이광석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2020년 6월 25일 초판 1쇄. 플랫폼 알고리즘 기계는 이용자 활동을 분석해 그들을 유형화하고 그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예측해 추천하면서, 각자가 좋아하는 것의 경계 밖 이질적이고 낯설고 타자화된 문화들에 대한 관찰 자체를 각자의 시야에서 아예 처음부터 자동 배제할 공산이 커졌다. 다시 말해, 빅데이터 기술 문화는 이미 존재하는 문화적 선호와 편견을 더 단단히 만드는 반면, 새롭고 이질적인 것들에 대한 대중의 접촉면을 현저히 낮춘다는 점에서 대단히 문화 보수적이다(36쪽). 겉보기에 플랫폼은 자원의 공유와 교환의 분산성과 평등성을 띠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플랫폼 이윤의 집중과 독점화가 진행되면서 모순이 응집된다. 즉 플랫폼 중개인이 수수료 등 이..

카테고리 없음 2021.02.02

여자들은 다른 장소를 살아간다

류은숙 지음. 낮은산 펴냄. 2019년 9월 30일 처음 찍음. 기능적으로 향상된 제품은 부엌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부엌에서의 더 세련된 노동을 기대한다. 더 나은 ‘질’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11쪽). 부엌일은 이토록 필수적이고 귀중한데, 왜 사회적 기술이 아닌 것일까(21쪽)? 시위를 하다 잡혀가면 경찰이 연행된 사람들 수를 셀 때, 여성들을 ‘꽃잎 몇 개’라 했다.······중략······광장에서 자주 부르는 노래 중에는 ‘딸들아 일어나라, 깨어라’, ‘두부처럼 잘리어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이라는 가사가 있었는데, 나 자신을 대상화하는 그런 노래를 주구장창 불렀다. 야만의 세월이라 지칭되던 시절, 공권력도 대항 권력도 광장에서 여성을 그렇게 대상화했다(63쪽). 뉴스에 실릴 정도의 일은 아니지만 ..

침묵주의보

정진영 지음. 문학수첩 펴냄. 2018년 3월 19일 초판 1쇄. 인턴들은 이미 사건팀에서 기본적인 기사 작성 교육을 받은 터라 내가 교육할 부분은 많지 않았다. 특히 수연은 인턴답지 않게 처음부터 능숙하게 온라인으로 내보낼 만한 우라까이 기사를 작성해 선배 기자들의 감탄을 자아냈다(32쪽). “막연한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글로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존재가 되고 싶었어요. 글을 쓰는 일도 좋아하기도 하고요. 선배는 왜 기자가 되기로 결심하셨나요(37쪽)?” “후배가 시간을 끌면 게으른 것이지만 선배가 시간을 끌면 치밀한 것이고, 후배가 아프면 꾀병이지만 선배가 아프면 전날 회사를 위해 과로한 것이 되는 게 이 바닥 인심이 아니더냐(49쪽).” “기사를 잘 쓰는 기자는 있어도, 좋은 삶을 사는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