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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하루키

이지수 지음. 제철소 펴냄. 2020년 1월 31일 초판 1쇄. 2020년 2월 28일 초판 2쇄. 각오는 했지만 육아는 정말이지 다른 차원의 고행이었다. 아들이 태어나자 내 신체와 정신이 모두 이 작은 인간을 위해서만 기능하는 것 같았다. 작은 인간을 먹이고 씻기고 똥오줌을 치우고 안은 채로 밥과 빨래와 청소를 하고 (가끔은 볼일도 보고!) 그러면서 동시에 기저귀와 분유와 물티슈와 기타 등등의 육아템을 떨어지지 않게 구비해 두는 데 내 모든 기력을 썼다. 기진맥진이 기본 컨디션이었다(49쪽). 자신에 대해 큰소리로 떠벌리지 않아도 그 내부에는 틀림없이 근사한 게 있으리라는 믿음을 주는 사람에게 나는 매번 반한다(59쪽). 오이를 닮아서 별명도 큐컴버배치인 영국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한껏 서늘한 표정..

신동원 교수의 한국과학문명사 강의

신동원 지음. 책과함께 펴냄. 2020년 2월 22일 1판 1쇄. (박성래) 그는 조선의 천문 기관에 근무하던 관원이 열심히 하늘을 관찰해 일식과 월식, 혜성과 가뭄을 관찰하고 기록했지만, 그러한 활동이 오늘날의 과학 활동과는 거리가 먼 정치적 해석을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었음을 잘 보여 줬습니다(29쪽). 는 와 함께 온갖 우주와 자연 현상 기록의 저장 창고 구실을 했습니다. 에는 186번의 가뭄 기록이 실려 있는데, 이런 기록도 있습니다. 1002년(목종 5년) 6월 제주도 산의 네 곳에서 구멍이 뚫려 붉은 물이 닷새 동안 솟구쳐 나오더니 멈췄다. 그것이 모두 기와처럼 생긴 돌이 됐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화산 폭발 기록입니다. 5년 후인 1007년에도 제주도에서 화산이 터졌습니다. 구름과 안개가..

아무튼, 외국어

조지영 지음. 위고 펴냄. 2018년 5월 10일 초판 1쇄. 외국 문학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텍스트와의, 저자와의, 또 나와의 싸움인지를 어렴풋이 눈치채자마자 바로 연애와 동아리 활동에 매진했다(25쪽). 정작 진짜 불문과 학생이 되고 난 후 프랑스어와 나의 사이는 서먹서먹해졌다(34쪽). 프랑스에서는 ‘어디가 아프다’라는 표현을, ‘어디에 아픔을 갖고 있다’로 표현한다.······중략······우리도 통상 ‘나는 머리가 아프다’라고 말하니까, 프랑스어에서 ‘나는 그대가 아프다’라고 한다면, 몸이 아파서 느끼는 통증처럼, 내가 그 사람을 아프게 느낀다 정도의 뉘앙스랄까(37, 38쪽)? (스테판) 츠바이크는, 그래서 감히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새벽과 황혼, 전쟁과 평화, 상승..

아무튼, 반려병

강이람 지음. 제철소 펴냄. 2020년 10월 30일 초판 1쇄. 사회생활이란 지금 이상하면 그다음 단계는 더 이상해지는 것이고, 아무것도 안 하면서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해 봤자 그 무엇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22쪽). 아픔은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반응의 대상이라는 게 그간의 깨달음이다(46쪽). 새 생명이 축복인 것은 맞지만, 그 생명을 만드는 과정의 주체인 여자의 몸은 분명히, 확실히 아프고 고통스럽다(57쪽). 이전의 나이 듦이 어렸던 과거를 돌아보며 아쉬워하는 것이라면, 언니에게서 느낀 나이 듦은 먼 미래를 그려 보며 숙연해지는 것이었다(110쪽). 빈티지(vintage)란 원래 와인의 원료가 되는 포도를 수확하고 와인을 만든 해를 의미한다(117쪽). 사막을 지나는 사람들이 ..

인간 이력서

볼프 슈나이더 지음(2008년). 이정모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2013년 1월 25일 초판 1쇄. 2013년 2월 10일 초판 2쇄. 인류는 마지막으로 남은 자원과 마지막으로 남은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최후의 전투를 치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12쪽). 지구는 인류의 고향으로 조건부로 적합할 뿐, 지구는 인간을 기다리지 않았다(13쪽). 과학자들은 그들을 ‘곧추선’이란 뜻의 에렉투스로 부르지만, 호모 하빌리스도 이미 직립했다. 기원전 180만 ~ 140만 년 전 사이에 두 종이 동시에 아프리카에 살았다. 하빌리스는 에렉투스의 조상일 리 없고, 그 둘 사이에 어떤 친척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41쪽).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동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돼 ‘남방 원숭이’라는 뜻의 이름이 붙은..

꽃 진 자리

김수열 지음. 걷는사람 펴냄. 2018년 3월 23일 1판 1쇄. 피로 얼룩진 우리들의 사월이 끝내 내릴 수 없는 깃발임을 그대는 진실로 아는가 -‘그대는 진실로 아는가’, 12쪽. 하늘이 노랗고 게거품 물면서라도 물질은 간다 -’조천 할망’, 20쪽. 사월의 바람은 4·3의 횃불과 죽창 그리고 미친 가슴을 싣고 같 바람은 어느 외진 땅 사람 없는 곳에서 회한의 얼굴들을 되씹고 있는지 낮게 어둑진 하늘 한꺼번에 닥쳐올 바람은 감히 아물지 못하는 사십 년의 상처를 어디로 싣고 갈는지 피어보지도 못하고 짓밟힌 꽃망울 어디로 싣고 가려는지 꽃 진 자리 동박새 울음도 들리지 않고 진초록 이파리 눈부실 무렵 아무런 미련 없이 툭 툭 당당하게 지는 꽃 그래도 살아 아, 선연하게 살아 퀭한 눈 부라리고 가만히 아우성..

아무튼, 예능

복길 지음. 코난북스 펴냄. 2019년 9월 2일 초판 1쇄. 2019년 9월 27일 초판 2쇄. “방송국 다니면 텔레비전 싫어져.” 그 말을 정확히 일주일 만에 체감했다. 우리 부서 사람들은 모두 텔레비전을 싫어하는 인간이었다. 드라마도 예능도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눈과 귀가 늘 지쳐 있었다(20쪽). 동생이 회사를 관두려 했다. 여자 사원들만 입는 짧은 치마 유니폼, 여자 사원들만 하는 간부들 방 청소, 쉴 새 없이 계속되는 외모 품평과 원치 않는 남자 선임들의 접근 같은, 남초 회사의 고질적인 문제들 때문이었다(41쪽). ‘대학에 가면 예뻐진다’는 마법 같은 말은 ‘대학에 가면 필사적으로 예뻐져야 한다’는 뜻이었다.······중략······학교에 입학하니 압박감은 경쟁심으로 변했다. 밖에 나갈 채비..

하이퍼튜브··· 과대 포장 안 될 말

장밋빛 전망 일색 하이퍼튜브, 상용화할지 의문 By Eun-yong Lee 탕. 총소리만 들렸다. 지름 8.75cm, 길이 15cm인 두랄루민 캡슐을 37.5m짜리 튜브 안에 쏘는 공기총 소리였다. 캡슐 시속 1000km를 넘기려고 튜브 시험 구간을 1000분의 1기압 아래로 내리느라 24분이 걸렸다. 지난 2020년 11월 12일 오후 2시 9분 경기 의왕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의 ‘축소형 하이퍼튜브(hyper tube) 공력시험장치’ 안에서 발사된 차량 모델 캡슐은 시속 1039km로 달렸다. 이날 이뤄진 공력(공기힘) 시험은 34회째. 하이퍼튜브는 진공 튜브 안에서 시속 1200km짜리 자기부상열차가 달리는 체계인데 아직 실증되지 않았다. 기자는 한국산업기술시험원으로부터 공인 인증을 얻고자 한 34회 시..

지슬

오멸 원작. 김금숙 그림. 서해문집 펴냄. 2014년 3월 21일 초판 1쇄. “너 어떠니?” “뭐가 말입니까?” “여기 있는 거.”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너 사람 죽일 수 있어?” “사람이요?” “여기 있으면 죄 없는 사람들 다 죽여야 해(75쪽).” “옘병, 폭도는 무슨.” “근데 폭도가 있긴 진짜 있는 거냐?” “폭도가 있든 없든 우리가 지금 폭도 때문에 이러냐? 좆같은 명령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거지(126쪽).” “이젠 그만 죽이세요.” “정길아!” “안녕히 가세요, 김 상사님(239쪽).” 당시 제주 북서부 중산간에 위치한 ‘큰 넓궤’라는 동굴은 인근 마을 주민 120여 명이 토벌을 피해 50 ~ 60일 동안 숨어 지냈던 곳이다. 그러나 결국 토벌대에게 발각됐고 보초를 서던 마을 청년들..

끝나지 않은 KT CEO 리스크

국회에 불법 정치자금 후원한 혐의 여태 그대로 검찰, 조사 마쳤음에도 2년째 꿩 구워 먹은 소식 By Eun-yong Lee 지난 3월 28일 KT 새 노동조합이 ‘구현모 사장 2020년 경영평가 보고서’를 내놓았다. 구 사장 임기 첫 해인 2020년 치 매출·이익과 윤리경영·노동인권·지속가능경영 여부를 살펴 A부터 F까지 평가했는데 ‘D’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 실제로 KT 2020년 매출은 23조9167억 원으로 2019년(24조3420억 원)보다 4253억 원(1.7%↓) 줄었다. 영업이익은 1조1841억 원으로 2019년(1조1595억 원)보다 2.1% 늘었다. KT 새 노동조합의 CEO 경영평가위원회는 이런 결과가 경쟁사인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에 견줘 “격차가 두드러진다”고 봤다. 이동전화 ..